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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Oct 21. 2017

충주 비내길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

길 위에는 무엇이 있으며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길 위에서 무언가를 만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다만 무얼 만나든 설레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이번에는 그 길에서 어떤 고마움을 만났고 우리의 헤맴을 반복하는 무리를 만났고 깜짝 놀라게 하는 동물들을 만났고 시원한 바람을 만났다. 갈림길에서 선택을 자주해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났고  몇발짝 앞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났다.

맑은 하늘

우여곡절 끝에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함께 하기로 했던 사람들은 뜻밖의 사람으로 바뀌었고 가기로 했던 장소도 바뀌었다. 그것은 오랜만에 함께 하는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느낌으로 다가와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목적지로 가는 내내 만나야 했던 안개와도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미리 생각해 둔 것들을 하나씩 챙겼다.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공기조차도 비켜가야 했다. 물을 끓이고 그동안 씻고 짐을 챙겼다. 물 모자 장갑 배낭 보온병 믹스커피 종이컵 감 손에 잡히는대로 배낭속에 넣었다. 그런데 단 한가지 생각해 둔 오랜만에 마시고 싶었던 보이차를 준비하지 못했다. 청주로 오면서 쉽게 마실 수 있는 일회용 커피에  길들여져서 가끔 마시던 차를 먹지 못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차를 끓이던 도구들을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를 뒤져  보아도 보이지를 않아 마음만 다급해지고 만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기에 결국 포기했다. 그리고 준비해야 할 또다른 것들, 습관처럼 컵라면을 사고 김밥을 샀다.


날씨는 생각보다  추웠고 안개는 뜻하지 않게 진하게 껴 있었다. 일교차가 클 것임을 경험적으로 직감했고 옷 선택이 크게 빗나가지를 않기를 바랬다. 한번도 쉼없이 달려온 곳은 우리가 원하는 곳은 아니었다. 잠깐동안 헤매는 동안 우선 화장실을 찾아야 했고 주인 아주머니의 화장실 사용 매너에 대해 폭풍 잔소리를 들어주어야 했고 그 말에 공감을 격하게 해주어야 했다. 화가 풀렸는지 나에게 행선지를 물어보는 친절함을 보여주었고 자세하게 어디로 가라고 하는지와 자신의 경험까지도 곁들여 주셨다.

비내길 출발지 앙성온천광장

왔던 길을 조금돌아 넓은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도 갈곳을 찾지 못하고 있을쯤 어떤 인상좋은 아저씨가 길을 알려주었다. 덤으로 미니 수첩도 하나씩 선물로 주셨다. 길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면서  행복한 일이다.


잔디가 잘 깔린 둑방 길에는 이슬이 내려 앉아 신발을 조금 적셨지만 불쾌한 정도는 아니었고 양옆 나무에는 거미들이 마치 버려진 길의 주인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에 잠깐 들어온  손님처럼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그네들의 삶을 방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쪽은 가을걷이를 앞둔 벼들과 이미 수확을 끝낸 깨들과 복숭아 나무들 그 너머 아직은 푸른 산이, 또 한쪽은 냇가와 새들 그 너머 도로가 있었다. 

단풍나무길

새들은 한가롭게 생활하고 있었고 우린 그들의 삶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우린 그 모습을 보며 좋은 풍경을 감상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놀라게 했는지 그들은 갑자기 날아올라 새로운 쉼터를 찾아 나섰다. 그 모습 조차도 나에게는 감상이지만 그들은 고달픈 삶이 아닐까 한다.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신이 낳은 결과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거나 우리가 걷는 길이 비내길의 정해진 길이 아닐지도 모르는 길에는 풀이 길을 덮고 있어 헤치고 나가야 할 때도 있었고 큰 길이지만 물을  만나 앞으로 더 이상 가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랫만에 시골길 느낌의 길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좋았고, 길 끝에서 만난 넓은 강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그 강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바위는 새들의 훌륭한 쉄터가 되어 주고 있었다. 잔잔한 강은 파도가 있는 바다와는 다른 차분함과 고요함을 주었다. 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는 않았고 시간을 두고 더 즐기고 싶었지만 사진에서 봤던 억새밭의 풍경을 찾아  길을 나섰다.

남한강

유명한 길인데 우리만 걷는 것 같아 유명하지만 좋은 곳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과 동시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분명히 길이 없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그들은 우리가 했던 실수를 반복했다. 다시 돌아옴을 깨달을 때까지 갔다가 오는 사람이 일으키는 소음으로 인해 자연이 주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무리에 섞이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다녔다.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느낌도 주지 않았겠지만 우린 그들이 휩쓸고 가는 풍경이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어떻게 하든 만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몇번을 더 만나서야 헤어졌다.


다시 찾은 길은 강을 따라 길에 뻗어 있었고 누군가에 의해 잘 가꾸어져 있었다. 멈춘 듯 안 멈춘 듯한 강은 주변 풍경색을 그대로 물위에 옮겨두었다. 산과 강을 사이에 두고 이어진 길은 조그만한 땅이 허용된 곳에는 사람이 자리잡고 있었고 농작물이 심어져 있었다. 처음가는 길이 제대로 가는 길인가를 알게 해주는 블로그 상의 사진들을 만나니 기쁘기 그지없고 궁금했던 꽃들의 이름들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누렸다. 때론 의자에 앉아 강과 강물 위의 풍경 그리고 농사짓는 사람과 푸른 산을 보며 마음을 놓고 시간이 쫒김없는 오롯히 나의 시간에 맞춰 즐겼다. 그네를 타고 퍼지는 웃음은 강을 건너 퍼져나갔지만 이내 물속으로 하늘로 사라져갔다.

비내섬으로 가는 다리

본격적인 억새는 비내섬을 만나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온세상이 억새로 덮인 것을 상상했다면 정말 상상일 뿐이다. 넓은 섬은 여러 갈래길이 있었고 자동차가 다닐 정도로 폭이 넓었다. 나무와 풀에 걸린 쓰레기들을 보니 비가 많이 오면 잠기는 섬 같았다. 한쪽은 무성한 나무군락들이 다른 한쪽은 무성한 억새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이 쓰레기와 공존하고 나무들과 억새를 일정한 모양으로 관리를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지금 모습으로도 충분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약간은 색다른 풍경을 주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같다.  아까 만난 무리들은 다시 헤매다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왔다. 은빛 억새와 갈빛 억새가 바람에 흩날리니 제법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맑은 하늘은 억새가 주는 약간의 아쉬움을 덜어 낼 정도로 아름다웠다.

비내섬 억새(들)

돌아오는 길은 마을을 통과하여 야트막한 산의 허리를 돌아 왔다. 강바람과 산바람이 주는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산은 뱀과 다람쥐를 품었다. 우린 돌아오는 길에 각자 가슴속에 무엇을 품고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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