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로 교사의 일상 이야기

진로 교사의 어떤 하루 - 어느 봄 하루

by 해 말고 달

어느 봄 일상 이야기

남들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 것일까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SNS를 통해서 타인의 삶을 많이 엿볼 수 있지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맛있고, 멋지고, 재미있고, 특이한 것 위주라서 힘든 일, 슬픈 일, 구체적 일상 등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교사를 만나는 시간은 대부분 수업 시간이기에 의외로 교사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직무 분야가 다르면 서로의 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오늘은 진로교사의 일상이 궁금한 학생의 진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저의 일상을 남겨 봅니다.


All is well!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저는 진로교사입니다. 진로교육법에 명시된 공식적인 명칭은 '진로전담교사'이고, 자격증에는 '진로진학상담'이라고 되어 있고, 학교에서는 보통 진로부장이라고 불립니다. 시도교육청마다 진로진학상담 대학원 학위 보유 교사 또는 부전공 연수 등을 통해 선발하기에 선발 방법이 조금씩 다릅니다. 저는 한국교원대학교 부전공 연수를 통해 진로교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진로교사는 일반적으로 주당 10시간 정도 수업을 하고 최소 8시간 이상 진로 및 진학 상담을 합니다. 주된 업무는 진로 수업, 진로 상담, 진로 활동 행사 및 각종 관련 행정 업무 처리입니다. 학교에 따라서 특별한 업무나 부가적인 업무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현재 학교에서는 진로 업무와 함께 상담복지 업무도 총괄하고 있습니다.

저는 보통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합니다. 이른 아침에는 교통 체증이 덜해 출근이 편하고, 조용하고 방해가 없기에 독서가 잘 됩니다. 일과 전 시간에는 주로 진로 관련 독서와 공부를 합니다. 진로 교사가 되고 난 뒤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 등교하는 학생을 위한 아침 상담도 합니다. 오늘은 간단히 책상 정리하고 청소를 합니다. 예전과 다르게 교무실은 학생들 청소 당번이 없습니다. 학생들은 주요 교육 공간인 교실과 복도 등만 청소합니다. 매일 아침에 당일 상담을 위한 쪽지를 만들어 전달합니다. 3학년 학생에게는 진학이 중요하기에 순번대로 1년 동안 4회기 상담을 필수적으로 진행하고, 3학년 추가 상담과 1~2학년과 학부모 상담은 희망제로 운영합니다.

'All is well!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난, 할 수 있어!',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에밀 쿠에.',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 진로상담실 복도에 있는 긍정 명언과 긍정 애니메이션 캐릭터 내용입니다. 긍정 진로! 진로에서는 긍정 마인드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긍정의 힘을 실천하기 위해 주 2회 아침에 교문으로 나갑니다. 이름을 불러 주면서 등교 맞이 인사를 합니다. 생활지도가 아니라 긍정 신호를 보내기 위함입니다. 아침부터 생활교육에 너무 치중하면 공감적 관계인 라포르(rapport)가 손상됩니다. 상담을 하는 교사는 학생들과 잘 지내는 게 중요합니다. 교문에 있어 보면 교실에서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학생들의 다양한 이면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3월 초입니다. 이른 봄 교정에는 동백꽃, 살구꽃, 목련이 핍니다. 계절이 오고 가고, 학생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이번 주는 학생회 선거 캠페인이 있습니다. 예쁘고 인상적인 손 팻말을 들고 신이 나서 캠페인을 합니다. 불투명하고 깨끗하지 않으며 상대방에 대한 공격만 난무하는 교문 밖 어른들의 이상한 선거는 남의 나라 이야기입니다.

아침 등교 맞이 인사하기가 끝나면 진로 상담실로 돌아옵니다. 작년부터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인스턴트커피 아메리카노를 300ml로 연하게 타서 따뜻하게 마십니다. 하루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시간입니다. 진로 상담실은 진로 업무, 진로 상담, 소규모 진로 체험을 위해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수업은 같은 층 조금 떨어진 진로 교육실에서 진행합니다. 그곳이 진로 수업 전용 공간입니다. '컴시간알리미'를 통해 그날 수업을 확인하고, 저만의 업무 비법인 원노트(OneNote)에 만들어 놓은 디지털 교무수첩에서 오늘 해야 할 일을 확인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수업과 상담 준비를 합니다.


태블릿 PC도 꼭 밥을 챙겨 먹여야 하는 시대

월요일 오전에는 2, 3교시 수업이 있는데, 오늘은 시험이라 감독을 합니다. 학기 초라 컴퓨터 기반 학업성취도 평가가 실시됩니다.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일종의 진단 평가입니다. 교탁 위에는 감독 교사용 노트북이 있고, 학생들 책상 위에는 시험지와 답안용 OMR 카드 대신 태블릿 PC가 있습니다. 낯선 풍경입니다. 예비종이 울리면 학생들은 태블릿 PC에서 시험 시스템에 접속 및 로그인해서 본인에게 배정된 시험 교시의 시험을 확인합니다. 감독 교사는 본종이 울리면 노트북 시험 관리 시스템에서 시험 시작을 클릭합니다. 학생들은 귀에 각자 이어폰을 끼고 시험에 응시합니다. 과목당 몇 개의 듣기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트북으로 학생들이 접속해서 잘 들어와 있는지 확인하면서도 태블릿 PC로 시험을 잘 치르고 있는지 감독합니다. 감독 교사 노트북에는 학생별로 응시현황이 미응시, 응시 중, 응시완료 형태로 표시되고, 접속 중이면 초록색 표시등이 켜집니다. 화면 오른쪽 끝에는 반별 응시 현황도 잘 표시되고 있습니다. 시험 문제를 다 풀고 나면 학생들은 답안지 제출 버튼을 누릅니다. 저는 모든 학생들이 시험 종료가 된 것을 확인한 후 시스템에서 시험 종료 버튼을 누릅니다. 이제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아침 교문 인사를 하고 2, 3교시 연속 시험 감독을 하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픕니다. 노트북 화면과 학생들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감독합니다. 갑자기 1명이 손을 듭니다. 시험이 완료되어 정답은 저장이 되어있으나 제출자가 동시에 많았던 지 태블릿 PC 화면이 트래픽 잼 상태로 버퍼링이 걸려서 처리가 되지 않습니다. 노트북 화면에서 개별 학생 이름을 더블 클릭하여 열고 정답 저장 유무를 확인 후 관리자 모드로 종료 처리합니다.

세월이 참 많이 변했음을 느낍니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시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평가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적 목적이 중요한데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우열 판단이나 선발의 목적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학생들이 더 잘 압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목적의 평가도 지금의 심화된 경쟁 사회 시스템에서는 스트레스를 주기 마련입니다. 스트레스를 잠시 멈추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점심시간이 빨리 와야 합니다.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태블릿 PC를 충전하는 일입니다. 교실마다 대형 충전함이 있어서 각자 자기 자리에 넣고 충전합니다. 그래야 5교시 사회 시험을 응시할 수 있고 수업도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도, 교사도 밥을 먹어야 하지만, 이제 태블릿 PC도 꼭 밥을 챙겨 먹여야 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진로상담은 데이터에 기반해서 체계적으로

진로교사가 되면서 4교시 시간표는 가능하면 제외해 달라고 시간표 편성 담당자에게 부탁을 합니다. 왜냐하면 점심시간 상담 때문에 식사를 조금 일찍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로교사로서 사소하지만 좋은 점 한 가지가 이것입니다. 배고픔을 빨리 면할 수 있다는, 조금은 조용하게 식사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학생들은 식사 시간이 매우 빠릅니다. 특히 남학생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그냥 마시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점심시간에 놀아야 해서, 축구를 해야 해서 그렇답니다. 가끔 축구 때문에 제 상담시간을 잊어버리는 학생이 있기도 합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1층 교무실에 들러 우편물을 찾아옵니다. 저는 진로실에만 있지 않고 학년실과 교무실로 자주 돌아다니는 편입니다. 사내 전산망 메신저나 전화가 편리하긴 하지만 대면 접촉으로 협의를 하다 보면 자세한 상황과 정보 파악이 더 쉬워서 업무 진행이 더 잘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친목회장이기도 해서 선생님들 안부를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상담은 호소하는 진로 문제에 따른 상담과 진로발달단계에 따른 상담으로 진행합니다. 상담은 수업 시간에도 하지만 학습결손을 줄이기 위해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주로 아침, 점심, 종례 후에 진행합니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국제고와 일반계고를 희망하는 남학생이 왔습니다. 3학년 학생들은 4회기 상담을 기본으로 하는 데 오늘은 1회기로 진로 및 진학 희망 기초 상담, 진로 결정 및 진로 활동 정도에 따른 설루션 제시, 상담 목표와 계획 수립, 긍정 격려 등으로 진행합니다. 오전 내담 학생 A는 진로 고민과 활동은 어느 정도 했으나 진로 목표 미결정 상태라 목표 수립형으로 판단되어 진로 경로 설계와 진로 정보 탐색을 해법으로 제시합니다. 이 상담 방법은 커리어넷 학교 진로 상담 방법에 따른 것입니다. 저는 진로 경로 설계를 위해서 진로 목표를 좁히는 방법을 조언합니다. 오후 내담 학생 B는 국악 전공을 희망하는 여학생입니다. 이 학생은 진로 목표가 수립되어 있고 진로 활동도 무척 많이 한 경우입니다. 학교 음악 동아리 활동을 4개나 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퓨전 밴드, 취타대, 날뫼북춤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통 악기 피리도 사교육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이 여학생은 예술고를 희망합니다. <학교 알리미>로 들어가서 탑재된 해당 학교의 전형 자료를 분석해 줍니다. 이 학생은 실천계획형에 해당하기에 학습 설계 및 학교 내외 생활설계에 대해 안내하고 격려합니다.

상담 때에는 듀얼 모니터를 사용해서 여러 가지 데이터를 보여 줍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체계적 진로상담을 합니다. 진로상담을 잘하기 위해서는 각종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로심리검사 결과, 고입 및 대입 결과 분석 자료, 성적 자료, 학교생활기록부, 진학 희망 학교 교육과정, 직업 정보 등 상담 내용에 따라 적절한 데이터를 사용하면 좋습니다. 아울러 상담 끝에는 각종 진로 정보를 스스로 탐색할 수 있는 방법을 꼭 이야기해 줍니다. 스스로 필요한 진로 정보를 탐색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시대이니까요. 성적을 궁금해하는 경우에는 석차와 석차백분율을 보여줍니다. 오늘은 학기 초라 반편성 성적자료를 가공한 자료를 사용합니다. 엑셀 필터 함수를 이용하여 이름을 검색하면 본인 정보만 나오도록, 셀을 보기 편하게 크게 만든 간단한 프로그램입니다. 각종 성적 데이터를 가공한 화면 출력 프로그램은 매우 유용합니다. 내담자에 대한 객관적 진단 자료를 제시할 수도 있고, 상담자의 전문성에 대해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내담 학생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오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진로 교육 및 행사 계획을 수립하고 각종 행정 업무를 처리합니다. 오늘은 진로 동아리 연간 계획서 작성, 진로심리검사(표준화 심리검사) 실시 계획 수립, 기초 기본 학력 향상을 위한 두드림 프로그램 연간 계획 수립,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교내 동아리 안내 및 매칭 활동을 합니다. 두드림 사업은 원래 교육연구부 사업인데 교원 정원이 감축되면서 제가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교육청에서 학급 수를 줄이면서 우리 학교 1, 2학년 학급당 학생 수는 오히려 작년 대비 25% 이상 늘어 27명이 되는 학급도 있습니다. 아무리 저출산 사회에 미리 대비한다 하더라도 교육청 장학사나 파견 교사부터 먼저 줄이고 않고 실제 교육 활동 최전선에 있는 교사 정원을 먼저 줄이는 것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습니다. 상급 기관인 교육청보다 학교 현장의 인력을 더 줄이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 같습니다. 학교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와 같은 소규모 학교에서 3명이나 교원 수가 줄어들면 교육과 업무에서 많은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 업무는 감축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으니 예전 업무를 나누어 진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가 끝이 났습니다. 이제 상담 일지를 정리합니다. 상담할 때는 종이 카드에 작성하지만 일과 후에 MS 엑셀 프로그램에 다시 깨끗하게 정리합니다. 엑셀 상담록에 작성하면 다음 상담 때에 불러오기가 훨씬 편해서 효율적으로 상담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온라인 진로진학상담실에 최신 진로 정보와 진학 정보를 업로드하는 것으로 오늘을 마무리합니다. 오늘도 학생들이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서 좋았고, 학생들에게 긍정 '신호'를 보낼 수 있어서 좋았던 하루였습니다. 저는 이 일을 좋아합니다. 매일매일 더 잘하고 싶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