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교사의 어느 하루 - 진로 교사의 상담 이야기 5
어느 모임에서 고등학교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중학교 근무가 처음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다들 적응이 걱정되어서 선생님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 학교 어때요? 중학교 생활은 괜찮으신가요?"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시끄러운 초딩과 무기력한 고딩과 미친 중딩이 섞여 있어요. 마치 <인사이드 아웃 1, 2> 증폭 편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내려와서 처음 생활안전부장을 할 때입니다. 매일이 스펙터클한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학교폭력이나 생활선도 사안 중에서 중대한 사안이 발생하면 교장실에 구두 보고를 하러 가곤 했습니다. 그때 교장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아이고! 부장님, 힘들지요? 다른 말은 할 게 없고··· 그냥 중학생은 인간이 아니다~ 하고 생각하세요. 파충류의 뇌를 갖고 있다고··· 책에 다 나와요."
두 분 모두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게 높은 분들이라 솔직한 표현에 당혹스럽기도 했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다소 과한 표현들이라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이야기, 뇌과학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비하의 의도가 아니라 청소년기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뇌는 진화 과정을 통해 파충류의 본능적 뇌, 구포유류의 감정적 뇌, 인간의 이성적 뇌 등 3층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중학생 때는 파충류의 뇌처럼 생존과 공격 본능이 왕성하기에 외부의 공격에는 공격으로 맞대응합니다. 그냥 물어버리는 것이지요. 또는 구 포유류처럼 감정의 뇌 사용을 극대화해서 조금만 힘들면 "죽고 싶어요." 합니다. 인간의 뇌인 전두엽과 대뇌피질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공부도 하고 이성적 사고도 해야 하는데 아직 성장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청소년기는 뇌가 한창 공사 중인 시기입니다. 그러니, 실수도 하고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2024년에 영화 <인사이드 아웃 2>가 개봉되었습니다. 학교의 지원을 받아 교사 동아리에서 단체 관람을 하러 갔습니다. 1편에서는 '슬픔이', '버럭이'가 인상적이었는데, 2편에서는 '불안이', '따분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은 문자 그대로 '안과 밖'을 의미하기도 하고,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표출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안과 밖을 뒤집어 본다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영화는 주인공 라일리를 통해서 내면의 감정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외면으로 행동과 표정을 통해 표출되고 영향을 주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인사이드 아웃 1>에 등장하는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와 <인사이드 아웃 2>에 등장하는 불안이, 부럽이, 당황이, 따분이, 그리고 잠시 스쳐 지나가는 '향수'까지 모든 감정은 소중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들의 상호작용과 조화를 통해 마음은 성장합니다.
예전에 생활안전부장을 할 때 학생 일탈 문제로 만난 어떤 아버지께서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인생에는 반드시 표출되어야 하는 욕구, 객기, 열정, 호기심, 모험심이 있습니다. 청소년기나 청년기 등 적절한 시기에 건강한 방법으로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하고 억압된다면 오히려 다 큰 어른이 되어 더 큰 문제 행동에 부딪힐 수도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좌충우돌은 반드시 겪고 지나가야 할 통과의례고 더 큰 성장을 위한 디딤돌입니다. 그러니 이해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경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기다려 주는 게 필요합니다.
교정반사 증후군
여러분은 평소에 다른 사람들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마음학기 수업이나 상담시간에 가끔 하는 멘트가 있습니다. '선물은 give & take!, 대화는 take & give!'입니다. 선물은 주고,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물은 주는 게 먼저입니다. 대화는 듣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화는 잘 듣는 게 먼저입니다. 이해의 기본은 잘 듣는 것이고,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사람 사이 문제의 절반은 이것 때문에 생깁니다.
상담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담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해가 먼저입니다! 잘 듣고, 잘 헤아려야 합니다. 상담을 잘하기 위해서는 진심 어린 경청과 공감이 있어야 하고,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호소하는 진로 문제나 진로 장벽의 본질을 파악하고, 내담자의 강점과 잠재력을 정확히 짚어 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진로 준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상담, 그것 참 어렵습니다. 내담자 요인이 가장 크긴 하지만 상담자 측면에서 보면 상담의 기본 전제인 '이해'가 부족하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학교에서 진로 상담이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를 상담자 측면과 이해의 관점에서 제 경험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교정반사 증후군'때문입니다. 교정 반사는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반사 작용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자리에서 일어날 때 갑자기 어지러워 넘어지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 넘어지지 않도록 자동으로 자세를 조정하는 생리적 기능을 교정반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교정반사가 대인관계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지적하거나 교정하려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부모나 교사는 이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술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사회적 관계에서는 이런 경향이 심한 사람들이 꽤 있기에 '증후군'이라는 표현을 붙여 봤습니다.
틀린 정보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 주는 것은 학습이나 업무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심할 경우 자유롭고 솔직한 대화를 어렵게 하고, 불신과 거리감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직장에서는 업무의 창의성 저하를 가져오기도 하고, 만약 교정 반사가 심한 사람들끼리 충돌하게 되면 심한 갈등을 불러와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합니다. 직장에 이런 동료나 상사가 있으면 참 피곤하지요.
교사 직업을 오래 하면 소위 '교정 전문가'가 됩니다. 즉각적인 피드백과 지적질의 달인이 되는 거죠.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 모자란 점, 고칠 점이 막 보입니다. 유능한 교사일수록, 학생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교사일수록 자꾸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선의라 하더라도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지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더 강하게 끼쳐 심한 반발과 저항을 가져오게 합니다. 진짜 유능한 교사라면 불편함을 주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무엇이 그 사람을 변하게 하는 지를 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상담을 하는 진로 교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해와 상담 경험 부족으로 성급한 조언을 남발하면 안 됩니다. 진로 교사는 이해를 전제로 상담을 하는 사람입니다. 진로 교사로 선발되었다면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진로 업무 특성에 맞게끔 직무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진로 교사의 전문성은 바로 상담에 있습니다.
학생이 몰라서 못 고치는 것도 있지만 알아도 힘들어서, 두려워서 못 고치는 것도 많습니다. 내담자마다 진로 성숙도, 진로 효능감, 인내심, 흥미, 적성, 가치관, 학업역량, 성격 등의 개인적 요인과 부모 기대, 사회 경제적 배경 등 환경적 요인에서 많은 개인차가 있습니다. 그러니 진로 교사는 맞춤형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자칫 너무 심한 교정 압박은 꽃이 채 피기도 전에 떨어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내용, 방법, 시기 모두를 고려해야 합니다. 지적질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때론 그런 쓴소리 좋아하고, 쓴소리에 정신을 차려서 잘하는 학생도 가끔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그럴 때는 쓴소리도 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진로교사는 기본적으로 상담을 하는 사람이니 학생을 바라볼 때 가르치고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배움과 경험으로 성장하는 대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공감으로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가야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진로 교사는 조금 더 시간을 갖고 느긋해져도 괜찮습니다.
멀티 플레이어 강박증
두 번째 이유는, '멀티 플레이어 강박증'때문입니다. 이 용어도 제가 응용해서 표현해 본 것인데, 과도하게 다양한 업무를 함으로써 진로 상담에 집중과 몰입을 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나 피로감을 느끼는 증세를 의미합니다. 강박증은 반복된 강박 사고 또는 강박 행동이 명백한 고통 유발, 시간의 낭비, 일반 사회적 기준에 어긋남, 직업적 기능 저하, 일상적 사회 활동 및 타인과의 관계 제한 따위를 야기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불안 장애의 한 형태라고 합니다.
2025년 현재, 고등학교에서는 고교학점제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2025년 9월 25에 발표한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운영 개선 대책 발표' 자료에서 다과목 수업 교사 현황을 보면 2과목(45.4%)은 기본이고, 3과목(17.6%), 4과목(3.2%), 5과목(1.1%)으로 나타났습니다. 다과목 담당 교사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늘어나면 해당 교사의 수업 준비, 평가 문항 출제 등 업무 부담이 증가하기에 결국 교육의 질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고3 담임교사를 하면서 혼자서 문과 '한국지리'와 이과 '세계지리'를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학력 수준이 높은 학교라서 이과 상위권 학생들도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기에 열심히 준비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두 과목을 맡아서 하는데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세 과목 이상을 가르치면 얼마나 힘이 들까요?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중·고등학교는 학교 급과 학교 규모에 따라 진로 교사가 해야 할 업무가 다르지만 대체로 8 학급 미만의 학교에서는 진로 수업, 진로 상담, 진로 행사 등 진로와 관련된 고유 업무 이외에 부가적으로 맡게 되는 업무의 종류와 업무량이 늘어납니다. 진로 교사에게 적은 수업 시수를 배정하는 것은 상담을 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진로교육법이 만들어진 이유 중에 하나도 진로 상담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업 시수가 적다는 이유로 다른 업무를 많이 배정합니다. 학교 규모가 작다면 당연히 나눠서 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고유의 상담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라면 곤란합니다. 그것은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업무의 종류와 양이 늘어나면 간섭과 방해 효과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국 진로 상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진로 교사는 학급 담임도 하지 않고, 평가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라 업무 곤란도가 낮아 보이지만 진로 및 진학 상담에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고, 학교에 따라 다양한 업무를 맡아야 하는 애로점도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교육복지사가 없어서 교육복지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교육 급여와 교육비 심사 실무를 맡고 있고,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도 총괄하면서 계획서도 쓰고, 학생 선발도 하고, 세부 프로그램도 3가지를 직접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장체험학습비 및 졸업앨범비 지원 대상 학생을 선정하고, 교육청에 예산을 신청하고 정산 후 보고하는 업무도 일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계원이 한 명 있어서 학생복지심사위원회 협의록 작성, 장학생 선발 업무, 현장체험학습비 및 졸업앨범비 신청 및 정산 업무, 가정통신문 발송과 공문접수를 도와주지만 새로운 계원이 업무를 맡을 때마다 생소한 업무라서 힘들어합니다.
학교 문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위클래스에는 오히려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도 많이 옵니다. 동네 사랑방처럼 스스럼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조언을 구하고 간식도 얻어 갑니다. 진로상담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잘하거나 자신감이 있는 학생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선생님께 질문하러 옵니다. 그런데, 진로 장벽이나 문제를 만나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진 학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기껏 용기를 내어 진로상담실에 왔을 때 만약 문이 닫혀 있으면 다시 용기를 내어 발걸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담실은 늘 열려 있어야 합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미래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아이들도 바쁘고 교사도 바쁘기 때문입니다. 공문, 행정업무, 회의, 연수가 많습니다. 교사가 바쁘면 진솔한 상담을 하기 어렵습니다. 상담 전에 충분히 준비 시간이 필요하고, 상담 후에 기록하고 추수 상담을 할 시간도 확보해야 합니다. 다른 업무를 하다가 급하게 상담하면 상담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적정한 업무량이 주어져야 합니다. 민원처리나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상담할 수 없습니다. 상담은 가장 개별화된 교육이니까요.
상담의 기본은 잘 듣는 것인데, 모든 학교가 그렇듯 아이들 눈을 맞추고, 아이들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부족합니다. 한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돌보기 위해서는 온마을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있는데, 일부 부서에만 듣는 일이 맡겨집니다. 그마저도 바쁘니까 듣는 것보다 빨리 핵심을 이야기해 주고, 교정해 주느라 바쁩니다. 모두가 들어야 문제 파악이 빨라집니다.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제도 있고, 내가 보지 못하는 문제는 다른 교사가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야, 한 아이의 미래를,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위클래스는 중대 위기 사안과 관련된 업무이니 상담에 집중하도록 배려해 줍니다. 진로부에는 당장의 큰 위기 사안이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니 각종 다른 업무가 붙습니다. 진로 교사도 절반은 상담 업무를 하는 교사이니 상담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중대 위기 사안인 자살 사고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공부와 학교 부적응 문제도 있습니다. 진로 교사는 현재의 문제도 해결하지만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진로 교사도 한 아이의 미래와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다들 바쁘니 저라도 그들에게 안부를 묻기로 작정했습니다. 단절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학교 밖 상담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이것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진로 상담이 왜 우선순위에서 밀릴까요? 그것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데 비해 성과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로 교사는 아이들의 미래를 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규모에 상관없이 진로상담실이 온전히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어서 온 학교의 아이들이 모두 온전히 자신의 꿈을 꾸고 키워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진로 교사도 최선을 다해서 자기 임무를 해야 합니다. 노동은 계약 관계입니다. 편하게 지내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선발이 되었으면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고, 일할 수 있는 상담실 환경도 제대로 제공받아야 하고, 일한 만큼 대우도 받아야 합니다.
진로 상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학년 말에 다음 연도 업무 조정 회의를 할 때, 진로 업무의 중요성과 전문성 보장을 위해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규모가 작은 중학교에서 학교 사정상 다양한 맡았을 때는 일단 우선순위를 정해서 선택과 집중을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즐겨 사용하는 몇 가지 업무 팁이 있는데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를 사용해서 긴급성과 중요성의 분류에 따라 구분해서 업무를 순차적으로 처리합니다. 둘째, 업무처리 효율성을 위해 수업 연구, 행사 기획 및 공문서 작성, 진로진학상담 등 몇 개의 시간을 블록으로 나누어 시간표를 만들어 놓고 업무를 추진합니다. 주로 오전에는 기획이나 수업 연구 등 두뇌를 많이 쓰는 일을, 피곤한 오후에는 단순 업무 처리 위주로 나누어 업무를 추진합니다. 셋째, 효율적인 계획 추진과 일정 관리를 위해서 OneNote와 같은 디지털 노트와 캘린더를 만들어 놓고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넷째, 업무에 방해받지 위해서 카톡 등 SNS는 언제나 무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협업과 소통을 위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 본교무실이나 학년실을 방문합니다.
만성 피로 증후군과 번아웃 증후군
세 번째 이유는 많은 교사들이 겪고 있는 '만성 피로 증후군'과 '번아웃 증후군'입니다. 만성 피로 증후군은 여러 요인으로 피로감이 6개월 이상 계속된 질환을 의미하며,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심한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또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 등에 의해서 유발된다고 합니다. 번아웃 증후군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력이 소진되어 무기력증, 우울증 따위에 빠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교사가 아프면 건강한 상담을 하기 어렵습니다.
진로 교사라고 예외는 아니겠죠? 진로 교사는 하이브리드 교사입니다. 수업도 해야 하고, 상담도 해야 하고, 진로 활동 행사 기획과 진행도 해야 합니다. 다양한 업무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과도한 업무와 성과 압박은 피로와 번아웃을 만들고, 선택과 집중을 방해하고, 전문성 심화에도 장애가 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현수 교수의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에는 소진과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교사의 모습과 치유를 위한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만족을 얻기 어려운 직업으로 열거한 직업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정신 분석가이고 그다음으로 교사, 정치가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목표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고, 누구와 같이 해야만 하는 일이고, 상대방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현대의 교사들이 빠르게 소진되는 이유는 가르치는 사람에서 복잡한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안전은 물론 더 심해진 감정 노동을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영국, 미국, 독일, 우리나라 등 각 국가별로 교사들의 애로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요아힘 바우어의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에서 독일 교사들은 번아웃에 대해 설명하면서 "현대 노동자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 1위는 멀티태스킹이다. 그리고 업무 압박, 성과 압박, 업무의 파편화, 적은 권한, 과도한 업무 요구 등이 문제이다."을 라고 한 원인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상담은 고도의 정신적, 정서적 노동입니다. 흔히 감정 노동이라고 합니다. 상담자가 피로, 탈진, 소진에 놓여 있다면 공감과 라포르에 문제가 생기며, 판단력이 흐려지고 문제해결능력도 떨어지게 되어 상담의 효과가 낮아지게 됩니다. 그러니, 잘 쉬고 잘 회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진로 교사는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프로페셔널답게 멘털 관리도 잘해야 합니다. 저에게도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신참일 때 열정만 넘쳐고 마음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소리도 지르고 함부로 대했던 게 참 부끄럽습니다.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 합니다. 상담을 하면서 경험으로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밖 청소년 상담을 하러 갈 때는 '불금'에 맥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갑니다. 잘 쉬고 여유를 갖고 상담에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해야 내담자의 문제와 욕구를 제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담이란 한 세계를 듣는 것이고, 한 세계를 만드는 일입니다. 잘 듣고 잘 공감해야 한 세계가 닫히지 않고 열릴 수 있습니다. 제대로 들어야 한 세계를 잘 만들 수 있게 도울 수 있습니다.
요즘은 조금 덜 하지만 고등학교에 있을 때에는 학기 초나 학기말은 기본이고, 평소에도 학교 일이 많아서 노트북을 자주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주말에는 집안 일과 가족 돌봄도 해야 해서 시간이 없습니다. 게다가 하기 싫어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일요일 오후에야 겨우 노트북을 꺼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찾사'의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노래 가사처럼 "아쉬움이 쌓이는 소리, 내 마음 무거워지는 소리"가 들리지만 다급해지니 마감 효과 때문에 밀린 일을 억지로라도 조금은 처리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업무 효율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떨어집니다. 주말 내내 높은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일과 쉼이 구분되어야 하는데 노트북이 주말을 망치기도 합니다. 동료 선생님들은 노트북을 가져갔다 켜지도 못하고 그냥 다시 들고 오는 경우도 많다며 공감의 표현을 합니다. 급한 업무는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하니까 그때는 정말 요긴하긴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불안하기 때문에 들고 가는 것이죠. 보험을 드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퇴근할 때 들고 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직장에서의 긴장과 집에서의 이완이 분리가 되지 않습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일과 쉼, 긴장과 이완이 구분되고 분리되어야 합니다. 노트북을 들고 퇴근하는 게 습관이 되면 정말 곤란해집니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퇴근 후 충분한 휴식을 하지 못하면 직장에서의 업무 효율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더 잘 쉬어야 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서는 더 잘 쉬어야 합니다. 잘 쉬고 잘 회복하기 위한 일반적인 방법에는 적당한 운동, 충분한 수면, 건강한 식습관, 명상과 이완, 긍정적 자기 대화, 업무 시간과 경제 유지, 친구 및 동료와의 사회적 지지 관계 유지, 취미 및 여가 활동, 전문 상담가나 병원 도움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간섭 효과가 없도록 구분 짓기와 선택과 집중을 잘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에 나오는 공감 피로를 예방하기 위한 자기 돌봄 ABC 전략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핵심은 Awareness(알기), Balance(균형 잡기), Connection(연결하기)입니다. 가장 어려운 것이 '알기'라고 합니다. 자신의 상태를 알려고 하지 않거나, 부정하거나 혹은 알고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합니다. "자신의 상태 알기"와 "수용하기"를 통해 자신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게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혼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립은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합니다. 함께할 사람, 도움을 주고받을 사람과 기관을 찾아서 함께 해야 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은 개인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직장 일에서 높은 효율성을 보장합니다. 상담측면에서는 보면 상담에 참가하는 모든 내담자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꼭 잘 쉬고 잘 회복하는 습관을 가지기를 기원하고 응원합니다.
[참고 자료]
김현수, 오늘도 무사히!, 김현수, 창비,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