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교사의 어느 하루 - 진로 교사의 상담 이야기 4
저녁이나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동네 작은 숲을 산책하곤 합니다. 숲에는 길고양이가 있고, 너구리 가족이 있고, 예전에는 놓아기르던 토끼도 있었습니다. 숲의 남쪽에는 백로 서식지가 있습니다. 백로는 봄부터 가을까지 지내는 여름 철새인데, 4~6월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습니다. 새끼를 키우는 여름에 한창 시끄럽습니다. 산책 코스에 백로 서식지가 있는데, 아내는 백로 울음소리가 기괴하고 시끄럽다고 그쪽으로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아내에게 길 잃은 새끼 백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깨 치료 때문에 급히 병원을 가는데, 새끼 한 마리가 공원 밖 아스팔트 도로 위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게 아닙니까? 아무리 이면도로라 해도 차가 자주 다니는데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며칠 전 큰 도로에서 로드킬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큰 소리로 쫓아 보내고 바빠서 저는 제 갈 길을 갔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돌아보니, 글쎄 영 엉뚱한 방향으로 계속 가는 게 아니겠습니다. 예약 시간 때문에 바빠서 망설였지만 걱정이 되니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갔습니다.
난생처음 팔자에 없는 새몰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놈이 똑바로 안 가고 자꾸 옆길로 새려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동물이나 인간이나 똑같습니다. 겁 없고, 좌충우돌하고, 질풍노도의 청소년은 어디에나 다 있기 마련입니다. 호르몬 불균형일 수도 있고, 경험 부족 때문이기도 하겠죠. 겨우 서식지가 있는 공원 계단 위로 몰아서 어미 백로들 곁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진땀을 뺐습니다. 덕분에 병원에는 조금 지각을 했고요.
아내가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소설 중의 하나인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이야기를 해 줍니다. 퇴학 위기에 처한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뉴욕 가출 일기라고 합니다. 다양한 해석과 논란이 있긴 하지만,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 찬 어른들의 세계에서 상처를 받은 청소년의 순수함과 성장통을 잘 보여주는 명작이라고 합니다.
"주인공이 되고 싶다던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려고 하는 건 아니지?" 토요일 오전에 학교 밖 청소년 상담을 다녀와서 인지 아내는 웃으며 농담을 합니다. 그건 아니고요.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입니다. 어른들의 세계로 떨어지려는 순수한 청소년들을 지키려는 그런 신념의 강자까지는 아니고요. 그저 학교 밖 상담은 대타 구할 때까지만 하려고요. 다만 10년째 못 구하고 있지만요. 그래도 명색이 진로 상담을 하는 사람인데 학교 안이든, 밖이든 도움은 되어야지요. 좋은 신호도 보내야 하고요. 그런데, 상담이 잘 안 되는 날에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잘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상담이 잘되지 않는 날은 마음이 영 불편합니다. 상담이 잘 안 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기 이해 부족,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 부족, 현실과 기대치의 차이, 친구 관계 어려움, 주변의 과도한 기대와 학업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정서 심리적인 문제 등 다양한 내담자 요인이 있고, 내담자의 특성과 문제에 맞지 않는 상담 기법 적용, 상담자의 건강 상태와 피로도 같은 상담자 요인도 있습니다. 물론 부족한 상담 회기와 그에 따른 라포르 미형성, 불편한 상담 장소와 시설 등 환경 요인까지 결합되면 더 힘들어집니다. 원인을 잘 살피되 상담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이 사라지지 않도록 나 스스로를 잘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소소한 대화를 나누면서 걷는 이 시간이 저에게는 회복의 시간입니다.
큰 딸이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돼지국밥을 자주 먹기 시작했고, 요즘은 "국밥이 땡긴다.”며 먼저 먹으러 가지고 합니다. 국밥 맛을 아는 걸 보니 이제 어른이 되어 가는가 봅니다. 큰 딸이 인터넷에서 봤다며 국밥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국밥집에 온 청년이 "회복돼요?"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묻는 말인데, 요즘은 국밥이 주는 따뜻함과 든든함처럼 심신이 회복되는 기분을 표현하는 유머 코드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회복될까요? 소울 푸드인 국밥처럼 제 상담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인터뷰했던 기사를 다시 보니 제목이 '8년째 신호 보내는 교사'입니다. 그러고 보니 기사 제목처럼 제가 하는 역할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두려움과 불안을 만드는 나쁜 소식도 많지만, 용기를 북돋아 주고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소식도 많습니다. 나쁜 소식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전해줄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라도 좋은 신호를 자주 보내야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신호에 더 많이 성장하고 행복해하기 때문입니다. 진로 교사는 좋은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심 어린 경청과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긍정의 메시지를 보내야 합니다. 현재 위치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되 강점과 잠재력도 알려주고,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지속적인 지지와 격려를 보내야 합니다. 진로 교사는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진로 교사는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는 페이스메이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