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깍지벌레
#1. Phone, no longer Smart
스마트폰을 버렸다. 전화나 문자 등 휴대폰의 기본 기능에 인터넷 접근이라는 기능을 더하면 스마트폰이 된다. 나는 휴대폰은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스마트폰은 버리기로 했다. 물론 회사 메일, 내비게이션, 음악 감상, 오디오북 등의 기능은 여전히 활용한다. 버려낸 것은 인터넷(Chrome, Safari 등)과 유튜브, 각종 SNS다. 인터넷을 끊어내니 휴대폰으로 웹툰을 볼 수도, 쇼핑을 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수도 없다. 블로그에 접속할 수도 없다.
내 스마트폰은 더 이상 스마트하지 않다. 그냥 폰이다. 휴대폰이 멍청(?)해짐으로써 나는 주의력을 되찾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별 다른 의도도 목적도 없이 흘려보내던 시간을 되찾았다. 되찾은 시간은 독서나 사색, 바깥 풍경 바라보기, 사람들 관찰하기, 운동할 때 심박과 호흡에 집중하기 등등으로 채워나간다. 가상의 세계를 탐험하며 도파민 자극을 탐닉하던 뇌는 이제 조금은 지루한 현실 세계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지루함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면, 분명 그 안에 충만감이 있다. 가상의 세계는 주지 못했던 충만감이.
더불어 얻게 된 큰 이득은 바로 자존감을 지켜내기가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가상 세계를 탐험하다 보면 끝없는 비교에 시달린다. 인사이드아웃 2의 '불안이'처럼, 스마트폰을 탐험하는 뇌는 자기 자신에게 계속해서 '나는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던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 옆에 있지도 않은 수백만의 불특정 다수와의 비교를 가능케 하는 마법의 도구가 스마트폰이다. 정보의 습득이라는 장점을 충분히 갉아먹고도 남을 만큼의 단점이다. 적어도 필자처럼 자주 자존감이 흔들거리는 위태로운 인간에게는 더욱 그렇다.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하다면 참고하시라. 아이폰 Screen Time > Content & Privacy Restrictions > Web Content > Unrestricted를 Only Approved Websites로 변경하고, 허가된 웹사이트 목록에 disney같이 애초에 접속하지 않는 사이트만 놔두면 Google, Naver, Youtube, Instagram, Coupang 등 스크린 타임의 8할을 차지하는 사이트로의 접근이 차단된다. 심지어 카카오톡 대화 목록에서 대화창의 이름을 검색하는 기능도 함께 차단된다.
#2. 현대인의 깍지벌레
여인초를 1년째 키우고 있다. 이파리 끝이 노랗게 변하고 갈라지는 증상이 최근 들어 부쩍 심해졌다. 영 시들시들해져서 살펴보니 줄기와 이파리에 붙어있는 1mm 크기의 깍지벌레가 주범이었다. 깍지벌레를 퇴치하지 않는다면 증상은 점점 심해질 거고, 식물의 생명이 소멸할 때까지 벌레의 공격은 계속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이 정도면 충분히 아팠으니 이제 나을 때가 됐다’고 말한다면 그 말에는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질병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증세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이치는 간단하고 자명하다. 여기까지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이제 같은 이치를 다르게 표현해 보자. 식물이 갈변하고 시들어가는 증세는 현대인의 무분별한 소비 중심 문화에 대응된다. 이 증상을 초래한 근본 원인은 현대인의 내적 공허감이다. 이 내적 공허감은 우리의 생명, 우리가 세상에 살아 숨 쉬는 100여 년 남짓한 시간을 좀먹는 깍지벌레와 같다. 감염된 사람은 삶을 각종 상징물들로 끊임없이 채우는 병에 걸린다. 이 병을 반드시 치유해야 하는가?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치유하지 않고 현재의 양식을 지속할 경우 생길 부작용에 대하여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가? '선택'을 위해서 필요한 전제 조건은 부작용에 대한 이해다. 병을 치료하지 않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내리는 선택은 '선택'이 아니다. 부작용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자신에게 익숙하다'거나 '남들이 다 한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해로운 생활양식을 지속하는 것은, 본인이 무어라고 부르든 간에, 진정한 의미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무의식적 휩쓸림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휩쓸림이 몰아치는 세상에서 견고하게 중심을 지키고 서있는 것은 예민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고, 그것은 쉬운 길이 아니다. 휩쓸려 다니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득이 있는 일이다. 그 이득은 자신의 몸과 정신 건강에 이로운 것이며, 자신을 위했을 뿐인데도 부산물로 인류와 지구 전체에 이득을 가져다주는 길이기도 하다.
2부에서는 내적 공허감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려 한다.
그대의 존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대의 삶을 덜 표출할수록
그만큼 그대는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그만큼 그대의 소외된 삶은 더 커진다. - 카를 마르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