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화 진단과 국제 기준의 긴장

PTSD를 둘러싼 진단 체계의 미래

by 민진성 mola mola

정신의학의 진단 체계는 언제나 딜레마 속에 놓여 있다. 한쪽에는 개인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포착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화된 언어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이 있다. PTSD 진단은 이 긴장의 좋은 사례다.



국제 기준의 역할

DSM이나 ICD 같은 국제 진단 기준은 단순히 임상 매뉴얼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 연구자와 의사, 보험 제도와 국가 정책을 묶어내는 공통 언어다. 연구자에게는 비교 가능한 데이터의 기반이 되고, 의사에게는 진료와 보험 청구의 규칙이 되며, 정책가에게는 정신건강 예산을 배분하는 지표가 된다. 이 때문에 국제 기준은 어느 정도의 단순화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의 고통을 섬세하게 담아내기보다, 최소한의 합의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시된다.



개인화 진단의 필요성

하지만 실제 환자는 기준의 틀을 벗어난다. 같은 PTSD라 해도, 아동·노인·발달장애 성인·문화적 배경에 따라 증상 양상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아동은 언어 대신 놀이와 행동으로 고통을 표현한다. 노인은 기억 저하와 수면 장애가 트라우마 반응과 겹쳐 나타난다. 특정 문화권에서는 플래시백보다 신체 증상이 중심이 된다. 이런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다면, 진단은 환자를 위한 도구라기보다 제도를 위한 형식적 장치에 머물 위험이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개인 맞춤형 진단(precision diagnosis)이 불가피하다.



국제 기준은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개인화가 확대되는 미래에도, 국제 기준은 여전히 필요할까? 답은 그렇다. 다만 형태가 바뀌어야 한다. 국제 진단 체계는 다음과 같은 계층적 구조로 진화해야 한다.

핵심 진단(Core Criteria) 국제적으로 합의된 최소한의 틀. 연구와 행정, 보험에 쓰이는 공통 언어.

세부 프로파일(Subtypes/Specifiers) 연령, 발달 단계, 문화적 배경, 생체 지표에 따른 세분화. 예: 아동형 PTSD, 노인형 PTSD, 문화적 변이형 PTSD.

개인 맞춤형 지표(Individual Profile) 임상 현장과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실제 활용되는 개인화 데이터. 뇌파, 심박 변이, 수면 패턴, 행동 데이터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국제 기준은 공통의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환자의 고통을 더 정밀하게 포착할 수 있다.



남는 질문

그러나 여전히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진단은 환자의 고통을 드러내는 언어인가, 아니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인가? 만약 후자가 더 강하다면, 개인화 진단은 결국 국제 기준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단순하다. 국제 기준이 개인화된 데이터를 흡수할 수 있는가, 아니면 두 체계가 분리된 채로 병행될 것인가. PTSD 진단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의학이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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