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은 반드시 드라마틱해야 하는가

만성적·잠행적 공황 증상의 그림자

by 민진성 mola mola

"나는 경증일까?"라는 착각

공황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사람이 갑자기 숨을 헐떡이며 쓰러지고,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죽을 것 같다"고 외치는 모습이다. 그러나 모든 공황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실제 임상에서는 만성적이고 경도(輕度)인 듯 보이는 형태로 지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짧고 빠른 호흡, 길게 들이마시면 구토할 것 같은 느낌, 헛구역질. 이런 증상이 반복되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기에 "이 정도면 경증 아닐까?"라고 스스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익숙함은 증상의 가벼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몸과 마음이 고통에 적응해버린 상태일 뿐이다.



공황발작과 공황장애의 스펙트럼

공황발작은 몇 분 안에 극심한 신체·정서적 증상이 급격히 치솟는 사건을 말한다. 반면, 공황장애는 이러한 발작 자체보다 “발작이 또 오지 않을까”라는 불안과 그 불안을 피하기 위한 회피 행동이 삶을 제한하는 상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반드시 발작이 극적이어야만 진단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짧은 호흡과 구토감이 특정 상황(외출, 사람 많은 곳, 폐쇄 공간 등)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그것을 피하기 위해 생활 반경이 병원, 미용실, 편의점 정도로 제한된다면,

이는 전형적인 예기불안과 회피 행동에 해당한다.



만성적 회피는 ‘경증’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발작을 겪지만 금세 회복한다. 또 다른 사람은 발작 자체는 격렬하지 않지만, 외출 자체를 피하며 일상을 축소시킨다. 어느 쪽이 더 "심각한" 상태일까? 정답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있다. 삶을 제한하는 회피 행동 자체가 이미 심각한 신호라는 점이다. 증상의 격렬함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기능이 얼마나 무너졌는가다.



CPTSD와의 겹침

복합외상후스트레스장애(CPTSD)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공황 증상은 종종 잠행적으로 나타난다. 외부 세계가 위협처럼 느껴지고, 몸은 이를 ‘숨이 막히는 반응’으로 기억한다. 이때 공황은 단순히 불안장애의 한 갈래가 아니라, 외상 경험과 결합한 신체화된 기억의 형태로 고착된다. 따라서 "나는 공황인가, CPTSD인가?"라는 이분법보다는, “내 몸은 외출을 위협으로 학습했고, 공황 반응과 외상 반응이 서로 강화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나를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

이제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나는 경증인가?"라는 질문은, 사실상 자신의 고통을 과소평가하는 언어일 수 있다. 더 적절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의 몸과 마음은 왜 외출을 위험으로 학습했을까?”

“이 회피 행동이 나의 일상과 존엄에 어떤 제한을 두고 있는가?”

이 질문 속에서 우리는 "급성 공황발작"이라는 드라마틱한 장면에 가려진 만성적·잠행적 공황 증상을 새롭게 조명하게 된다.



맺으며

공황은 꼭 쓰러져야만 공황이 아니다. 숨이 가빠 외출을 피하고, 필수적인 일정 외에는 스스로 나서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충분히 심각한 상태다. 익숙해져서 덜 아파 보일 뿐, 실제로는 삶의 자유를 빼앗는 만성적 공황이다. 그리고 이것을 인식하는 순간이 바로 회복의 첫걸음이다. “내가 겪는 것은 단순한 경증이 아니다.” 이 문장을 인정하는 것에서 치료와 자기 돌봄이 시작된다.




#생각번호20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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