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발작의 역설적 순간
많은 사람은 공황발작을 긴장과 압박이 최고조일 때 터지는 사건으로 상상한다. 하지만 실제 경험은 때로 그 반대다. 중요한 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사회적 긴장이 해소된 순간, 몸과 마음이 “이제 괜찮다”고 느낄 때 불시에 발작이 찾아온다. 나는 형의 결혼과 관련된 여러 행사에서 그 경험을 했다. 상견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결혼식장에서 축의금을 받고 돌아왔을 때, 친척집을 돌며 인사를 끝내고 나서야, 숨이 가빠지고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공황발작이 덮쳤다. 정작 행사 중에는 버텼는데, 긴장이 풀린 순간 몸이 무너졌다.
이 현상은 신경계의 리듬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긴장 상태에서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몸이 ‘생존 모드’로 버틴다. 그러나 긴장이 풀리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며 몸은 안정을 회복하려 한다. 이 전환 과정에서 억눌렸던 불안 신호가 반동처럼 터져 나오며 발작이 발생한다. 즉, 공황발작은 긴장이 심할 때만 오는 게 아니라, 긴장-이완의 전환 지점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복합외상후스트레스장애(CPTSD)를 겪는 사람에게 이 패턴은 더욱 익숙하다. 외상 경험을 가진 몸은 긴장 상태를 안전으로 착각한다. “버티는 것”이 오히려 평소의 리듬이 된다. 그러니 긴장이 해소될 때, 몸은 오히려 낯설고 불안한 상태로 반응한다. 그 결과, 사회적 행사가 끝나고 모두가 안도하는 순간, 내 몸은 역으로 “위험 신호”를 내보낸다. 이완을 두려워하는 몸. 그것이 CPTSD와 공황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런 경험은 생각보다 흔하다. 시험이 끝난 날 갑자기 쓰러지는 학생, 긴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뒤 병이 나는 직장인, 혹은 장례 절차를 다 마치고 나서야 무너지는 가족. 이 모든 사례에는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다만 임상이나 대중 담론에서 “발작 = 극도의 긴장 순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해소 후 발작’은 덜 주목받아 왔다. 그래서 당사자는 자기 경험을 특이하다고 오해하기 쉽다.
이 현상을 알면,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 “왜 나는 남들과 다르게 긴장이 풀릴 때 무너질까?”가 아니라, “내 신경계가 긴장과 이완을 부드럽게 전환하지 못하는구나”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치료와 회복의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긴장 상태에서만 살아남는 몸을, 이완 속에서도 안전을 느낄 수 있는 몸으로 재학습하는 것. 호흡 훈련, 점진적 근육 이완, 마음챙김, 노출치료 같은 기법들이 이 전환을 도와준다.
공황발작은 언제나 극도의 긴장 순간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긴장이 풀리고 모두가 “이제 끝났다”고 말할 때, 내 몸은 거꾸로 불안을 폭발시킨다. 그러나 이는 특이한 예외가 아니라, 신경계와 외상 기억이 만드는 또 하나의 공황의 얼굴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나를 비정상이라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내 몸이 얼마나 치열하게 버텨왔는지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인정에서, 회복의 문이 열린다.
#생각번호2025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