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를 씹으며 불안을 다루다

감각 기반 그라운딩의 개인적 변주

by 민진성 mola mola

불안이 올라올 때 나는 젤리를 찾는다

공황 불안이 올라오는 순간, 호흡은 짧아지고 몸은 위태로워진다. 이럴 때 나를 붙잡아주는 건 다름 아닌 젤리다. 쫄깃한 식감을 씹는 동안, 단맛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동안, 불안은 잠시 자리를 내어준다. 그 몇 분 동안만큼은 몸이 현재에 고정된다. 누군가는 이것을 단순한 간식 습관으로 보겠지만, 사실 이것은 감각 기반 그라운딩(sensory grounding)의 한 형태다.



그라운딩은 이론이 아니라 실험된 기술이다

그라운딩은 PTSD, 공황장애, 해리 증상 환자들에게서 실험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기법이다. 차가운 얼음을 쥐거나, 강한 냄새를 맡거나, 다섯 가지 사물을 찾아보는 행위는, 모두 “불안의 회로”에서 주의를 끌어와 현재 감각에 고정시키는 전략이다. 연구들은 이 단순한 행위가 단기적으로 불안을 완화하고, 신체를 안정시키는 데 유의미하다고 보고한다. 젤리를 씹는 것도 마찬가지다. 맛, 촉감, 리듬이 동시에 작동해 불안을 잠시 끊어준다.



왜 효과는 “먹는 동안”에만 있을까

문제는 그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젤리를 씹는 동안은 감각 자극 덕분에 불안이 줄지만, 다 먹고 나면 다시 불안이 고개를 든다. 이는 그라운딩의 구조적 한계다. 즉시 효과는 있지만, 지속 효과는 짧다. 그러나 이 짧은 효과는 결코 하찮지 않다. 순간의 진정이 반복되면서, 몸은 점차 “불안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경험을 학습한다. 그 순간이 작은 앵커(anchor), 즉 현재로 돌아오는 닻이 된다.



젤리를 나만의 앵커로 만들기

젤리를 활용한 불안 대처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개인화된 치료 전략이 될 수 있다. 불안이 시작될 때 젤리를 씹으며, “나는 지금 씹고 있다, 나는 현재에 있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연결한다. 이렇게 하면 단순한 감각 경험이 아니라, 불안을 관리하는 자기 언어로 확장된다. 젤리는 나의 앵커가 되고, 나는 불안 속에서도 현재에 발을 붙일 수 있다.



지혜와 주의 사이에서

물론 이 방법에도 주의는 필요하다. 너무 의존하게 되면 “불안 = 젤리 필요”라는 새로운 조건화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젤리를 주요 무기로 쓰되, 점차 다른 감각 자극(차가운 물, 향, 손목 두드리기)으로도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젤리를 시작점으로, 나는 나만의 감각적 도구 상자를 만들어갈 수 있다.



맺으며

공황 불안은 때로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와 나를 삼킨다. 그 앞에서 젤리를 씹는 행위는 소박해 보인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파도가 아닌 현재에 주의를 고정시킨다. 젤리를 씹는 나의 작은 습관은, 사실 몸과 마음이 협력해 만든 과학적이고 개인적인 치유 전략이다. 이 사소한 전략 속에서 나는 오늘도 회복의 단서를 찾는다.




#생각번호20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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