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드러내는 몸, 불안을 키우는 몸
우리는 흔히 마음이 먼저 아프고, 몸은 그 뒤를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경험은 정반대일 때가 많다. 불안이 쌓이면 마음보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혓바늘이 돋고, 입술이 터지고, 대변에 소량의 피가 묻어나기도 한다. 몸은 말보다 먼저 진실을 말한다. 이것은 분명 몸의 지혜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 고통을 몸이 드러내 주기에, 우리는 그 신호를 보며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깨닫게 된다.
문제는 이 지혜가 언제나 위로만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곧바로 새로운 불안을 불러온다. “혹시 큰 병일까?”, “이 출혈이 암의 징후는 아닐까?”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아팠을 뿐인데, 그 아픔 자체가 다시 공황 불안의 연료가 된다. 몸은 분명 나를 지켜주려는 신호를 보내는데, 그 신호가 오히려 나를 더 위축시키는 아이러니. 그래서 몸의 언어는 동시에 지혜이자 곤혹이 된다.
복합외상후스트레스장애(CPTSD)나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이 현상은 더 익숙하다. 몸은 끊임없이 경계 태세를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작은 상처와 증상으로 불안을 가시화한다. 몸의 지혜가 나를 지키려 하지만, 그것이 곧 새로운 곤혹을 낳는 것이다.
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서는 몸의 신호를 두 가지 층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고로서의 지혜: “너무 긴장했다, 돌봐야 한다”는 메시지.
불안의 연료로서의 곤혹: 과도한 신호가 오히려 공황을 유발한다는 역설.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이중성을 알고 인정할 때 우리는 몸의 언어를 조금 더 덜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몸은 늘 말보다 먼저 진실을 고백한다. 그 언어는 지혜롭지만, 때로는 곤혹스럽다. 나는 그 사이에 서 있다. 몸의 지혜 덕분에 나를 이해하지만, 몸의 곤혹 때문에 다시 불안해진다. 그러나 이 이중성을 이해하는 순간, 나는 적어도 몸과 싸우지 않는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조건적인 적으로도, 무조건적인 진리로도 보지 않고, 지혜와 곤혹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회복 속에서 배워가는 방식이다.
#생각번호2025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