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외상을 조기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
고등학교 교실에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저는 결혼을 일찍 하고 싶어요.” 친구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선생님은 웃으며 “그런 경향이 있지”라고만 덧붙였다. 그 순간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훗날 돌이켜보면 그 말은 내 안에서 오래 울린 신호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만성적인 외상을 경험하고 있었고, 아직 CPTSD라는 이름을 얻기도 전이었다. 그렇다면 왜 아무도 내 신호를 붙잡지 않았을까? 왜 학교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상담실 문은 늘 열려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외상을 경험한 아이가 스스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드물다. 자신의 경험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누군가에게 말했을 때 돌아올 파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대 경험을 “내가 참으면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빙산의 일각만이 제도로 포착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사회학과 인류학 두 전공의 박사 학위를 가진 분이었다. 충분히 민감하게 포착할 능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조용히 일반화로 넘긴 이유는 뭘까? 교사는 치료자가 아니다. 교실은 공개된 공간이고, 개인사를 캐묻는 순간 학생을 재외상화하거나 낙인찍을 수 있다. 게다가 학교는 절차로 얽혀 있다. 외상을 의심한다는 말은 곧 신고, 상담, 행정 절차로 이어질 수 있기에 교사는 섣불리 손을 내밀기 어렵다. 윤리와 제도의 무게가 때로는 학생의 신호를 가린다.
“조기 결혼 욕구” 같은 표현은 진단서에 적히는 침습적 재경험이나 과각성과는 다르다. 임상에서는 장애로 보지 않지만, 발달심리적으로는 충분히 중요한 표지다. 문제는 그 모호함이다. 교사가 “혹시 외상 때문일까?” 하고 떠올리더라도, 뚜렷한 기준이 없어 개입을 주저한다. 결국 신호는 흘러가고, 학생은 자신의 발화를 “그저 우스갯소리”처럼 처리한다.
돌이켜보면 내 “조기 결혼” 발언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아동기 외상은 뇌와 호르몬 체계에 흔적을 남긴다. 스트레스 반응 체계는 과도하게 예민해지거나 무뎌지고, 세계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래서 몸은 빠른 독립, 빠른 결합, 빠른 안전을 요구한다. 결혼은 그 요구를 제도적으로 봉인하는 가장 확실한 장치처럼 보였다. 당시의 나는 아직 CPTSD로 진단되지 않았지만, 이미 발달의 궤적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학생이 스스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학교가 여전히 “필요하면 와라”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상담실 문을 활짝 열어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사는 공개 석상이 아니라 조용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까 네 말이 마음에 남았어. 혹시 원하면 상담실을 안내해줄게. 원치 않으면 지금은 괜찮아.” 이 짧은 문장은 강요가 아니라 선택지를 건네는 제스처다. 학생에게는 그 선택지가 삶의 경로를 바꿀 수 있는 출구가 된다.
내가 교실에서 흘려 보낸 말은 외상의 직접적인 증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내 안의 균열을 드러내는 작은 조각이었다. 그때 선생님은 침묵을 택했다.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역할과 제도의 벽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세대의 교실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학생은 스스로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학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생각번호202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