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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일찍 결혼하고 싶었을까

지연발현 CPTSD 이전에 드러나는 발달적 반응들

by 민진성 mola mola

고등학교 사회문화 시간이었다. 친구들이 수업 중에 나를 힐끗 봤고,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제가 평소에 결혼을 일찍 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녀서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동기 역경이 있던 학생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때의 나는 아직 “진단명”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PTSD)는 훗날, 지연발현의 형태로 찾아왔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장애로 분류될 만큼의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도 왜 ‘조기 결혼’이라는 욕구가 내 말과 선택의 맥락에 자리 잡았을까?



증상이 아니라 발달 반응일 수 있다

외상은 사건이자 과정이다. 임상 진단(PTSD/CPTSD)은 일정 기간, 일정 강도의 증상 군—침습적 재경험, 회피, 과각성, 자기·대인 기능의 변화—이 충족될 때 붙는다. 그러나 진단 이전의 시간에도 외상은 발달의 궤적 안으로 스며든다. 안전을 갈망하고, ‘내 가족’을 빨리 만들고자 하는 상상이 커진다. 독립과 의존이 서로 충돌하는 애착의 양가성이 언어와 선택에 배어든다. “지금의 환경을 벗어나야 산다”는 생존 전략이 가치 판단의 우선순위를 바꾼다. 이러한 흐름은 진단서의 문장으로는 포착되지 않지만, 청소년기의 말·행동·계획 속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으로 관찰된다. 다시 말해, 조기 결혼 욕구는 ‘증상명’이 아니라 발달적 반응의 표지일 수 있다.



애착 도식: 빨리 나만의 안전을 만들고 싶다

아동기 만성 외상은 애착의 내부 작업모형을 흔든다. 보호자로부터 예측 가능한 위로와 일관된 경계가 제공되지 않았을 때, 친밀함은 동시에 갈망의 대상이자 위험의 징후가 된다. 불안-집착적 경향은 “떠나지 않는 사람, 무너지지 않는 집”을 더 빠르게 확보하려는 욕구로 나타나고, 회피적 경향은 정식 관계의 책임을 두려워하면서도 ‘형식’으로 안전을 봉인하려는 충동을 낳는다. 결혼은 그 봉인의 가장 강력한 제도적 장치처럼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욕구가 병적이라서가 아니라 합리적이라서 강해진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무질서와 오늘의 불안정 앞에서, 결혼은 “안전과 소속을 즉시 확정하는 제도”처럼 보인다. 다만 애착 도식이 불안정할수록 관계의 질과 위험 신호를 평가하는 감각이 흐려질 수 있고, 이때 조급함은 취약성을 동반한다.



발달가속: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서 시간은 빨라진다

조기 역경은 뇌·호르몬·행동 레벨의 발달 시계에 영향을 준다. 환경이 “가혹하고 예측하기 어렵다”고 학습될수록, 생존 전략은 빠른 분화와 빠른 결합으로 이동한다. 사춘기는 당겨지고, 친밀성 탐색은 빨라지며, “지금 얻을 수 있는 안정”의 가치가 상승한다. 이러한 발달가속은 진화적으로는 이해 가능한 적응이지만, 현대의 교육·노동·돌봄 체계에서는 오히려 장기적 기회비용을 키우기도 한다. 조기 결혼의 욕구는 이 가속된 시간감 속에서 “기회를 기다리기보다 안전을 확정하려는 선택”으로 읽힌다.



신체의 언어: HPA 축이 말하는 ‘지금 당장’

아동기 만성 스트레스는 HPA 축(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의 조절을 변화시킨다. 어떤 이는 경보 시스템이 과도하게 예민해져 “지금, 즉각적인 안전 조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다른 이는 신호가 둔감해져 위험을 과소평가한다. 두 경우 모두 장기 계획을 위한 느린 의사결정보다, 단기 안전을 성급히 고정하는 선택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 결혼이 그 가장 빠른 안전 장치로 해석될 때, 신체의 언어는 마음의 언어를 밀어낸다.



구조적 현실: 결혼이 ‘탈출로’처럼 보일 때

학업 중단의 위험, 경제적 취약, 사회적 지지망의 희소성—이 모든 구조적 요인은 집을 떠나고 싶다는 욕구에 제도적 출구를 제공하지 못한다. 제도가 비어 있을수록, 개인은 제도를 발명하려 한다. 많은 맥락에서 결혼은 그 발명의 이름이 된다. 새로운 주소, 새로운 성인 지위, 새로운 가족 호칭. 그러나 탈출로로 선택된 결혼은 때로 경제적 의존, 의사결정권 약화, 친밀한 파트너 폭력이라는 또 다른 구조로 닫히기도 한다. 조기 결혼의 위험을 이야기할 때, 개인의 성향만 떼어내 비판할 수 없는 이유다.



지연발현과 “미세 표지”

그렇다면, CPTSD가 지연발현되기 전의 나는 “정상”이었을까? 임상적 의미의 장애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외상의 ‘미세 표지’는 이미 있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관계를 해석하는 언어의 습관(“안전·소속·확정”)

선택을 밀어붙이는 시간감(“지금, 빨리, 확정”)

위험을 감지·구분하는 능력의 흔들림

이 작은 징후들은 먼 훗날의 진단명을 예고하는 약한 신호였을 수 있다. 선생님의 “경향이 그렇다”는 말은 통계적 관찰의 언어였고, 나는 그 집합의 한 점으로서 개인의 서사를 살고 있었다.



욕구의 두 얼굴: 병리화 대신, 맥락화

“일찍 결혼하고 싶다”는 말 자체를 병리화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것은 안전을 찾고, 통제감을 회복하고, 존엄을 지키려는 욕구일 수 있다. 동시에, 그 욕구가 조급함·의존·위험 간과와 결합될 때, 삶의 다음 장은 다시 미세한 균열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자기 욕구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를 맥락 속에서 번역하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인가, 안전의 확정증명서인가.

나는 누구와 무엇 위에서 안전을 설계하려 하는가.

이 선택이 나의 경계·의사결정권·경제적 자율성을 확장하는가, 축소하는가.



나는 어떻게 쓰고, 어떻게 살 것인가

뒤늦게 CPTSD라는 이름을 알게 된 이후, 나는 과거의 말을 다시 읽어야 했다. “일찍 결혼하고 싶다”는 문장은 그때의 나에게 절박한 안전 설계도였다. 지금 나는 그 설계도를 고쳐 그린다. 결혼이라는 제도 하나로 모든 균열을 봉합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관계의 질, 경계의 기술, 경제적 자립, 신체의 리듬을 동시에 설계한다. 치료 장면에서 배운 언어들을 일상으로 가져온다. 애착은 “붙잡음”이 아니라 서로의 자유를 보장하는 구조라는 것, 안전은 문서가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의 신뢰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사랑을 원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을 안전의 ‘증빙’으로 삼을 때 사랑은 무너진다. 사랑을 사랑으로 두고, 안전은 안전의 언어로 설계할 때, 과거의 발달 반응은 현재의 성숙한 선택으로 업데이트된다. 조기 결혼의 욕구를 부끄러워하지 않되, 그 욕구를 느리게, 정교하게, 나에게 유리하게 번역하는 것. 이것이 지연발현 이전에 이미 시작되어 있던 나의 회복 과정이었음을, 나는 글로 확인한다.




#생각번호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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