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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은 모두 장애로 이어지지 않는다

침습적 증상과 외상 후 회복의 경계

by 민진성 mola mola

외상과 장애의 구분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외상(trauma)”이라는 단어는 두 층위에서 사용된다. 첫째는 사건 자체로서의 외상이다. 전쟁, 폭력, 재난, 사고와 같은 충격적인 경험은 누구에게나 외상적 사건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사건 자체만으로는 곧바로 정신의학적 진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둘째는 심리 반응으로서의 외상이다. 같은 사건을 겪더라도 어떤 이는 시간이 지나며 “힘든 경험”으로 과거에 남기는 반면, 다른 이는 그 기억이 현재를 침범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후자의 경우가 바로 임상에서 말하는 침습적 증상이며, 이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ASD(급성 스트레스 장애)의 핵심 진단 기준이 된다.



침습적 증상의 의미

“침습적”이라는 말은 단순한 고통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강제로 현재로 침입하는 경험을 의미한다.

갑작스러운 플래시백

악몽을 통한 반복적 재경험

특정 자극(소리·냄새·장소)에 의해 당시 감정이 현재처럼 몰려오는 현상

이런 증상은 개인의 경계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일상을 방해한다. 반면, 통제가 가능한 기억―즉, 원할 때만 떠오르고 과거로서만 머무는 기억―은 침습적이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외상적 사건은 있었지만 침습적 반응이 없다면, 외상은 경험했으되 장애로는 진단되지 않는다.



왜 어떤 이는 장애로, 어떤 이는 회복으로 이어지는가

외상 사건을 겪은 사람 모두가 PTSD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외상 사건 노출자 중 상당수는 회복(resilience)하거나 오히려 외상 후 성장(PTG, Post-Traumatic Growth)을 경험하기도 한다. 개인의 회복 탄력성, 사회적 지지망, 사건의 의미 부여, 발생 맥락 등이 장애 발생 여부를 크게 좌우한다.

즉, 외상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이는 침습적 증상으로 고통을 겪고, 어떤 이는 힘들지만 스스로의 내적 자원을 통해 의미를 재구성하며 살아간다.



맺음말

외상과 장애를 동일시하는 시선은 인간의 복잡한 회복 능력을 간과한다. 외상은 누구에게나 충격적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삶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더 깊은 성찰과 성장을 불러오기도 한다. "우리가 외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외상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그 외상이 현재의 삶을 어떻게 침범하고 있는가?”이다. 이 구분이야말로 외상 이해의 전문적 토대이며, 동시에 회복 가능성에 대한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생각번호20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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