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조기 발견을 가로막는 구조와 우리가 풀어야 할 윤리적 과제
나는 오래전부터 한 가지 모순을 붙잡고 있었다. 아동학대나 어린 시절 외상은 대부분 가족 내부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미성년자는 법적으로 독자적인 결정 능력이 없기에, 상담·치료·지원의 대부분은 부모 동의를 필요로 한다. 이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는 단순하다. 피해자가 도움을 받으려면 가해자의 허락이 필요하다.
이 역설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조기 발견 대안의 발목을 잡는 근본적인 윤리적 난제다. 교사의 관찰이든, 상담실의 제안이든, AI 기반의 행동 인식 기술이든, 결국 부모 동의라는 관문 앞에서 무력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모는 법적으로 아동의 권리를 대리한다. 의료 동의, 심리검사, 상담 연계까지 부모의 서명이 요구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학대 상황에서 이 구조는 곧 가해자의 동의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상담이나 개입의 문턱은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아동에게 가장 높게 세워진다.
이건 단순히 제도의 결함이 아니라, 가족 중심주의와 부모권 우선주의가 제도 설계에 깊숙이 박혀 있는 결과다. “부모가 아동을 보호한다”는 전제가 흔들릴 때, 지금의 시스템은 무력해진다.
학교: 교사가 아동학대를 의심해도, 상담·치료로 곧장 이어지지 못한다. 공식 절차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교실의 관찰이 공중으로 흩어진다.
의료: 병원에서 의심 징후를 발견해도, 부모가 협조하지 않으면 정밀검사·치료는 지연된다.
기술: CCTV나 AI 행동 인식이 신호를 포착해도, 실제 개입은 결국 보호자의 동의와 협조에 달린다.
결국 아동은 수많은 “조기 발견 기술”과 “의무적 보고 시스템”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막상 실질적 도움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 역설을 풀기 위해 여러 나라들은 부모 동의 원칙을 완화하거나 보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동의 독자적 권리 인정: 영국의 Gillick competence 원칙은 아동이 충분히 이해·판단할 능력이 있다면 부모 동의 없이도 의료·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제3의 보호자 제도: 미국 일부 주에서는 법원이 학대 의심 아동에게 guardian ad litem(임시 법정 대리인)을 지정해 부모 대신 동의권을 행사하게 한다.
학교·기관의 자동 연결 권한 강화: 교사나 상담사가 학대 징후를 포착하면, 부모 동의와 무관하게 전문기관에 직접 연계할 수 있도록 절차를 단순화한다.
그러나 제도 개선은 곧바로 새로운 윤리적 질문을 낳는다.
아동에게 독자적 권리를 어디까지 부여할 것인가?
부모권과 아동권이 충돌할 때, 누구의 권리가 우선인가?
AI나 CCTV 같은 기술이 아동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더라도, 그 대가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잘못된 오탐지로 낙인찍힌 아동에게 발생할 2차 피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아동 보호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사회에서 권리·책임·자율성을 어떻게 균형 잡을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아동학대 조기 발견의 아이러니는 결국 권리 구조의 전환을 요구한다. 부모가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순간, 부모는 더 이상 절대적 대리인이 될 수 없다. 제도는 아동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넓히고, 교사·의료인·기관이 부모 동의 없이도 개입할 수 있는 안전한 예외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낙인, 책임 분담 같은 윤리적 문제는 반드시 함께 다뤄야 한다. 하지만 그 복잡성을 이유로 손을 놓는다면, 또 다른 아이들은 가해자의 동의가 없어 구원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 방치된다. 아동은 스스로 오지 않는다. 부모 동의의 벽에 막혀서도 오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회가, 제도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생각번호202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