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의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해외사례가 보여주는 교사의 포착 능력 교육의 필요성

by 민진성 mola mola

고등학교 교실에서 “저는 결혼을 일찍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순간이 있다. 그 말은 사실 내 안의 균열에서 흘러나온 작은 신호였다. 하지만 수업은 별다른 파동 없이 지나갔다. 선생님은 “그런 경향이 있다”는 말로만 정리했고, 나 역시 그저 넘어갔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은, 그때 이미 나는 만성적 외상을 겪고 있었고, 훗날 CPTSD라는 이름과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 기억은 지금까지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왜 아무도 내 신호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더 정확히 말하면, 왜 교사들이 “법적 신고 의무자”라는 타이틀만 가지고, 실제로는 그 의무를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걸까?



법적 의무와 현실 사이의 간극

한국에서 교사들은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다. 교육청과 학교는 매년 의무 교육을 진행하며, 아동학대가 의심될 경우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교육은 법적 절차와 신고 기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학생이 교실에서 내뱉은 짧은 말, 반복되는 행동, 작게 스쳐 지나가는 표정 같은 비진단적 신호를 포착하고 의미화하는 훈련은 거의 제공되지 않는다. 결국 교사들은 “분명 뭔가 이상한데” 하는 직감을 가져도, 이를 실제 개입이나 연결로 전환하기 어렵다. 신고의무자는 맞지만, 신고할 만한 확신을 갖추도록 훈련받은 사람은 아니다.



해외사례: 트라우마 인지 학교

미국과 영국, 캐나다는 지난 10여 년 동안 “트라우마 인지 학교(Trauma-Informed School)”라는 모델을 도입해 왔다. 이 모델은 단순히 상담교사나 전문가에게만 책임을 맡기지 않는다. 담임, 행정직, 급식실 직원, 심지어 경비까지 모든 교직원이 외상 신호의 ‘게이트키퍼’로 훈련된다.

이런 학교에서는 학생이 스스로 상담실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교사가 먼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주고, 학생은 그 문턱을 넘을 선택지를 얻는다.



왜 교육이 필요한가

외상 경험이 있는 아동·청소년은 거의 스스로 상담실을 찾지 않는다. 두려움, 수치심, 혹은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는 자기합리화 때문에 신호는 간접적이고 모호하게 흘러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가 단순히 법적 의무를 ‘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은 책임을 부여하지만, 책임을 수행할 능력은 훈련을 통해서만 길러진다. 학생의 미세한 신호를 발견하고, 안전하게 다가가며, 필요하다면 따뜻하게 다른 기관으로 연결하는 역량은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체계적으로 배우고,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몸에 배는 기술이다.



법적 의무와 교육은 함께 가야 한다

한국의 학교 현장은 지금까지 교사의 법적 책임만 강조해 왔다. 하지만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별도로 길러주지 않았다. 이 간극이 바로 내가 교실에서 보낸 신호가 공중으로 흩어져 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단순히 “신고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신고할 수 있는 눈과 귀, 그리고 학생이 상처받지 않게 문을 열어주는 기술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법적 의무와 교육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학생은 스스로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학교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그 다가섬이 안전하고 전문적이 되려면, 교사는 의무와 함께 능력을 부여받아야 한다.




#생각번호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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