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피해 아동 보호 체계의 딜레마와 개선 방향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문제에서 제도가 늘 붙잡아온 원칙이 있다. 바로 “가정 복귀”다.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이 아동 발달에 가장 자연스럽고, 장기적으로도 바람직하다는 전제 말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아동 보호 정책은 가능하다면 아동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가정이 이미 아동에게 상처를 입힌 공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동학대 피해 아동이 국가 보호 아래 분리되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그 경험은 종종 이렇게 번역된다. “국가도 결국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이 불신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 아동의 회복과 발달을 결정적으로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가정은 아동에게 정체성과 소속감을 제공하는 중요한 터전이다. 부모와의 애착은 생애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공동체 안에서 자라는 경험은 성인기의 관계 능력에도 연결된다. 이런 이유로 “가정 복귀”는 여전히 보편적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학대가 발생한 가정은 단순히 일시적으로 삐걱거린 공간이 아니라, 권력 불균형과 폭력이 구조화된 환경일 수 있다. 그런 집으로 아이를 되돌려 보내는 일은 곧 재외상화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문제는 현재의 제도가 이 위험을 체계적으로 검증하지 못한 채, 여전히 가정 복귀를 “정상화”의 지름길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아동은 분리 보호 후 짧은 상담이나 부모 교육 과정을 거쳐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마치 병의 원인을 치유하지 않고 증상만 잠시 가린 채 환자를 다시 같은 환경에 돌려보내는 것과 같다.
아이는 곧 깨닫는다. “나를 아프게 한 그곳으로, 아무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나를 돌려보냈구나.” 이는 국가와 제도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낳고, 피해 아동의 회복을 가로막는 이중 상처가 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원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정 복귀 전 검증 절차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이다.
재학대 위험성 평가: 부모의 태도 변화, 과거 학대 양상, 스트레스 요인 개선 여부를 다각도로 점검해야 한다.
가정환경 실사: 주거·경제 여건, 부모의 음주·폭력·정신건강 문제를 확인해야 한다.
아동의 의견 청취: 무엇보다 아이 자신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 그 집을 안전하다고 느끼는지가 고려돼야 한다.
사후 모니터링 계획: 복귀 후에도 일정 기간 정기적 가정 방문과 상담 연계를 보장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행정 권고가 아니라, 법적 절차로 강제해야 한다. 그래야 가정 복귀가 단순한 행정상의 귀환이 아니라, 안전을 보장하는 복귀가 될 수 있다.
영국은 가정 복귀 전 아동보호 컨퍼런스(child protection conference)를 의무화하여, 사회복지사·학교·의료 전문가가 함께 아동의 안전을 다각도로 검토한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법원이 복귀 전 부모의 행동 변화를 증거 기반으로 심사하고, 위탁가정과 병행하며 단계적으로 복귀시키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복귀는 원칙이지만, 검증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을 제도화한 것이다.
가정 복귀는 여전히 원칙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칙은 무조건적 귀환이 아니라 조건부 귀환이어야 한다. 조건은 단순하다. 그 집이 아이에게 다시 상처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는 실질적 보장. 제도가 해야 할 일은 부모의 권리와 아동의 권리 사이에서 더 이상 눈치를 보는 게 아니다. 아동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가정 복귀는 원칙이 아니라 위협이어야 한다. 아이는 돌아갈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안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선언해야 한다. “가정 복귀는 원칙일 수 있다. 그러나 검증은 의무여야 한다.”
#생각번호202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