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정책과 정치가 과학을 이기는 이유
각국은 비교우위에 따라 생산과 분업을 하고, 국경 없는 시장에서 물자와 자본이 자유롭게 흐르면 사회 전체의 비용은 낮아지고, 모두가 조금씩 더 부유해질 수 있다는 것이 자유무역의 대전제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그는 한국산 전 품목에 대해 25%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미국을 우선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모든 동맹국과의 무역규칙을 무너뜨리고,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은 대부분의 제품에 인위적 장벽을 세우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비합리적인 정책이 반복되는 걸까? 그리고 그것이 정치적 단기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경제적 장기 효과로는 왜 파국에 가까운가?
트럼프의 전략은 단순하다. 미국 중산층이 체감하는 불안과 분노를 “중국과 한국이 일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경제학적으로는 사실이 아니지만, 감정적으로는 매우 설득력 있다. 현실은 자동화와 기술의 발전, 그리고 자국 기업들의 해외 생산이 일자리를 줄인 것인데, 그 복잡한 설명보다는 “한국차 때문에 미국 자동차 산업이 죽었다”는 설명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 정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붙잡는 것이다.
관세는 수출국 기업에만 타격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비용은 최종적으로 자국 소비자가 부담한다. 25%의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소비자들은 더 비싼 한국산 제품을 사거나, 아니면 비효율적인 미국 내 제품을 비싸게 구매해야 한다. 이는 물가 상승을 유발하고, 특히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자국 기업은 보호받는 대신 혁신과 가격 경쟁력에서 느슨해지고, 이는 결국 국가 전체 생산성의 저하로 이어진다.
오늘날의 경제는 단일국가가 혼자 모든 것을 만들 수 없는 구조다. 하나의 스마트폰조차 수십 개 국가의 부품과 기술을 조합해 만들어진다. 미국의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애플, 테슬라, GM 모두 해외 조달망 없이는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이 글로벌 공급망을 무력화시킨다. 공급망의 단절은 생산 차질, 품질 저하, 수익성 감소로 이어진다.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 질서를 설계해 온 국가였다. FTA와 WTO 체제를 통해 전 세계의 ‘게임 규칙’을 만들고, 거기서 자국 기업의 우월한 기술력과 법적 신뢰성을 무기로 부를 창출해왔다. 하지만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그 게임판 자체를 뒤엎는다. 미국이 관세 장벽을 세우고 동맹을 배척하면, 세계는 미국 중심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 EU, 동남아시아가 새로운 경제동맹을 만들고 미국을 차단된 섬처럼 고립시킬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힘'으로 이기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게임의 설계자’로서의 권위를 잃고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내어주는 일이다.
경제학은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해답을 주지만, 정치인은 단기적으로 박수를 받는 해답을 택한다. 정치적 승리는 당장의 여론을 움직이는 언어에서 나오며, 대중은 복잡한 인과관계보다 간단한 분노의 대상을 원한다. 과학자나 경제학자가 정치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올바름'을 말하지만, 정치는 '선택됨'을 필요로 한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일시적인 인기를 줄 수 있지만, 결국 미국 내 소비자, 기업, 그리고 글로벌 경제 시스템 전체에 장기적 손실을 남긴다. 과학과 경제는 느리지만 정확하다. 정치와 포퓰리즘은 빠르지만 결국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지금은 말이 이기지만, 역사는 구조를 따라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조를 바꾸는 말, 구조를 이해시키는 언어를 다시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설득이고, 정치가 과학을 배울 때 가능한 일이다.
#2025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