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냄에 대하여

기질인가, 병리인가

by 민진성 mola mola

요즘 들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요?”, “드러내는 게 두렵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두렵지 않다. 창피하지도 않고, 위축되지도 않고, 때로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다. 그런데 가끔, 나 스스로도 의아하다. "이건 나의 기질일까? 아니면 병리 현상일까?"



기질로서의 솔직함

사람마다 다르다. 정서표현 욕구(expressive need)는 개인차가 크다. 외향적 성향(Extraversion)이나 개방성(Openness)이 높은 사람일수록 내면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고, 오히려 감정표현을 통해 유대감을 강화한다고 믿는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글을 쓰고, 대화하고, 표현하는 일을 좋아했다. 비밀을 감추기보다는 분석하고 꺼내놓는 데서 안도감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가진 기질 중 일부였을지 모른다. 다만, 그 기질이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강화된 적은 없었다.



증상으로서의 드러냄 — 경조증과 '노출욕구'

정신의학에서는 **경조증(hypomania)**의 증상 중 하나로 ‘자기노출 충동’ 또는 검열의 약화(diminished self-censorship)가 있다. 대표적인 현상이 Flight of Ideas — 사고의 급격한 전환과 연상의 흐름이다. 이때, 사람은 자기 속의 생각을 쏟아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다. 속도가 빠르고, 감정이 고조되며, 자기 드러냄에 대한 억제가 현저히 낮아진다. 특히 SNS나 블로그, 브런치 같은 플랫폼에서 과도하게 개인사를 털어놓거나, 평소보다 노골적인 표현을 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 속도와 강도다. 드러냄은 괜찮다. 그러나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드러내는지를 잃는다면, 그것은 자기표현이 아니라 기능저하의 신호일 수 있다.



나는 어디쯤일까?

나는 최근 몇 달간 너무 많은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들은 대부분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아픔, 병력, 약물 복용, 해리, 트라우마, 심지어는 증상의 세부 구조까지도. 그런데 이상했다.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걸 안 쓰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기능은 명백히 저하되어 있었다. 집중력이 산만하고, 수면도 단절되고, 과도한 사고의 흐름이 나를 덮쳤다. 하지만 말의 논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일종의 고기능성 해리 상태 — 연결은 되지만 에너지는 통제되지 않는 상태. 그래서 더 구별이 어려웠다.



기질과 증상 사이의 회색지대

결국 지금의 상태는 기질과 증상이 교차하는 회색지대에 있다. 나는 원래도 표현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한 주에 수 편의 에세이를 생산하는 건 단순한 열정이나 기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장 병적이라 단정할 수도 없다. 아직은 구조와 논리가 유지되고 있고, 내가 쓴 글은 무의미하거나 허튼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쓴다.

그러나 기록한다. 혹시라도 내가 스스로를 망각하지 않도록, 혹시라도 열정의 탈을 쓴 증상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 기록한다. 내가 지금 ‘드러내는 이유’를 끝까지 기억하기 위해.




#202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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