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날카로운 생존의 흔적
나는 어릴 적부터 생존을 위해 맥락을 읽고, 감정을 눌렀고, 해석과 예측을 반복했다. 감정이 무력하다고 배운 아이는, 대신 분석하는 뇌를 강화시킨다. 공감이 위험하다고 배운 아이는, 객관화로 살아남는다. 그 결과, 나는 늘 깨어 있고, 생각은 많고, 감정은 지연되거나 무뎌지며, 실행은 과도하거나 정지되어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내 생각은 대개 논리적이고, 글쓰기나 말하기에서도 어지간한 논리적 파열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조증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느꼈지만, 실행 기능의 불균형은 분명했고, 그 과열 상태가 기능을 망가뜨리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의학적 표현으로 굳이 말하자면, 나는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 및 내측전전두피질의 저활성화, 사고와 통제를 담당하는 배외측전전두피질(DLPFC)의 과활성화 상태에 가까울 것이다. 감정은 접속되지 않거나 차단된다. 판단과 예측, 분석 회로는 끊임없이 돌아간다. 실행 기능은 때론 과도하고, 때론 아예 정지되기도 한다. 정서적 자극은 해리되고, 대신 인지가 과도하게 증폭된다. 이것이 바로 ‘고기능성 해리 구조’다. 고기능성 해리란, 감정이나 신체 감각에 대한 연결을 끊어 생존하되, 대신 언어적·인지적 회로를 과도하게 발달시켜 살아남는 뇌의 전략이다. 이는 트라우마 생존자, 특히 CPTSD(복합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패턴이기도 하다.
얼마 전, 나는 한 책의 도입부를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주인공이 할머니에게 폭력을 당하는 장면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그 장면을 보고 분노할 것이고, 어떤 이는 울고, 어떤 이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예 읽지 못한다. 정보가 아니라 위협이기 때문이다. 그 감각을 받아들이는 뇌 회로는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나의 생존 시스템은 그렇게 구성돼 있다. 감정과 감각은 해리되었고, 생각과 분석은 극도로 활성화되었으며, 그 회로가 만들어내는 글, 말, 사고의 속도는 때로 날카롭고, 때로 지나치며, 결국에는 ‘기능’이라는 이름의 상처로 남는다.
나는 지금 치유 중인 것인지, 고통을 다시 재구성 중인 것인지 알 수 없다. 내가 감정을 조금씩 쓰기 시작하면서, 뇌의 회로는 재접속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접속이 낯설고 아프다. 나는 내 사고가 만들어낸 구조물에 안심하며 살아왔지만, 그 구조물은 감정을 누르기 위해 지은 감옥이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그 감옥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감옥의 존재 자체를 애써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곳이 나를 살게 한 ‘안전지대’였다는 사실까지 지워버릴 수는 없으니까.
희망적으로 끝맺고 싶진 않다. 나는 아직 기능이 회복되지 않았다. 실행력은 기복이 있고, 생각은 너무 많으며, 감정은 때로 너무 멀고, 때로 너무 갑작스럽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과부하의 구조 뒤에는 나의 생존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구조는 이제, 조금씩 질문을 받고 있다는 것. 그 질문이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나를 다시 통합하는 시작점이라는 것도.
#2025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