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사라진 예능과 혁신가의 부재
런닝맨은 한때 ‘버라이어티 예능의 정수’였다. 쫓고 쫓기는 긴장감, 이름표 뜯기의 몰입감, 돌발 상황 속 예측불가의 재미.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름표 뜯기 보고 싶다 하셔서 하면, 정작 안 보시더라고요.” 출연지들의 말이다. 그러나 그건 껍데기만 본 말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이름표 뜯기’ 자체가 아니다. 얼마나 진심으로 몰입하느냐, 돌발을 어떻게 즐기느냐,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서사가 펼쳐지는가다. 지금의 런닝맨은 그저 역할을 반복할 뿐이다. 버라이어티는 없고, 진심도 없다. 과거처럼 ‘사력을 다해 도전하는 재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노는, 오래된 토크쇼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한때, 실패가 강력한 서사였던 시대를 기억한다. 출연진이 넘어지고, 망하고, 고생하던 장면들. 그 속에서 우리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다. “잘 되면 다큐, 안 되면 예능”이라는 말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실패는 편집되고, 도전은 무리수로 간주되며, 돌발은 피해야 할 변수로 취급된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실패 없는 이야기엔 감동도, 몰입도, 진심도 없다. 더는 희열도, 카타르시스도 없다. 그저 정적이고, 무균질의 이야기만 반복된다.
놀면뭐하니는 초반엔 기대를 모았다. 신선한 포맷, 예측 불가한 전개, 그리고 유재석이라는 국민 호감 캐릭터가 홀로 도전하며 만든 무한도전의 후신. 하지만 김태호 PD가 떠난 뒤, 포맷은 달라졌고 유재석은 말했다. “혼자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그 한 마디로, 프로그램은 전환점을 맞았다. 도전은 멈췄고, 패널 중심의 뻔한 예능이 되었다. 물론 유재석은 여전히 성실하고, 따뜻한 진행자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리스크를 감수하는 혁신가는 아니다.
우리는 예능 속 출연진이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서사에 동참했고, 우리의 삶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함께 좌절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실패를 콘텐츠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건 우리 사회가 실패를 용납하지 않게 된 것일까, 아니면 실패를 감당할 혁신가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둘 중 무엇이든, 결과는 같다. 도전 없는 콘텐츠, 본질 없는 서사.
진짜 힐링은 '다 괜찮다'는 위로가 아니라, 실패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온다. 그 실패를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문화에서 비롯된다. 출연자가 진심으로 뛰고 넘어질 때, 그들의 서사는 우리의 감정과 만난다. 실패를 보여주지 않는 콘텐츠는, 결국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한다. 만성적인 안정은 매너리즘을 낳고, 안일함은 혁신을 지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패를 감당할 용기, 그리고 그걸 콘텐츠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사라지면, 우리의 이야기 또한 사라진다.
#2025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