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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랑맘 Oct 20. 2024

상상 속 춤

춤추면서 얻은 능력치

잠시지만, 춤을 쉬는 중이다. 하필 두 아이 운동회가 주 2회 가는 춤 수업과 딱 겹친 것이다. 아무리 춤이 좋아 춤과 관련된 글까지 쓴다지만, 엄마의 역할이 우선인 삶을 살고 있다. 춤에 빠져 사는 것 같아 보여도 일주일 동안 수업을 가지 않고,  예정된 영상 촬영마저 없으면 집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일도 거의 없다. 


'춤추는 운동치'는 어쩌지. 춤을 추지 않는 만큼 춤으로 시작한 글감도 말라버린다. 슈퍼소닉 이후로 춤을 거의 추지 않았는데, 어떤 글을 쓰지. 아이들과 노닥거리면서 몇 번 춘 정도로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만 하다가 브런치 연재일까지 놓쳤다. 


춤 수업이 없는 요 며칠 달리기를 했다. 봄에 한참 달리면서 쉬지 않고, 5km를 뛰는 것까지 겨우 성공했었는데, 더워지면서 달리기를 멈췄더랬다. 사실 그 무렵부터 춤에 진심을 쏟게 되면서 달리기가 뒷전이 된 이유가 크다. 오전에는 10도 내외로 달리기 딱 좋을만큼 선선하다. 길고 뜨거웠던 여름 덕에 엽록소를 잔뜩 머금었던 잎들이 작년보다 알록달록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노랗게 마른 잎들이 떨어지면서 가을 분위기가 물씬난다. 






아이가 등원하자마자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오랜만에 레깅스를 꺼내 입었다. 어질러진 집은 일단 모른척하고 나가기로 한다. 집 앞 공원으로 걸어나가는 길 유튜브 뮤직 어플을 켜고, '달리기'를 검색해 랜덤으로 음악을 설정한다. 취향에 맞는 곡을 미리 선곡하는 세심함 보다는 랜덤으로 나오는 음악 사이사이 몰랐던 곡을 발견하는 새로움이 조금 더 나답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자연스럽게 몸이 흔들거린다. 얼마 만에 흔드는 몸인지. 집에서 처럼 눈치 안 보고 조잡하게 흔들지는 못하지만, 슬쩍슬쩍 따라가는 리듬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다음은 런데이 어플 차례다. 오랜만에 듣는 성우아저씨의 목소리가 반갑다. 


"자 이제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그날은 달리면서 한 번도 멈추지 말자고 다짐한 차였다. 달리는데 좀 더 집중하고 싶었다. 요즘은 특히 지나쳐 가는 풍경들 앞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일이 많았다. 사실 오랜만에 달리다 보니 힘들었던 참에 반은 달리고 반은 산책을 했던 것이다. 오늘은 쉬지 않고, 달려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뛰니 맑고 예쁜 날을 그저 즐기면서 자연스레 음악에 더 몰입하게 됐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현실 속 내 사지는 그저 앞으로 전진하는 일만 계속하고 있었지만, 상상 속 내 사지는 어떤 춤보다 멋지고, 현란하게 춤을 추는 중이었다. 안무가는 나다. 여기저기서 보고 배운 춤들을 이렇게 저렇게 짜 맞춘 춤이지만, 그럴듯하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파워풀한 춤을 추던 아이키가 됐다가 통통 튀는 뉴진스가 됐다가 상큼 발랄한 아이돌이 돼 본다. 


정신없이 춤을 추다 보니 벌써 3km를 완주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평소에는 2km가 넘으면 언제 3km에 도달하나 싶어 중간중간 핸드폰을 보면서 버텼다. 달리는 시간 동안 책이라도 듣자 싶어 오디오북을 듣는 날은 더 그랬다. 그래도 3km는 쉬지 않고 뛰었으니 이제 좀 걷자 싶어 바로 뛰던 다리를 멈추고, 7분대 페이스를 10분대로 늘렸다. 하지만 그날은 상상 속 춤이 너무 재밌어서 멈출 수 없었다. 막 흘러나오고 있는 노래가 너무 좋아서 어떤 노랜지 확인하고 싶은 충동은 일었으나 굳이 허리색 안에서 한 번도 빼지 않은 핸드폰을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굳이 페이스를 늦추고 싶지는 않았다. 


이걸 글로 써도 되겠다! 4km에 가까워 오면서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무아지경 춤을 추면서 즐기고만 있는 지금을 써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감까지 해결이라니. 춤이란 걸 춰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디테일한 안무를 상상하진 못했겠지. 이 박자와 리듬을 콕 집어 살려내진 못했겠지. 춤추면서 얻은 능력치 임이 분명했다. 현실에서 구현해 낼 수 없는 춤이기는 하다. 의욕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상상 속 춤은 이토록 무궁무진하다. 표현하고 싶은 어떤 안무도 소화가 가능하다. 덤블링에 뒤로 자빠지는 웨이브 같은 것들까지. 묘기 수준의 춤을 거침없이 출 수 있다. 실제로 그만한 시간 동안 힘들게 춤을 춘 것과 거의 동일하게 몸도 지친 상태다. 힘들긴 하지만, 음악이 멈추지 않는 한 몸도 멈춰지지 않는다.






'대단합니다! 5km를 달성하였습니다!' 


벌써? 아직 좀 더 출 수 있는데? 5km를 쉬지 않고 뛰고도 체력이 남은 느낌이라니. 보통은 5km에 도달하자마자 발을 멈춘다. 아린 다리를 엉거주춤 거리며 숨을 몰아쉰다. 급히 카페인을 수혈하기 위해 카페로 향하면서 내가 뛴 기록을 확인하며 성취감을 만끽한다. 그날은 좀 달랐다. 아직 재생 중인 음악이 끝날 때까지 0.3km 정도를 더 뛰었다. 기록을 확인하기 전에 플레이리스트부터 확인한다. 아까 좋았던 곡들을 기억해 두고 싶어서였다. 


99년생이지만, 데뷔 10년 차가 넘은 Sabrina carpenter의 Please please please

엘리멘탈 속 목소리였던 Lauv의 Kids are born stars

유명하지만, 제대로 아는 곳이 없었던 Coldplay의 Adventure of a lifetime


'달리기'라는 새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이 세 곡을 저장해 두었다. 달릴 때마다 랜덤 속 몰랐던 곡들을 이런 식으로 저장해 두면 달릴 때 듣기 좋은 내 취향의 플레이리스트도 곧 완성되겠지. 춤이라는 취미 하나로 5km 달리기를 무아지경으로 즐기면서 뛸 수 있었고, 춤추기 좋으면서 달리기도 좋은 몰랐던 곡들을 발견했다. '상상 속 춤'이란 제목을 달고, 글까지 쓰고 있으니 춤을 추지 않았으면 지금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도 싶다. 






나에게 꼭 맞는 취미를 찾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엄마가 되면서부터 더욱 그랬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땐 미싱을 배워 옷을 만들었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내가 만든 옷을 입은 아이를 보니 뿌듯함이 말도 못 했지만. 아이를 돌보느라 미싱 앞에 앉을 틈이 없었다. 먼지도 많이 날리고, 남은 옷감들을 처리하는 일도 버거웠다. 아이가 태어나고 이유식을 만들면서부터는 정식으로 요리를 배워볼까도 싶었지만,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부엌에 서있는 일이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춤을 만났다. 온전히 나를 위해 시작한 취미다. 그저 재밌게 운동하자가 시작이었다. '엄마'라는 역할과 떨어져 오로지 내가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맘에 들었다. 그간 나도 모르게 내가 좋아하는 일보다는 아이를 키우면서 도움이 될만한 일들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작한 춤이 이제는 내 삶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아주 긍정적으로. '상상 속 춤'이 이렇게나 늘어서 5km를 가뿐하게 달리게 될 줄 누가 알았나. 이런 얘기를 글로 쓰게 될 줄은 또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아침밥을 차릴 예정이다. 춤추면서 얻은 능력치. 이제는 부엌에서 발휘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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