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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랑맘 Oct 06. 2024

끝내 웃지 못하는 나

허술한 존재

춤을 추면서 매력적인 점 중 하나는 느슨한 삶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일이다. 곡을 다 배우고 나면  한 달에 한두 번 마무리 영상을 찍는다. 이 날을 위해 적어도 3~4일 전부터는 땀 흘리며 연습한다. 점수를 매기는 것도, 이 영상을 어디 제출하는 것도 아니지만, 늘 긴장과 설렘으로 촬영 준비를 한다. 작품 하나를 완성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고,  예쁘게 차려입는 재미를 느끼는 날이기도 하니까 그렇다. 그 기분을 제대로 느끼고 싶은 마음이다.


자리를 바꿔가며 단체로도 찍고, 돌아가며 개인영상도 남겨주신다. 다 같이 찍을 때는 전체 모양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제 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낀다. 세게 밀려오는 선생님 파도가 내리치면 그 힘을 받아 어떻게든 파동을 만들어낸다. 중간중간 선생님의 긴 팔로 핸드폰을 높이 들어 함께 모니터를 하는데, 우리가 봐도 누구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 연출될 때는 '크!' 하며 만족스러운 탄성을 지른다. 더운 여름 맥주 한 모금 들이켰을 때와 비슷한 쾌감이랄까.


반면 개인영상은 늘 아쉬움이 남는다. 열댓 명의 인원이 모두 개인영상을 찍으려면 많아봐야 2번씩 기회가 주어지는 게 보통이다. 다 같이 찍을 때는 선생님과 수강생들이 만들어내는 파동에 힘을 받지만, 혼자일 때는 왠지 모르게 기운이 쏙 빠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오로지 날 위해 카메라를 들고, 줌 인과 아웃을 번갈아 시전 하며 내가 가는 방향을 따라오시는 선생님의 노고가 감사하면서도 민망해진다. 각자 자기 차례를 위해 연습을 하느라 모두가 나를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느껴지는 두 세 사람의 시선들도 의식한다. 머리가 하얘지면서, 갑자기 안무가 기억이 안나는 현상은 툭 치면 툭 나올 만큼 연습하면 극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웃음이다. 다른 말로는 여유.



평소에 나는 웃음이 헤프면 헤펐지, 차갑거나 도도한 얼굴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진지함도 좋아하지만, 농담을 따먹는 가벼운 분위기가 편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내가 즐기고 좋아한다는 춤을 추는 영상 속 나는 그렇게 진지하고, 엄숙할 수가 없다. 노래가 신이나든 섹시하든 귀엽든 다 같은 표정을 만들어내는 내 뇌 속은 어떠한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느껴지는 시선들 앞에서의 쪼그려듬, 기대를 품은 것 같은 손길로 나를 따라다니는 선생님의 핸드폰 앞에서의 민망함으로 범벅된 번뇌가 가득하다. 툭치면 나올 정도로 연습을 해 둔 동작들 마저 방금 전 보다 훨씬 뻣뻣해진 몸으로 만들어 내려니 조금씩 엇나가기도 한다.


물론 대충 봐서는 그 차이를 잘 모른다. 나만 아는 실수와 뻣뻣함과 진지함과 아쉬움이다. 그나마 예전의 나를 돌이켜보면 많이 늘었다는 만족감에 보란 듯이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리고,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만한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치켜세우기도 하지만, 활짝 웃으며 췄으면 훨씬 보기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은 늘 느낀다. 춤이 아무리 괜찮아도 진지한 표정 아래의 몸짓은 어딘가 불편하다. 꼭 눈에 드러나게 웃지 않아도 여유롭게 추는 춤은 보는 사람에게까지 흥이 전해진다. 엄청 잘 추지 않아도 계속  보고 싶은 춤이 된다.


춤 뿐만이 아니라 삶 전반에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논리적인 말과 현실적인 조건보다 환한 얼굴과 배려에끌려 비지니스 상대를 결정하게 되는 일. 불편한 장소의 어색함이나 모난 마음들이 웃음 하나로 풀어지게 되는 일 들이 그렇다. 그렇게 우리는 웃는 얼굴 앞에서 약해지는 허술한 존재들이다.


허술한 우리들은 어느 때부턴가 영상 찍는 날이면 동작보다 표정을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 비단 나뿐이 아니다. 함께 하는 수강생 언니들과 친구들 모두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꼭 얘기하는 멘트가 있다.


'웃기만 하자!'

'오늘은 끼를 좀 더 부려보자!'


어떤 날은 오늘 좀 웃으면서 춘 거 같아! 즐긴 거 같아!라고 느끼기도 했다. 분명히 웃었다는 내 기억과는 다르게 영상 속 무표정한 나를 보고 이내 실망하지만 말이다. 아마 그 미소의 강도가 너무 옅었겠지. 웃자는 생각만 했을 뿐, 웃음이 나는 기분을 느끼지는 못했겠지. 웃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끼는 또 다른 차원의 얘기다.


웃는 기분을 느끼는 것. 이것은 부담감, 민망함, 남의 시선들을 모두 초월하고 온전히 즐겨야만 느껴지는 기분일 것이다. 심장이 뛰는 여러 감정들을 가라앉히고, 여유로운 마음을 바탕에 둬야 비로소 솟아나는 기분일 것이다.


"너무 심각할 필요 없어~ 남 앞에 섰을 때는 그냥 네가 최고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아!"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이가 1학년 때 참관수업에 가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집에서는 그렇게 까불거리고,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가 친구들 앞에서는 들리지도 않는 모기소리로 말하던 아이. 앞에 있는 친구들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땅만 보던 아이가 답답했다. 많은 사람의 시선을 이기고, 심장을 진정시키는 일이 어려운 일인 줄 알면서도 막상 아이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속상한 맘이 들었었다. 남들 앞에서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일이 어려운 일인 줄 알면서도 달리 아이의 기를 살려줄 방법이 없었다.


오랜만에 내가 그런 상황이 되어보니 이제 알 것 같다. 심각하고 싶어서 심각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진지병에 걸려 춤을 추면서도 진지한 표정이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내가 실천해보려고 한다. 환갑이 넘도록 젊고 유쾌한 에너지를 잃지 않는 방송인 최화정이 언젠가 유퀴즈에 나와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사람이 허리를 쫙 펴고 입꼬리를 쫙 올리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대."


춤추느라 허리를 계속 피고 있지는 못하겠지만, 입꼬리를 쫙 올리고 춤을 추다 보면 끝내 웃을 수 있겠지! 딸에게 당당한 모습을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런 모습이 되어보고 싶다. 춤에 웃음이 베어 들때쯤엔 내 삶도 우리 사이도 여유로운 웃음이 잔뜩 끼어있겠지. 그렇게 매일 매일 허술하게 웃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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