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북스타그래머
이제 막 인스타그램 릴스 만드는 재미에 빠진 친구가 있다.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났지만, 나이도 코드도 잘 맞아 4년 간 막역하게 지내온 친구다. 혼자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외로운 참에 이 친구가 공개계정으로 바꾸고 어플까지 써서 열정적으로 영상편집까지 해 올리자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1일 1 릴스를 도전해 보라는 둥 나도 여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콘셉트를 잘 정해야 한다는 둥 어설픈 훈수를 두다가 불현듯 옴브리뉴가 떠올랐다. 브라질 말로 '어깨'라는 뜻인데, 이 옴브리뉴 댄스, 그러니까 어깨춤이 요즘 SNS에서 굉장히 핫하다. 이 영상을 본 사람 치고, 어깨를 들썩이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만큼 한 인간에게 내재된 흥과 끼를 밑바닥부터 긁어모아 발산하게 해주는 춤과 음악이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게다가 사용하는 신체부위는 오직 어깨뿐이라 안무를 외우거나 정해진 동작에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야말로 추는 사람의 느낌대로 어깨를 들썩이기만 하면 된다.
흥이라면 빠지지 않는 친구는 내가 댄스를 함께 배우자 제안했을 때도 정해진 안무대로 추는 건 싫다고 똑 부러지게 거절했을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옴브리뉴야 말로 이 친구에게 적합함은 물론 릴스소재로도 딱이지 않는가. 자칭 춤추는 북스타그래머로 활동 중인 내게도 딱 맞는 콘텐츠고 말이다. 브라질 클럽에서 옴브리뉴 댄스를 멋들어지게 추는 한 여성과 남성의 영상을 친구에게 보내자마자 1초도 안되어 답이 돌아왔다.
'이거 콜!!!!'
사실 제대로 추려면 쉽지는 않다. 댄서들이 추는 영상을 보고 따라 하여도 이 느낌을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그저 즐기는 것이었으니 욕심은 내려놓기로 했다. 마침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밤체험을 예약해 둔 터라 우리의 촬영장소는 밤체험장으로 정했다.
밤을 줍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밤톨이 우수수 떨어지는 계절임에도 여전히 열과 성을 다해 따가운 햇살을 뿜어내는 태양이 미울 지경이었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해진 날씨에 반바지를 입고 싶다던 아이들에게 기어코 긴바지를 입혀 나온 이 어미는 땀을 뻘뻘 흘리는 아이들의 밤 망에 부지런히 밤을 주워 채워 주는 것 말고는 도움을 줄 길이 없었다. 겨우겨우 밤 망도 가득 1시간도 가득 채워 질퍽한 언덕길을 내려온 우리는 체험을 하러 온 인파가 빠질 무렵 서로 사인을 주고받았다.
'저기 어때?'
감나무로 보이는 큰 나무그늘 아래에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지친 우리는 다른 장소를 몰색할 새도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얼른 옴브리뉴 음원을 틀었다. 와우. 우리가 언제 피곤했더라? 아까는 그렇게 바로 주저앉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깨를 한껏 튕겨대며 음악에 맞추기 바빴다. 이렇게 신날일인가. 이렇게 웃길 일인가. 추고, 웃고를 반복하는 동안 더 웃기고 싶은 욕심이 잘 추고 싶은 욕심을 이기고 있었다. 친한 언니네 가족까지 총 어른 셋, 아이 일곱이 몰려와 밤을 잔뜩 줍고는 다들 집에 돌아갈 때 기어코 남아한다는 게 카메라 앞에서 흙냄새가 풀풀 풍기는 몸을 흔드는 일이라니. 이 상황도 웃기지만, 어깨에서 팔, 팔에서 손, 손에서 다리까지 동원해 오버스러운 춤을 추는 우리의 열정이, 웃기려는 의지가 가관이었다. 웃기니 추고, 추니까 웃는 우리였다. 거의 30분을 신나서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동안 함께 온 언니는 밤 망과 널브러진 짐들을 앞에 두고, 춤추는 우리와 엄마들의 황당한 춤사위에 당혹감을 느끼는 아이들 모습을 한 영상에 담아 주었다. 미처 우리가 몰랐던 아이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이 이랬을 줄이야. 같이 신나 하는 줄 알았더니 우리를 이렇게 한심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숙제는 다 했냐. 먹은 그릇은 치워라. 방 정리 좀 해라 같은 명령어들로 일상을 점철하던 각 잡는 엄마들의 이런 무아지경 춤사위는 일종의 배신감 마저 느끼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이 영상도 웃겼다. 아이들 표정까지 담아낸 언니에게 천재 아니냐며 엄지 척을 들어 올렸다.
나중에야 아이에게 엄마가 이렇게 춤추는 모습이 어땠는지를 물어봤다. 그나마 집에서 엄마가 춤추는 모습을 많이 봐온 아이긴 했지만, 밖에서까지 그렇게 요란하게 추는 엄마를 본 적은 처음이라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했다. 그 표정으로 봐서는 절대 좋아했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아이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너무 재밌었는데? 정말 웃겼어!"
하하, 그럼 그렇지! 혹시라도 방정맞은 엄마와 엄마 친구의 춤사위가 아이에게 수치심이든 민망함이든 어떤 부정적인 감정의 씨앗을 던진 게 아닐까 싶어 내심 신경을 쓰고 있던 터였다. 사춘기에 가까워지고 있는 아이에게 당장 중요한 건 성적도 재력도 아닌 '엄마와의 관계'라고 하지 않는가. 나에게는 그 어렵다던 아이와의 관계를 웃음으로 이어 줄 춤이 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밤도 주웠겠다, 영상까지 찍었겠다. 할 일은 다했지만, 텐션이 오른 우리는 이대로 헤어질 수 없었다. 마침 친구가 돌아가는 길 들르자고 추천한 맛집 옆에 당일치기 캠핑장이 있었던 것! 저녁시간이 가까워 오는지라 불멍도 가능한 타임이었다.
'불멍 앞에서 춤?'
눈빛을 주고받으며 우린 또 한 번 찌릿했다. 함께한 언니는 춤보다는 술 쪽이라 아직 언니의 몸 일부에 남아있는 숙취에 다음 일정을 망설이는 듯했다. 다행이었던 건 그날 마침 날씨가 청명했고, 마침 식당의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기운이 났다는 것. 마침 우리들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캠핑'이라는 단어를 아이들이 듣고는 득달같이 환호를 질러댔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동화 속 같이 꾸며진 캠핑장으로 향했다. 꽤 비싼 비용에 놀란 우리는 순간 뒤돌아설까 했지만, 오늘은 한 번뿐이라는 절박한 마음이 들어 과감하게 카드를 내밀고, 신나게 뛰어 들어갔다.
사실 우리는 SNS영상으로 먹고 살 생각도 없으며 그럴 위인들도 아니다. 남들이 잘 춘다 손뼉 쳐주길 원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조회수가 잘 나온 영상이 팔로워를 늘려주는 것도 아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릴스와 게시물을 쌓아가고 있다. 내 일상, 내가 읽은 책, 내 생각들을 담은 피드 말이다. 이런 끄적임 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까운 마음에서다. 혼자 하면 심심하고 외로우니까 나누고 싶어서다. 비슷한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하면 혼자는 엄두 내지 못할 춤과 깨방정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과 함께 흐려지고 지워질 오늘의 나를 그렇게 남기고,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책으로 시작한 내 SNS가 어느 날부턴가 춤영상으로 채워지기 시작한건 자연스런 흐름이다.
정체성이니 뭐니. 콘셉트이니 뭐니라는 말을 친구에게도 했지만, 뭐 꼭 그 콘셉트이라는 게 하나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춤추는 북스타그래머가 됐다. 춤을 잘 춰서도 다독가여서도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기록이다. 춤추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는 사실 엄마이기도 하다. 엄청난 취미부자로 사는 것 같지만, 나를 이루는 대부분은 '엄마'의 자리다. 그러니 늘 그 안에서 육아의 팁과 좋은 면들을 하나씩 건져낸다. 어떤 날은 두세 개를 건지고, 어떤 날은 수 십 개를 도로 던져놔야 하는 날들도 있다. 춤을 추면서 자지러지게 웃는 엄마, 독서의 본보기가 되어주는 엄마는 분명 좋은 모습이지만, 나쁜 점도 있다. 춤추느라 아이들의 공부를 챙기기는커녕 방해를 하거나 책에 정신이 팔려 정작 귀 기울여야 하는 아이의 얘기를 건성으로 듣거나 하는 경우들이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염마의 역할 중 돌봄에만 초점을 맞추면 구멍이 숭숭 뚫린 춤추는 북스타그래머지만, 아이 삶의 동반자, 혹은 지지자로서는 썩 괜찮을 거라고 말이다. 어떤 날엔 주접스러운 춤을 춰대고, 어떤 날엔 책에 빠져들어 울기도 하는 이 엄마의 널뛰는 모습들이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주길 바란다. 애쓰면서 살기보다는 즐기면서 살아주길 바란다. 고압적으로 잔소리를 쏟아내는 엄마가 무서울 때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매일 마주하는 엄마의 일상에서 고스란히 느껴주길 바란다.
옴브리뉴에 대해 더 재밌게 풀어보려고 시작한 글이 어쩌다 또 엄마 모드로 결말을 맺게 되어 유감이다. 어쨌든 옴브리뉴 영상은 친구와 내 SNS에 올려졌고, 당연하게도 조회수 폭발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우리끼리 좋아서 한번 더 시시덕거리고,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웃기다는 인친님들의 따뜻한 댓글에 정성껏 대댓글을 남기는 중이다. 그 위에 새로운 피드들이 쌓이면 잊힐 우리의 옴브리뉴댄스는 다음 챌린지의 시작이자 격렬한 웃음의 기록으로 내 역사 속 어딘가에 쭈욱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한 번 들어보지 않겠는가. 브라질 출신의 DJ 인 Beltran의 smack-yo'를 검색해 보시라. 어깨에 힘 팍 주고!
사진: Unsplash의Antoine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