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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랑맘 Sep 25. 2024

춤추는 극성맘

따라쟁이 딸들

춤만큼이나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도 만만치 않은 나는 극성 엄마다. 보통 책 육아를 한다고 하면 교육에 관대하고, 많이 놀릴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산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학원 보낼 때가 더 편했다. 어찌 됐든 학원에 가 있는 동안은 나와 씨름할 일도 없고, 온전한 내 시간은 보너스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육아는 아이가 없을 때도 책을 서치 하고, 빌리거나 구매하는데 노력을 들여야 한다. 아이가 돌아오면 나는 더 비장해진다. 얼른 간식을 대령해 앉히고는 영어책 청독을 시키고, 한글책 독서 시간도 1시간 이상은 곡 챙긴다. 몸을 베베꼬고 읽기 싫어하는 날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여유 있게 준비해 둔 재미있는 책들을 들이밀거나 일주일 분량을 채웠을 때 집 앞 무인 문구점에 가자고 음흉하게 꼬드기기도 한다.   


영어든 한글이든 독서는 그나마 난이도 하다. 수학은 또 다른 얘기다. 매번 채점을 해야 하는 의무도 버거운 일이지만, 문제집에 비가 쏟아질 때마다 가슴 저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불덩이가 입으로 뿜어져 나오는 일이 없도록 막아내는 일은 평생 내게 주어졌던 일들 중 탑 3에 들 정도로 난이도 있는 일이다. 이처럼 책육아의 현장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억지로 읽히고, 억지로 앉혀야 한다.  온전히 다 내 몫이다. 매주 아이들이 성취한 내용들을 점검하고, 작은 보상을 마련하는 것까지 말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너 시간씩 꿈쩍도 안 하고 읽기도 하는 어떤 날의  아이들 모습이 예쁘고, 대견해 3년째 이 짓을 해오고 있다. 아니 솔직히 학원에 들이는 돈이 아직은 아까운 맘이 들어 몸테크를 택한 것이다.  투자는 좋은 집에, 사는 집의 컨디션은 열악하게 세팅해 두는 재테크처럼 말이다.


춤얘기만 하다가 아이 교육 얘기를 꺼내니 또 열이 솟구치는 나는 영락없는 극성엄마가 맞다. 이런 엄마가 아이들이 책에 몰입하는 동안, 춤을 추는 것이다. 전신거울이 거실에 있어 어쩔 수가 없다. 대신 음악은 내 귀에만 들리게 에어팟을 장착하고, 신나게 몸을 흔든다. 아이들이 보는 나는 어떨까. 배경음악 없이 몸을 흔드는 엄마가 웃긴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엄마 또 시작이네.'


혹은 무반응. 둘 중 하나다. 영상 촬영 전 날에는 배를 살짝 드러낸 크롭티를 입고 춘다. 이건 정말이지 예뻐 보이고 싶은 노력이 아니라 내가 춤을 정확하게 추고 있는지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함이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할 때 붙는 옷을 입어야 내 몸의 움직임이 잘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태 무음에 댄스를 추는 엄마를 보고도 눈길 한 번 안 주던 아이들은 내가 크롭티를 입고 등장하면 지적질을 하기 시작한다.


"엄마 뱃살 다 보이잖아. 솔직히 안 예뻐."라고 한 방 날리면,

"예쁘라고 입는 거 아니야! 운동하려면 이런 옷을 입어야 돼."라고 응수한다.


"와, 엄마 뱃살이 다 늘어졌잖아."라고 두 번째 방을 날리면,

"너네 낳느라고, 이렇게 된 거 아니니!"라고 핏대를 세운다.


"엄마, 근데 솔직히 방해 돼." 이 마지막 방엔...

"....." 할 말이 없다.


그제야 나는 전신거울을 포기하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적당히 몸을 구기고, 처연하게 몸을 휘적거린다. 한마디로 면이 안 서는 순간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달달 볶고 잔소리를 해대던 엄마가 아이들의 독서를 방해하는 꼴이라니. 몇 번 이런 푸대접을 받은 이후로는 처음부터 방에서 하거나 아이들이 잠든 후 늦은 밤 거실에서 혼자 당당하게 리듬을 탄다.


매일 해대기만 하다가 이렇게 아이들에게 세 방씩이나 얻어맞는 엄마가 되었다. 이상하게 그게 싫지는 않다. 약점 잡히는 엄마, 꼬리 내리는 엄마가 된 기분이 썩 유쾌하기까지 하다. 구석에서 혼자 눈치 보며 땀을 빼다가 이제 좀 춤이 봐 줄만 해졌다고 느끼는 날엔 아이들에게 평가를 부탁하기도 한다.


"엄마 이제 좀 잘하지?"


그냥 다 잘한다고 말해주는 친구들보다 아이들은 냉정하다. 제대로 춤을 춰 본 적도 배워보지도 못한 아이들은 정확하기까지 하다.


"엄마, 팔을 여기서 더 뻗어야지."

"엄마 동작을 좀 크게 크게 해."


선생님이 말해주신 지적사항 그대로다. 어쩜. 예쁜 것들. 댄서 선생님 앞에서 추는 연습생 마냥 아이의 조언을 충분히 숙고하여 두세 번 더 추고 나서야 오케이 사인을 받는다.


"엄마, 이제 좀 괜찮네."


영상 찍기 전 날엔 이 말을 꼭 들어야 한다. 지적, 평가, 칭찬은 늘 내가 하던 것들이었는데, 춤에서 만큼은 아이들이 나를 지독하게 지적하고, 살벌하게 평가하고, 무던하게 칭찬한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나는 아이들에게 더 가볍게 지적하고, 친절하게 평가하고, 살갑게 칭찬해야지.라는 깨달음까지 얻는다. 책육아 하는 춤추는 극성엄마에게 역지사지가 제대로 먹힌 케이스다.


엄마한텐 그렇게 배 보인다 뭐라고 하더니 거울 앞에서 내복을 한껏 끌어올리고 꿀렁한 춤을 추던 둘째 아이. 흥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또 엄마를 그대로 흡수해 버린 아이가 미치게 사랑스러워 연사로 사진을 찍어댔다. 늘 엄마를 똑같이 따라 하는 딸들이(특히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혼낼 때) 가끔 '아이씨' 라든가, '야!' 같은 고함을 뱉을 땐 반사적으로 움찔한다.


'저거, 내 말투인데.......'


괜히 찔려서 나는 더 크고 무서운 목소리로 어디 그런 말을 하냐고 아이들을 나무란다. 대부분은 나를 따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행동거지를 조심하려 애쓰는 편인데 '춤'만은 예외다. 배를 드러내고 춤을 추는 것도, 웨이브를 꿀렁꿀렁 흉내 내는 것도. 내가 아이들에게 충고하듯 내 춤사위에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도 다 괜찮다. 아니 이런 걸 따라 해 줘서 고맙기까지 하다.  쓰면서 또 깨닫는다. 아이가 미치게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시간을 충분히 허락하자. 집착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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