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학원 남자 수강생들
1년째 댄스학원을 다니면서 남자수강생을 처음 뵈었다. 직장인들이 붐비는 저녁시간에야 남자 회원들이 흔하지만, 주부가 대부분인 평일 오전 시간에 남자 수강생의 등장은 어쩐지 낯설었다. 부부가 처음에는 같이 왔는데, 아내는 영 적응이 안 되었는지 등록을 안 하셨고, 남편 분 만 꾸준히 수업을 오고 계신다.
사실 처음에는 좀 민망하고, 불편했었다. 안무를 배우기 전 2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는데, 그때 다리를 찢거나 상체를 앞으로 숙이는 동작들을 많이 한다. 여느 때처럼 짧은 바지를 입고 왔던 날 하필 내 뒤에 남자분께서 서 계셨다. 그날은 행여나 이 동작들을 하다 바지 속이 보일까 싶어 제대로 다리를 뻗지 못했다. 안무를 하는 중에도 크롭티를 입은 날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면 속옷노출이 빈번하다. 그럴 때마다 신경을 쓰여 내 의욕만큼 손을 힘차게 뻗지 못하기도 했다. 몇 년 전 필라테스 수업에 남자분이 오셨을 때와 비슷한 당혹감과 불편함을 댄스수업에서도 느끼다니. 탓할 마음은 없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두세 번의 수업이 더 이어지고, 안무 촬영까지 같이 하게 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그분들을 향한 불편한 마음이 수그러들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남자 수강생 한 분이 또 등록을 하셨다.) 노출이 민망하고, 염려되었던 건 그저 내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기우였던 듯했다. 가만 보니 그분들은 내가 처음 댄스수업에 와서 그랬듯 오로지 스트레칭과 안무에 집중하느라 다른 곳에 눈을 둘 여유가 없었다. 거울 속 비치는 본인의 모습과 선생님을 비교해 가며 따라 하기에도 벅차보였다. 강풍으로 트는 에어컨과 대형 선풍기가 무색하도록 흠뻑 젖은 땀과 눈에서 튀는 불꽃이 그 사실을 보란 듯이 증명한다. 다른 건 없었다. 그분들은 정말이지 그저 춤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대화해 본 적은 없지만, 나와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아빠일 거라 지레 짐작해 본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는 조금 어려 보이신다. 아마 아이들도 이제 막 어린이집에 가면서 여유가 생기신 게 아닐까. 2024 트렌드 코리아에서 '요즘남편 없던 아빠'라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가사와 육아에 적극적인걸 넘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남편과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반영한 말이다. 우리 수업에 오신 남자 수강생 두 분이 이런 트렌드를 대표하시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육아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셨을 수도있다. 그게 아니라면 젊은 날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 온전한 자기 시간을 즐길 여유 없이 달려만 오셨는지도 모르겠다. 급진적으로 성장했던 대한민국의 경제와 맞물린 우리 세대 대부분이 그랬듯 피나는 노력과 희생에는 무조건적인 보상이 따를 거라 믿고 앞만 봐오지 않았을까. 아마 그 배후에 부모님의 기대와 헌신도 있었으리라.
이제야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온전한 자기 안도 보기 시작한 걸 지도 모른다. 이제야 무조건적인 보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니 이게 그분들 얘기인지 내 얘기 인지 헷갈릴 만큼 강한 동질감과 우애감 마저 느껴진다. 여하튼 나의 경우에 빗대어 조금 더 상상해 보자면 그분들은 발산하고 싶었던 흥과 끼를 이제껏 눌러왔을 것이다. 썩 잘하지는 못하니 어디 가서 나서기엔 주변 눈치도 좀 봤을 것이다. 가족, 아이, 돈을 위해 바쳤던 시간들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여태껏 자신에게는 소홀했던 본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민했을 것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즐기는 게 뭔지. 그리고 질렀을 것이다. 희미 하지만, 일단은 해보자고 용기를 기어코 냈을 것이다.
그 용기 앞에서 뭐? 남자 수강생이 와서 불편하다고? 신경 쓰인다고? 정도 철도 없어도 너무 없었다. 사실 영상 촬영 날 그분들의 댄스를 보고 있자니 경이롭기까지 했다. 잘 추고 못 추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복잡한 안무를 다 외워오셨고, 여자 아이돌의 섹시한 안무를 내빼지 않고, 소화하셨다. 새삼 진지한 얼굴로 말이다. 남 앞에서 많이 흔들어 본 여유와 솜씨는 아니었다. 음악이 끝나자마자 민망함과 수줍음을 못 이기고, 달려 나오시며 우리의 박수와 환호에 멋쩍은 미소를 지으셨다.
이제야 날카로운 신경을 거두고, 잘 오셨다고 환대하는 나다. 이제야 별스럽다는 눈을 거두고, 맞게 오셨다고 응원하는 나다. 우리와 커피 한잔 하겠냐고까지의 제안은 실례가 될까 싶어 넣어두었지만, 적어도 이제 그분들이 내 옆에 있건 뒤에 있건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딱 맞춰 선선해지는 날씨를 핑계로 운동복 바지를 하나 주문해 두었다. 크롭은 어쩔 수 없더라도 바지야 긴 바지를 입어주면 그만이다. 그들이나 나나 이런 자잘한 예민함과 신경들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않은가.
이 박자에 이 동작을 하고, 저 순간에 저 안무를 기억해 내는 게 우리에겐 우선이다. 온전히 주어진 이 귀한 시간이 절박하고, 소중할 뿐이다. 다음 배울 곡은 큐티 섹시 안무의 결합인 프로미스나인의 슈퍼소닉인데 부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주시길 바라는 바이다. 아내분은 어떤 맘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이는 이런 아빠가 얼마나 재밌고 자랑스러울까. 한 사람을 넘어 한 가정의 웃음꽃 씨앗이 되어줄 그들의 춤을 이 누나가 혹은 친구가 아니 동생일지도 모를 내가 무지하게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