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부부 연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즈 Jan 17. 2022

대충대충인 이상과 철저하게 준비하는 미정


당신은 무슨 일을 하던지 그렇게 대충대충 해?

 미정의 눈빛 속에 가득 찬 분노와 원망, 그리고 답답한 심정에 이상은 그만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해졌음을 깨달았다. 이미 목소리가 바로 뒷 칸에 자리잡은 그 카페의 단골손님들에게까지 넘어갈 정도로 커지자 그는 더 큰 말다툼이 일어나기 전에 얼른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피하려고 카페를 나와버렸다.


 다 자업자득이라고 했던가? 결국 지금까지 상대방에게 무슨 마음과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느냐에 따라 상대방도 자신을 똑같이 대한다고 하더니 결국 그녀가 이상을 대하는 태도가 곧, 이상이 그녀를 대했던 태도였음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먼저 우리에게는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독자의 관점으로 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싶어도 이전에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를 알지 못하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기에 먼저 지난 몇 주간에 벌어진 일에 대해 알아보아야겠다.


 카페를 나가면 분을 삭히느라 아무말 하지 않았던 이상은 머릿속으로 이제는 미정에게 이런저런 구차스러운 변명을 늘여놓고 싶은 마음은 추호에도 들지 않았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단지 스스로 어디에서부터 또 무엇이 잘못되어 있었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건의 발단.


 실업급여 수급이 끝난 지난 여름 이후로 이상은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다. 몇 번이나 이력서를 내고 또 면접을 치렀지만 그는 여전히 직장을 다시 찾지 못하고 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낼 수는 없어서 미정이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 마디(사실 미정은 당장에 필요한 생활비를 잠깐 벌 요령으로 가볍게 말했을 뿐이었다)에 쿠팡 플렉스 배송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했다. (첨언을 하자면, 이상의 전 직장은 서울 명동에 소재한 유명 여행사의 과장이었으나,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타의로 직장을 잃은 실업자가 되었다. 여행업만 하던 그가 다른 직장을 쉽사리 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맞딱들이자니 이 현실은 엄연한 이상 본인 스스로의 능력 부족이라고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해외 여행 길이 막힌 냉혹한 코로나 세상의 현실이 그랬다.)

 

 그렇게 이상이 일을 하러 나가는 모습을 안쓰럽고 안타깝게 바라본 미정도 이제는 무엇인가를 해서 돈을 조금이라도 벌어보아야겠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있던 찰나, 주변 지인의 권유와 소개로 그녀의 인생 설계도에는 전혀 계획에도 없던 방과 후 교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방과 후 교사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방과 후 교사를 각 학교와 단체에 지원하는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강의를 듣고 자격 수료증을 받으니 곧바로 방과 후 수업 교사가 될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수업을 진행하는 일은 조금 더 많은 연습과 공부가 필요했지만 어쨌든 미정은 그렇게 방과 후 교사가 되었다)


 이상은 그가 쿠팡 일을 해도 부족한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벌고자 자신이 평생토록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영역의 일을 미정이 과감히 시작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라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상이 지금껏 보아온 그녀의 성격은 남들 앞에 서서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설명하고, 지도하는 행위 자체를 지극히 부끄러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방과 후 교사 일을 시작한 이유는 당장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이상의 무능력과 세 아이들을 키우고 생활하는데 부족한 생활비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미정은 다른 베테랑 방과후 교사의 수업을 두 번이나 참관한 후, 곧바로 그녀는 처음으로 아이 돌봄 기관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하는 방과 후 수업에 투입될 예정되었다. 그녀는 너무나 떨린다고 미리 우황청심환까지 사서 차에 둔 그녀의 모습을 이상은 기억했다.


 미정의 첫 과학 실험 수업의 내용은 생각보다 어려운 주제였기에 그녀는 수업을 앞둔 며칠 전부터 이상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당장 다음 주에 첫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당신이 수업 내용을 보고 나한테 제대로 설명을 좀 해 줄 수 있겠어? 나는 도저히 잘 이해가 안 가서 말이야."


 이상은 이과 출신이라 그런지 수업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늦은 밤, 세 아이들을 다 재운 후 거실에 나와 단숨에 학습 내용의 요지와 주제를 파악하고 정리를 해내는 이상. 그리고 곧바로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이미 많은 경험과 희열까지 갖춘 그가 방금 막 습득한 과학 실험 수업 내용을 그녀에게 온갖 제스쳐와 이론을 보태어 설명을 해 주었지만 그의 설명이 어려웠는지 아니면 그 수업의 내용 자체가 어려웠는지 그녀는 계속 아리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상이 생각하기에 아마도 내용의 어려움보다는 처음으로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걱정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정작 미정에게 있어서 이 과학 실험 수업은 출산과 결혼 이후 첫 사회 생활이자 교사로의 첫 걸음이었기에 너무나 떨리고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녀에게는 이 사건이 어떤 다른 세계에 이르는 의식이라고까지 생각되었다.


 그렇게 수업에 대한 이야기와 설명을 하다가 피곤했던 이상은 그만 이렇게 말하고야 말았다.

 "내일 또 시간이 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 자자."라고 또 대수롭지 않게 말이다.


 그말을 처음 들었을 때, 미정은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은 지금 이 일이 나한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는구나. 항상 나한테 이런 식이었지. 당신한테는 쉬운 일이지만 나한테는 정말 어려운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구. 멍충아!'

 하지만 미정은 그러한 생각을 표정하나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수업 준비 자료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이 되었다. 분명 그녀는 이상에게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로 나와서 자신의 수업 준비를 도와달라고 했고 이상이 그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 말은 바꾸어 말하면, 나는 지금 엄청 초조하고 불안하니 시간이 허락하는한 모든 일을 제껴두고 내 수업 준비를 도와달라는 뜻이었으나 이상은 미정이 직접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니 전혀 큰 일도 아니고 그렇게 어려운 수업은 아니라 속단했다. 그래서 이상은 알겠다고 대충 말하고는 그만 아이들을 재우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고야 말았다.


 계속 이상이 거실로 나오기만을 다른 방에서 기다리던 미정은 사실 이 지점에서 감정이 폭발하고야 말았던 것을 이미 꿈나라로 떠나버린 낙관주의자 이상이 알아차렸을리가 만무했다.   


 다툼은 사실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상이 판단했을 때(이는 이상 개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었으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이런 치명적 실수는 대부분 남자들의 전혀 쓸모없는 이성적인 판단의 오판에서부터 비롯된다)방과 수 수업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고, 전임자의 말에 따르면 수업 내용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실험 도구를 제작하며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기에 그는 마음이 편안했다. 그래서 그녀가 그렇게까지 부담을 가지고 준비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그릇된 판단이 이상과 미정 , 두 사람 사이의 생각의 기준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버렸다.


 그녀의 기준에는 자신의 첫 수업이었기 때문에 확실히 더 준비하고, 내용도 완벽하게 알아야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까지 전부 A4 용지에 미리 적어두어야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미정은 이상에게 수업할 내용의 순서와 요점을 A4 용지에 적어서 정리를 해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이상은 그 일이 꼭 그렇게까지 해서 준비 할 정도의 수업인가 하는 말과 함께 약간의 귀찮은 마음을 내비추었던 것도 사실이다. 원래부터 미정은 상대방의 마음의 태도와 생각을 읽는 촉이 좋았기에 대번에 이상의 그런 태도 속에서 마음 속 1인칭 고백의 내용들을 읽어내고는 드디어 전날부터 쌓아두었던 화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러나 이상은 갑자기 자신에게 이유도 없이 불같이 화를 내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미정의 모습에 또 왜 저럴까 하는 생각에 한숨만 나왔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그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마져 싹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의 다툼으로 얼룩진 미정의 첫 수업 준비는 며칠간 서로 화가 난 채 대화도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졌고, 다행히 그녀는 수업 전날 전임자의 도움을 받아 이래저래 첫 수업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정의 마음 속에는 이상에 대한 분노와 섭섭한 마음, 그리고 화 같은 감정들이 사그라들지 않는 불꽃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는 채로 집으로 돌아왔고, 그 모습을 본 이상은 수업이 큰 문제 없이 잘 끝났구나하는 생각에 스스로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거봐, 별 거 아니지? 처음이라 긴장되어 그러지 사람이 막상 닥치면 다 하게 된다니까.'라고 말이다.



사건의 확장

 

 그 후로는 그 다툼에 대해서는 일구 일언의 말도 없이 며칠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부부는 서로를 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주 후, 근처 초등학교에 3월부터 시작되는 방과 후 로봇 수업에 좋은 자리가 나서 중요한 면접을 치르기로 되어 있었다. (미정의 입장에서는 학교의 위치가 집과 가깝기도 하고, 페이도 나쁘지 않아 꽤나 매력적인 자리였다.)


 역시나 그녀는 면접을 앞둔 전 주부터 수업을 진행하는 업체로부터 면접에 관한 질문지와 답이 작성된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우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느 날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또다시 이상에게 전과 같이 똑같은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이상 역시 이번에는 확실히 그녀를 도와줄 마음이 충분히 있었다.


 그녀가 이상에게 요청한 도움이란 아주 간단했다. 면접관처럼 질문지를 보고 질문을 해달라는 것과 자신이 답한 내용에서 빠지거나 틀린 내용은 없는지 체크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어려운 과학 이론 수업이 아니라서 이상은 더 이상 그녀에게 목소리 높여 뭔가를 설명해 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한결 더 안심이 되었다.


 그날 오전, 이상과 미정은 함께 집 앞 카페에서 잠깐 30분 정도 면접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이미 질문과 답을 거의 80% 정도나 외우고 있었다. 물론 말하는 화법이나 대답하는 수준이 썩 매끄러운 정도는 아니라고 이상은 생각했지만 이 정도면 면접을 치룰 정도로 충분하지 않나 하는 오판에 다시 빠져버렸다. 이 순간, 역시나 남성의 이성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을 향한 감성과 따뜻한 응원의 말 한마디였음을 왜 이상은 여전히 몰랐을까?



 다시 아이들이 다 잠이 든 야심한 밤, 이상은 읽고 있던 경제관련 서적을 내려놓고 면접 질문지를 보면서 그녀에게 면접에 관한 예상 질문을 하나씩 의미없이 던졌다.


 한 10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큰 딸아이가 부부의 목소리를 듣고서 잠에서 깨어나 버렸다. 그래서 이상이 급하게 다시 큰아이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재우게 되었는데, 그날도 쿠팡 배송 일을 하고 왔던 터라 날씨도 추웠고, 몸도 피곤했던지라 그만 또다시 잠이 심하게 몰려왔다. 그리고 큰 딸아이도 완전히 잠이 들지 않았다. 그는 오늘밤 이만하면 되었으니 그만 잠자리에 들고 싶은 이기적인 욕구가 스믈스믈 올라왔다.


 그래서 억지로 잠이 오는 몸을 일으켜 다시 거실로 나가 그녀에게 겨우 이 한 마디를 건넸다.


 "여보, 지금은 애들도 자꾸 깨어나고 나도 몸도 피곤하고 하니까 내일 오전에 카페에 가서 다시 하면 안 될까?"


 이상의 그 한 마디에 질문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열심히 면접 준비를 하고 있던 미정이 이상을 불 같은 눈길로 쏘아보며 가슴 속에 이글거리던 분노를 쏘아붙였다. 그리고 이 글의 제목처럼 이상에게 이렇게 화를 냈던 것이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던지 그렇게 대충대충 해? 당신은 내가 이 면접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떨리는 일인지 당신한테 말한 사실조차 기억은 하고 있어? (잠시 정적).......

됐어, 그만둬. 들어가서 잠이 나 퍼질러 자."


 그렇게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화를 이 한 마디에 쏟아내고, 미정은 면접 질문지를 가방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는 방문을 쾅하고 닫고 들어가 버렸다.


 순간, 이상은 이게 또 뭔 사건인가 하는 황당함과 함께 내가 또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 하는 자책이 이상을 사로잡았다. 갑자기 홀로 거실에 남겨진 이상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몰라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잠을 잘 수도, 그렇다고 안 잘 수도 없는 처량한 신세로 몰리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는 동안 이상은 자신의 실수가 무엇이었나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100%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도 집안이 가시방석이라 몇 번이나 용서와 화해의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 때마다 더 커져버린 미정의 화난 감정과 실망감,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적대심만을 발견한 채 이상과 미정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의문 부호만이 남게 되었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부부 사이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하는 감정은 영원히 지속 가능한 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있다가도 사라지는 바람과도 같은 것이 인간의 감정이기에'라고 이상은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다.)


 그녀가 말하길,


 "당신은 언제나 당신만 중요했지 내가 뭘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뭘 느끼든 관심이 없었잖아. 근데 나한테 무슨 관심을 가졌다고 그래?"라고 반문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맞는 말이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는 아니기도 한 대답을 들은 이상은 더 이상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대충대충 남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는 참으로 비참하고, 비통하고, 좌절감을 느꼈다.


 '과연 나는 지금껏 나의 삶을 정말 그렇게 대충대충 살아왔던 것인가?' 이상은 오늘도 깊은 생각에 잠긴다.




 결론은 이 한 문장에 담겠다.

여성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남성의 사랑과 관심을 원하고, 남성은 그러한 사랑과 관심을 주지도 못하면서 여성으로부터 마땅한 존경과 대우를 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구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