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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Jan 25. 2022

서로 다른 서른의 시간

이상의 시간


 -서른의 이상

 이상은 바로 전날 일어난 사건 때문에 며칠간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이상의 내면의 괴로움과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 자신만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지금 가장 고통스러운 삶의 한가운데에 있구나...'


  대학 졸업 후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생활비마저 바닥났던 이상은 얼마 전부터 지역 화력 발전소 정비 보조공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지인이나 학과 선후배들은 삼성이며 엘지며 국내 이름한 대기업에 속속들이 취업에 성공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꽤 되었는데 자신은 하루 밥 법이도 걱정하고 있는 신세라니 자신의 삶이 너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내일은 아버지 환갑날이니 내가 일하는 취화선으로 저녁 6시 30분까지 와. 조촐하게 셋이서 같이 저녁이라도 먹게]


 전날 두 살 아래 남동생에게부터 날아온 문자였다. 이상의 가족에게 엄마의 자리는 어린 시절부터 없었다. 이상의 기억으로는 7살에 이혼을 했다고만 알고 있다.


  동생이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자신이 메인 주방장으로 있는, 지역에서도 소문난 중화요리 전문점 취화선으로 찾아오라는 식의 통보였다.


 (이상은 동생은 중졸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결국 미친듯한 노력과 멸시 천대 끝에 20대에 큰 중화요리 가게의 메인 주방장이 되었다. 물론 그동안 못 받은 임금도 많았지만 중졸의 학력으로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막막함에 입을 꾹 다물고 일해 왔을 뿐이다.)


 이상은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막상 환갑날이 되니 도저히 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일을 마치고 가려고 하니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상은 걸어가기로 했다. 거기다 세찬 비까지 내렸는데 이상은 우산조차 없었다.


 한 시간을 넘게 걸어 약속 시간도 1시간이나 넘긴 늦은 저녁에 겨우 약속 장소에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나타났다.


 아버지의 환갑날, 그는 서른이었다.

 이상은 그동안 너무나 지쳐있었고,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이상은 동생에게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장본인이 바로 이상이라는 말투의 비난과 조소를 당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의 마음속에서는 목이 터져라 이렇게 변명하고 싶었다.


 '내가, 또 우리 집안이 이렇게 된 것은 나의 탔고 있지만, 너의 탓도, 아버지의 탓도 있어.'


 그러나 이상은 목이 매여 여섯 살 어린아이처럼 그저 꺼이꺼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계속되는 동생의 비난과 무시하는 말투에 그만 수저를 던져버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렇게 소리쳤다.


 "그만 좀 하라고!!

 나도 최선을 다 했다고, 그런데도 안 된 것을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야. 나도 이제는 힘들다고.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그러니까 내가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도, 내 멋대로 살아왔다는 것도, 너나 아버지한테 면목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 제발... 좀... 그만 하라고. 제발..."


 이상은 눈물이 목에 매여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순간 식당 안은 조용해졌다. 그렇게 독기를 품고 이상을 비난하던 그의 동생도 놀랬는지 아무 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상은 그 어떤 부끄러움도, 염치도, 체면도 모두 잊어버린 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생각했다.


 '정말 나는 십 년 동안 잘못 살아왔단 말인가? 그렇게 노력하고, 돈에 쪼들리면서 일이란 일은 다 하면서 지금까지 버텨왔건만... 서른에 지갑에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백 원짜리 동전 하나 없는 내 신세가 초라하기 짝이 없구나. 결국 이런 것이 인생인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의 연속 말이다. 이제는 그만 해야겠다. 이 정도면 충분해.'


 이상의 아버지는 그에게,


 "그래, 우리 아들 여기에서라도 마음속에 있는 거 다 털어놔서 다행이다. 10년 간 또 많이 배웠네. 더 단단해질 게다. 애썼다. 애썼어. 모든 게 다 아무것도 못해준 이 못난 아비 탁이지 너희들은 잘못이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서른 살의 이상은 비 오는 날 한 시간 이상 걸어온 그곳에서 아무것도 먹질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상은 그 자리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인 식욕조차 드러내서는 안 될 것 같은 죄책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이상에게 너무나도 슬픈 날이었다.


 결국,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간에 이런 식으로 서로 분리와 상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이상 스스로 그들을 자신의 인생에서 밀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상실과 좌절은 인간의 마음을 참으로 아프게 하지만 그만큼 인생을 단련시키고 성숙시킨다.


 이상은 마지막으로 식당을 나서며 이렇게 속으로 다짐했다.


 '두고 보아라. 아직 끝이 난 게 아니다. 내 반드시 반드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테니.'


 그는 인사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나왔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그는 다시 길을 걸었다.


 며칠 후 그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 육체노동을 이어갔다.


 일을 하는 동안 그의 가슴은 꾸만 아프고, 슬프고, 힘도 용기도 나지 않았지만 그것을 떠받치고 있던 어떤 목소리는 이상에게 이렇게 외쳤다.


 '그래도 인생에 희망이라는 것은 있다. 모든 절망의 끝에서 희망은 태어나는 것이다.'


 그랬다.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마지막 끈, 실낱같은 희망과 믿음의 끈만큼은 정말 놓고 싶지가 않았다. 그것은 정말 그에게 남은 모든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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