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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Jan 27. 2022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손에 쥔 채로

 사실 이상은 밤새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다.

 전날 새벽 5시까지 이런저런 생각의 숲에서 헤매다 글을 끄적이다 겨우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후 늦게 일어나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서 나왔다.


 제주도에서 떠나는 비행기는 한 시간이나 지연 출발을 했다. 김포 공항에 내려 그녀가 있는 집으로 리무진 버스를 타고 가는 한 시간 동안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그녀에게 어떻게 첫마디를 건넬 것인지를 두고 계속 고민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그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리무진 버스는 종착지에 도착했고, 차창 밖으로 이상을 기다리고 있던 그녀를 먼저 발견했다.


 먼지 가득한 무거운 배낭 가방을 리무진 트렁크에서 꺼내고는 길 위에 서 있던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잘 왔어?"


 그녀가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 웃음 속에 미정은 더 이상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성보다 감성을 믿었고, 이미 그에 대한 호기심과 선한 호의가 어떠한 결론에 다다르게 될지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그처럼 이 만남이 인생의 거대한 흐름을 바꾸어 놓을 운명적 만남이 되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상은 그녀를 따라 줄곧 혼자서 삶을 이어왔던 그녀의 지극히 평범하고도 개인적인 공간으로 들어갔다.


 이상은 먼저 그의 묵직한 배낭에서 꼭 필요한 물건만 먼저 꺼내기로 했다. 이상의 배낭 안에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읽고 있던 칼릴 지브란과 법정의 책이 들어있었고, 이 두 권의 책을 꺼내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으로 사용하기로 마음먹고는 방 안의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 두었다.


 이상은 당분간 이곳에서 지낼 예정이었다. 몇 달간 떠돌이 방랑자 생활을 이어왔던 이상에게 있어서 고향이라는 것은 일종의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품이었다. 그에게 이러한 호의와 따뜻한 마음을 기꺼이 내어준 미정이 그에게는 마지막 고향, 영혼의 기착지가 되어 주었다.


 이상은 이곳에 사랑과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잎을 내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생명의 순환이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지연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신 쓴 커피의 카페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녀의 공간 속에 들어간 첫날 밤이 주는 설렘 때문이었는지 그는 그날 저녁 그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었지만 (이들은 첫날부터 사랑을 나누진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서 이상은 바닥에서 따로 잠을 잤다) 결국 아침 해가 어슴푸레 뜨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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