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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Jan 27. 2022

사랑의 이면은 고통

 사랑은 이면에서는 고통이 존재한다. 더 정확히 말해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 더 큰 고통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과거에 사랑했던 기억이 더할수록 고통도 가중된다.


 이상은 이제 마음을 추스르고 삶 앞에 당당하게 맞서 보기로 했다.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다시 하늘 높이 올라가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창문에 어릴 때까지 이상은 잠을 이룰 수 없어 멍한 눈으로 홀아버지가 살고 있는 고향 집의 좁은 방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하나님, 제가 제발 깊이 잠들 수 있도록 도우소서.'라고 주문처럼 기도를 읊조렸다.


 그렇게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간대 속에서 이상은 현실과 몽상을 구분할 수 없는 환각의 세계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그녀가 없는 외부 세계는 그에게 그 어떤 의미도 던져주지 못했다. 

 의미로부터 외면당한 영혼은 소멸과 망각의 고통 속에서 소리 없이 몸부림치게 마련이다.


 이상은 본능적으로 잠에서 깨어 이불을 깨끗이 정리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는 항상 일어나자마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에서 소로우가 언급한 한 대목을 떠올리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른 새벽잠에서 깨어난 그는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차갑고 깨끗한 월든 호숫가에서 멱을 감았다.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행위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자신의 영혼을 깨끗이 씻어주는 정화의식이다.

 여전히 다를 것이 없는 오늘 하루의 삶이지만 몸을 깨끗한 물로 씻어내는 행위는 그에게 주어진 하루의 삶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자 신성한 의식이었다.'

  

 이상은 샤워를 다 끝내고 타월로 몸을 닦는 동안 이제 그녀와의 관계를 어떻게 매듭을 지을 것이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는 지난 6일 동안 꾸준히 이러한 순간이 오기를 기다려왔었다. 모든 일은 적시에 찾아오는 순간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너무 성급하지도 너무 느긋해서도 안 된다.


 '과연 이 세상에는 단 한 사람의 사랑뿐일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의도하지 않았지만 저절로 솟아나는 사랑의 대상, 때로는 그 사랑이 너무 잔혹할지라도 의지로 그 사랑을 영원히 이어나가고 싶은 대상,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 밖에 찾아오지 않는 사랑의 대상은 과연 한 사람뿐일까?'


 하루와 이틀, 그리고 6일 동안 시간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밤과 낮이 혼란스럽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흘러가는 동안 이상은 이러한 생각 속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내린 채 그녀가 있는 서울로 가기 위해 고향집 문을 나섰다.


 다시 그녀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상의 내면은 고요하고 차분하며 평온하기까지 했다. 


 저녁 6시쯤 그녀의 집에 도착한 이상은 긴 긴 밤을 그녀와 함께 보내면서 점차 화해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미정은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이상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느덧 새벽녘의 동이 트고 아침의 어스름이 창을 밝히는 순간까지 그들은 한 침대에 누워 서로의 체온을 더듬으며 편안하고도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상은 그녀와 1주일 만의 재회였음에도 그녀와 함께 한 이불속에 누워 있다 보니 낯선 친숙함이 들었다. 낯설지만 곧 친숙해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미정 역시 더 이상 그 어떤 남자도 만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몇 년 간의 의지가 그의 따뜻한 마음과 체온으로 인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의 감정의 웅덩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혹시 내가 이 남자와 결혼하게 될지도 몰라.' 하는 행복감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한동안 서로  아무 말 없이 각자 자기만의 생각 속에 빠져 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상은 전날 밤을 꼬박 지새우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피곤하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나는 이 여자와 결혼을 해야겠어. 아니 결혼을 하고 싶다.'라는 거부할 수 없는 힘, 진리, 어떤 명령이자 호소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그의 영혼은 다시 그녀로 인해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부여받았다. 


 비로소 그는 편안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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