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꽃 오리구이, 베이징 덕
평소에도 맛집을 별로 즐겨가지 않는 우리 가족은 춘절에 드디어 베이징 요리의 꽃인 베이징 카오야를 먹어 보았다. 베이징의 대표 요리 중의 하나로 19세기 이전에는 궁정 요리였다고 한다. 여러 개의 식당들 중에 중국 초기에는 싼리툰 시내에 위치한 편의방 카오야를 방문했는데, 그때 먹어본 우리의 첫 베이징 카오야의 느낌은 굉장한 느끼함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 카오야를 다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편의 권유로 중국을 떠나기 전에 그래도 한 번은 카오야를 먹으러 가자고 해서 새로 찾은 곳은 전취덕(全聚德, 취안 쥐 더)이었다. 춘절에도 대부분 시내의 큰 식당들은 문을 열어서 오랜만에 왕푸징에 위치한 전취덕점을 방문했다.
춘절이라 지방에서 올라온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여행객들 차림의 중국인들과 깃발 여행 중인 단체 관광들의 행렬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역시나 여기저기 중국의 춘절을 알리는 붉은색 장식이 가득하다.
그래도 춘절 연휴인 거에 비해서 대기 없이 빈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는데, 식당 내부의 느낌은 오래된 결혼식장의 뷔페식당 같은 느낌이었고, 테이블 주변에서 기름기가 쫙 빠진 오리를 사시미 뜨듯 뜨고 계신 요리사 아저씨들의 분주한 손도 볼 수 있었다. 한쪽에 '나는 오리였어요.' 하듯이 오리의 얼굴이 있다.
자리에 앉아서 세트 메뉴판을 스캔해서 번역기를 보고 있는데, 직원이 친절하게도 우리가 보고 있는 페이지는 양이 많다고 뒤쪽의 메뉴를 추천해 주셨다. 남편은 식탁 위의 아이패드로 사진을 보며 주문을 하기 시작했고, 카오야를 좋아해서 온 게 아니라 맛을 다시 보자고 방문한 거라서, 카오야 반 마리, 춘권, 야채 볶음, 밀전병 2개, 소스 세트 3개, 밥 3개, 음료수 3캔을 주문했다. 우리가 총 주문한 가격은 310 rmb로 한화 약 57,500원 정도였다.
처음에 서비스로 바삭한 오리껍질과 밀전병과 소스세트가 서빙되고, 밀전병에 오리껍질과 파채, 오이, 소스를 찍어서 전병처럼 싸 먹어봤다. 원래 오리껍질은 설탕에 찍어먹는 거라는데, 단맛을 좋아하지 않아서 살코기처럼 밀전병에 싸 먹었다. 기대 없이 먹어서 그런 건지, 전에 방문했던 식당보다 훨씬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고 중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와 아들의 입맛에도 잘 맞았다. 회식으로 중국 요리를 많이 접함 남편도 이제껏 먹어본 카오야 중에 가장 맛이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밥심으로 사는 우리는 밥과 뒤이어 나온 카오야의 살코기를 같은 방식으로 밀전병에 오이도 듬뿍 넣어 싸 먹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맛이어서 이걸 안 먹어보고 중국을 떠났으면 후회할 뻔했다며 극강의 부드러움에 빠졌다. 그래도 오일리함이 있긴 해서 탄산음료는 우리한테는 필수였다. 갓 튀긴 춘권과 생야채볶음(공심채도 아니고, 중국 식당에서 좋아하는 야채인데 아직도 이름을 모른다.)도 간이 딱 괜찮았다.
오로지 베이징 카오야를 위해서 왕푸징행을 한 오늘의 선택이 후회되지 않을 정도의 맛이어서 아주 흡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요리도 맛도 잘 모르지만, 현지 음식을 먹어보는 것만으로도 음식을 먹는 동안은 그 나라의 사람의 입장에서 살아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