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몸이 되었다.
내 몸이 아파지며 더 예민해지고, 원래도 단순한 내 일상을 살던 나는 온갖 지금까지 해오던 최소한의 관계조차 다 끊어버리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신경성 증상들은 점점 몸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되어 나타났다. 심장도 두근거리고, 얼굴 턱관절이 굳어지기도 하고, 두 팔과 다리도 벌벌 떨릴 때가 많고, 내 자신이 이렇게 아픈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결국 큰 결심을 하고, 나는 학교의 모든 단톡에서 나와버리는 일을 감행했다. 친한 분 몇 분한테만 예의상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독자노선을 탈 것을 예고했다.
드디어, 그렇게 바라던 '자유의 몸'이 되었다. 고지식하면서도 올곧은 내 성격에 맞지 않는 곳에서 남은 기간은 내 갈 길을 가자고 마음먹었다. 원래도 그러려고 온 곳이고, 나의 역할은 아내와 엄마이다. 할 말 있으면 개인끼리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라, 카톡에서의 가족 단톡방도 불편해서 나오는데, 학교의 한국인 단톡방은 오죽할까. 늘 울리던 알람도, 새로 확인해야 하는 중복적인 글들도 더 이상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간혹 보이는 눈에 거슬리는 말투나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하고, 또 그곳에 붙어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애쓰는 자들을 볼 필요도 없어졌다.
피를 나눈 가족도, 영업 이익을 가지고 와야 하는 회사도 아닌, 엄마들 모임은 선택에 의한 자유 모임이란 생각에 나의 없는 에너지를 더 이상 쏟지 않고, 그 시간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김장을 담가보기도 하고, 외국인 엄마한테 발효종을 가지고 만드는 빵을 만드는 법을 배워와서 난생처음 베이킹도 시작해 보았다. 빵반죽을 만드는 주방기기도 구입하고, 한국에서 하지 않던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는 게 재미있었다.
한국에서보다 더 살림에 재미를 붙이고, 가족 유튜브도 만들어보고, 나의 감정과 일상에 대한 글도 끄적이며 정보도 공유해 주었다. 생각보다 나와 비슷한 내향형 집순이의 사람들이 베이징에도, 또 같은 중국에도, 전 세계 각지에 주재원 와이프로 있었고, 내게 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서로 위로와 공감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되돌아보고,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나의 용기를 보고 주변에서 자신들도 그러고 싶은데, 실천하지 못함을 고백하기도 했다. 보통은 자신이 엄마들 사이에서 소외될까 봐 겁이 난다는 이유와 아이들의 관계가 깨질까 봐, 즉 혹시 아이가 혼자가 될까 봐 이 두 가지의 이유가 가장 컸고, 편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무시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얻어가고 싶은 삶의 방향이 있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까지만 했다. 나중에는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조차 지나버리면 무의미한 걸 느껴서 점점 나의 말과 생각도 아끼게 되었다. 이미 나보다 경험 많은 사람들은 애초에 발을 들이지 않거나, 뒤늦게 존재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드러나지 않을 뿐 어딘가에 존재했다.
한 번은 나의 단톡 탈퇴를 알게 된 반대표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고, 자꾸 무슨 일이 있냐며 얼굴 한 번 보자고 하더니, 결국 집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그분이 무슨 죄인지. 그냥 반대표를 맡았다는 책임감으로 온 것이었다. 참 사람 좋고 성격 털털한 그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사람 좋아하는 해맑은 분이셨다. 우리 집에 오셔서도, "왜 그래, 나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다 얘기해 주고 알려주고 나는 너무 좋던데. 그냥 다시 들어오지." 나는 그녀에게 "아니에요, 제가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 같고, 더 이상은 못 있겠어요. 제가 이상해요."라며 끝까지 거절하는 난감한 입장에서도, 어차피 한 번은 겪고 털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불편한 먼 걸음을 한 대표분은 역시 털털하게, 핸드폰 배터리가 없다며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고,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내게 줘야 할 택시비를 까먹으실 정도로 한편으로는 내심 부럽기도 한, 머릿속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분이 아니셨다. 여기까지 의무와 책임감으로 오셨으니 택시비는 내드려야지.
하지만, 초기에 내가 염려하던 한인타운 살이의 갑갑함은 남아있어서 이사 시점이나, 틈만 나면 어떻게든 이곳을 나와 조용하고,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가고자 꿈꿨다. 꿈은 꾸기만 해서는 이루어지는 게 아니니, 당시에 빵을 내게 가르쳐주었던 외국 엄마한테 부동산 소개를 받아서 틈틈이 혼자 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남편과 아들의 마음을 사기에는 당시에 보는 집들이 시원치 않았다. 한 번은 노력 끝에 한인타운과 거리가 있는 조용한 주거 타운에 계약 직전까지 갔으나, 편의점에서 천장을 뛰어가던 '라따뚜이'의 주인공을 본 아들과 남편은 용기를 내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한인타운을 떠나지 못한 채 맴돌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자유의 몸이 되어 망토를 쓴 투명 인간처럼 마음대로 활보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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