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된 정보 속의 자유로운 각자의 삶을 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해외 각국에서 주재원 와이프로 오는 외국인 엄마들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만날 경우가 많았다. 한인타운에 살 당시에는 학교에서 보는 모습과 가끔 아이와 플레이 데이트나 슬립오버를 할 때 연락하는 대화와 행동 속에서 내가 살아온 모습과 다른 문화를 엿보기도 했지만, 외국인 마을에 살게 되면서 더 깊히 그들의 생활 방식을 관찰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일단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웠다. 학교에서 마주칠 때나 스쿨버스를 기다릴 때나, 마트나 동네에서 운동하다 마주칠 때나 늘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 일이 있어서 가게 되면, 자기 나라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를 하기도 하지만, 주로 아이의 스케줄에 따라서 아이를 따라 움직이거나, 볼일만 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동네에서도 혼자 요가복이나 조깅 차림으로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듯한 헤드셋과 선글라스, 헤어 밴드 등으로 장식을 하고, 혼자만의 운동에 충실하는 듯했다. 마트에서 만나도 늘 편한 옷차림을 하고 간단하게 그날의 품목 리스트를 담는 배낭을 짊어지고 와서 장을 보고 걸어가거나 자전거, 전기 오토바이, 툭툭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한인타운에서 보던 모습은 동네를 걸어가다가도 최소한 두 명은 모여서 같이 아침 운동을 하거나, 요가나 필라테스도 같이 이동을 하기도 하고, 마트도 같이 가는 모습이 일상이었는데, 외국 주재원들은 개인의 삶에 대한 선이 정확해 보였다. 물론 그들도 모일 때가 있다. 등산, 라이딩, 여행 등 목적을 가지고 하는 액티비티 활동을 하거나 친목 파티를 할 때는 친한 집에서 모이거나, 어른들끼리 모여서 간단한 디너파티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동네의 나이가 가장 많은 아이들한테 용돈을 쥐어주고 어린아이들을 맡기도 했고, 그 시간에 친구 집으로 보내서 플레이 데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냥 어쩌다가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계획된 삶과 늘 정해진 약속 일정에 따라서 스케줄 조정을 하며 효율적인 삶을 사는 듯했다. 내가 본모습이 전부이니 또 다른 모습들이 있을 수도 있다.
낯선 환경에 처음 살게 되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일 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간단하게 택배를 반품하는 부분부터, 아니, 일단 어느 택배를 이용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택배 어플을 깔아야 하는지, 또 이 동네에서 유명한 식당은 어디인지, 아이들이 놀기에 좋은 공원은 어디인지, 학교 캘린더는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 등의 일상생활의 궁금한 사항들이 넘쳐난다. 이외에도 학교 생활을 하면서도, 학교 일정에 대해서나, 급하게 생긴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물어볼 누군가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곳에 이사 와서 외국인에 의해서 추천받아서 들어가게 된 단톡방은 이 모든 궁금증들을 말끔하게 씻어줄 만능 해결사들이 모인 단톡방이었다.
학교에서 한국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그룹 톡에서는 정보를 약간 사유화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동등하게 반대표의 후보자가 되고, 주최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총알 없는 권력으로 나뿐만 아니라 힘들어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해외에 살면서 같은 나라 사람이면 오히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친분 과시와 어느 모임에 들어야만 정보를 공유해주기도 하고 마치 그 정보가 고급 정보인 것처럼 둔갑되어 그곳에 끼지 않는 사람은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처럼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크게 상처받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어리고 나이가 한참 많은 엄마들이 주재원 와이프로 오거나, 몸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일들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불편해지는 모습을 많이 봤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어떠한 자격과 조건이 없이 중국 생활에서 외국인으로서 살기에 너무 도움이 되는 여러 개의 그룹톡이 존재했다. 인종과 언어에 상관없이 같은 단지에 사는 사람들끼리의 정보를 공유하는 톡, 같은 단지 사람들끼리 물건을 사고파는 톡, 또 그 지역의 커뮤니티에서 물건들 사고파는 톡과 엄마들이 학교와 육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톡, 또 무료로 물건을 나눔 하는 톡까지 있어서 이곳에서 사는 동안 정말 알차게 이용을 했다. 한국인들은 간혹 이름에서 보이는 몇 안 되는 분들이 있었고, 코로나 이후로 알게 된 몇몇 한국인들에게 톡에 초대해 주어서 그들도 중국 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너무나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의 카페만 해도 가입하기 위한 개인 정보를 적어야 할 때가 많다. 목적, 거주지부터 간혹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물을 때도 많다. 또 카페 규정이 있어서 물건만 파는 글만 올리면 카페로부터 경고를 받거나 등급이 강등되기도 한다. 나도 오랜만에 올리는 글이라서 규정을 확인하지 않고, 카페에 판매글을 연달아 2개를 올렸다가 힘들게 쌓아온 판매글에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해서 다시 초보 회원이 되었고, 귀찮아서 그냥 카페를 탈퇴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냥 이곳에서는 지역 주민들이다 보니 편하게 위챗으로 물건 사진과 상세 설명을 올리면 원하는 사람이 연락이 오고, 서로 얼굴 보고 바로 직거래도 하고, 위챗으로 바로 친구 추가를 해서 거래를 하니 방식도 너무 편했다. 새로 온 지인이 있으면 편하게 위챗그룹톡을 소개해주고, Admin이 승인을 하면 바로 기존 멤버들과 똑같이 묻고 답할 수 있다. 정보를 쉬쉬하고 숨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는 게 있으면 너도 나도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올리기도 한다.
또 서로 간의 바운더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며 깊이 생각하지 않는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인간관계가 편해 보이기도 했다. 주변에는 여러 국제학교 선생님들이나 외국인들이 많이 살기에 서로 어떤 일이 있을 때 우리 같으면 충분히 개인적인 부탁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단톡방에 도움을 청한다. 예를 들어 아이의 학교 트립 때 급히 큰 백팩이 필요하거나, 특수한 의상이나 공구 등 한번 쓰고 마는 그러한 소소한 종류의 부탁들이 있다.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충분히 친한 지인에게 먼저 개인적으로 물어볼 만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 질문을 하면, 그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집에 그 물건이 있다고 집호수를 쓰고, 언제든 편할 때 가지고 가라고 하거나, 내일 아이를 통해서 전달해 줄 수 있다고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그 모습에서 상대가 불편해할 수 있는 부탁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일반적인 단톡에서 문의하며 각자의 선을 지키는 모습이 자잘한 인간관계에서의 스트레스가 많은 나는 좋아 보이기도 했다.
주재원 와이프들은 이곳에 모두 남편의 직장으로 인해서 잠시 머물다가는 이방인이다. 잠시 스쳐가는 인연이기에 때로는 안 좋은 모습으로 헤어지기도 한다.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도움을 주고받으면 되지만, 때로는 좀 더 먼저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이유로, 좀 더 잘 안다는 이유로,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며 참견을 하거나 좁고 한정된 공간에서 자리싸움이나 괜한 부질없는 권력 싸움을 하기도 한다. 외국 주재원 와이프들의 모습을 속까지 들여다보지는 못하지만 겉에서 보며, 친하되 서로 간의 예의를 지키고,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유롭고 여유로운 그 모습이 닮고 싶었다.
이렇게 몇 년 직접 느끼고 살다 보니 어느새 나도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자유부인이 되어서 한국에서는 절대로 입을 수 없는 몸매에도 레깅스를 입고 나가기도 하고, 언제부턴가는 운동복 말고는 입을 옷이 없어지기도 했다. 초록색이 가득한 푸르른 나무를 바라보며 산책을 겸한 걷기와 벤치에 앉아서 햇빛을 쬐는 휴식 시간이 나의 일상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힐링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이곳에서 살며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방법과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갖고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Unsplash
*개인적인 일정으로 하루 늦게 글을 발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