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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lie 몰리 Jun 07. 2024

코로나 악몽, 주재원 가족한국으로 대피!?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 시작되었다.

중국 주재원 생활에 마가 꼈는지, 행복감에 취해 살던 것도 잠시, 2019년 가을 중국의 우한에서 코로나 소식이 조금씩 흘러들어왔다. 그해는 조금씩 퍼지는 코로나 소식으로 인해서, 혹시 모를 집단 감염에 대비해서 중국의 최대 연휴인 국경절도 베이징 투어로 마무리하고 몸 사릴 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그때부터 우리의 코로나 악몽은 시작되었다. 이 코로나로 인해서 중국 주재원 생활의 가장 큰 육체적, 심리적 타격을 입은 시발점이 되고야 말았다.


매년 장기 출장을 가는 남편은 우리와 마지막 식사를 하고, 퍼져가는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기나긴 출장길에 올랐다. 베이징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조금씩 늘어가면서, 회사 측에서는 주재원 가족들을 한국으로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당시에 중국에도 이미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서, 동네 마트, 약국, 편의점에도 초강력 가족고무밴드를 자랑하는 마스크와 필터가 장착된 마스크가 품절이 되기 시작했고, 2020년 1월 30일 목요일에 나와 아이는 갑자기 짐을 싸서 회사에서 끊어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야만 했다. 중국에 남편을 두고.

Photo by Mollie

갑작스러웠지만, 금방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겨울 패딩 차림과 옷 몇 벌 등 부랴부랴 짐을 챙겨 각자 백팩을 메고, 캐리어 2개, 그리고 기내용 가방 1개를 가지고 베이징 공항으로 갔다. 코로나 상황의 공항은 긴장모드였고, 평상시에 볼 수 없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비닐 방한복부터 얼굴을 덮는 마스크를 낀 중국인도 있고, 지금 생각해도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하는 순간이었다. 감염을 막기 위한 질기디 질긴 가죽 고무밴드를 빼고 싶다고 징징거리던 아들과 혼자 짐을 싸서, 서있고 싶지 않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의 긴장도와 예민도는 최고치에 달했다.


서로 감염될까 봐 멀리서 경계하는 분위기에서 보채는 아이의 마스크를 늘려주려고 땀을 흘리며 끈을 늘려주다가, 결국 마스크의 끈은 끊어져버렸고, 이미 체크인을 한 후라서 여분의 마스크도 없자, 내 안의 뜨거운 용암이 솟구치며 아이한테 소리치기 시작했다. "좀 가만히 있어! 지금 그럴 분위기 아냐. 마스크도 없는데, 비행기는 어떻게 탈 거야!" 결국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가서 마스크 끈을 더 조여서 매듭을 지었고, 아들은 한쪽 귀가 쪼이는 아픔을 견뎌가며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얼마나 한국에 머물지, 어디에서, 어떻게 머물지 계획도 없고, 인천공항행 티켓이 없어서 선택한 김포공항행은 참담했다. 목적지행 공항리무진 없다는 걸 모른 채 도착한 아이와 나는 정말 지친 몸을 끌고 무거운 짐을 옮겨가며 김포공항부터 집까지 지하철로 이동을 했다. 환승역에서도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아이랑 캐리어 2개와 큰 가방을 짊어지고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마치 잡상인의 행색으로 집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데이터도 안 돼서 통신사에 전화해서 무료 데이터를 급하게 사용하고, 택시를 부르는 앱도 없어서 다시 다운로드를 하고, 한국 핸드폰도 안 쓴 지 오래되어서 길가에 서서 갑자기 시골에서 갓 상경한 사람처럼 행동을 했다. 무거운 백팩을 몇 시간째 들고 있는 몸의 목, 어깨, 허리도 얼마 못 버틸 것 같았다.


원래도 몸 여기저기에 구조적으로 디스크가 있었는데, 아이와 함께 그 상황에서 정신과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회사에서 정한 안전을 위한 대피였지만, 당시에 한국도 옆 나라에서 터진 무서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당연히 컸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에 대해 받아들이는 시선은 따가웠고, 오히려 기피하는 분위기라 여러 과정에서 스트레스로 인해 심해진 식도염과 몸 여기저기의 통증, 기력 떨어짐으로 인해서 병원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분위기였다.


식도염 약이라도 탈까 해서 동네 병원에 갔지만, 전산에 나오는 '중국' 정보에 의해서 접수처에서는 대기실이 떠나가라, "중국에서 오셨어요? 얼른 나가주세요."라며 문전박대를 하던 시기였고, "그럼 저는 어떻게 하나요?"라는 질문에는 "보건소로 문의하세요!"라고 대답을 했다. 대기실의 사람들조차 웅성거리며 피하는 시선이라 계속 마음은 불편해져 갔다. 안내받은 대로 보건소에 연락하면, 또 병원에 문의하라고 서로 미루는 상황이 되자, 어쩔 수 없는 코로나 보균자 취급을 받던 나의 몸의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그때 기억나는 한 고마운 의사분이 계셨다. 병원 밖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아픈 나를 보며 조용히 내 옆으로 오셔서, 규정상 받을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식도염약 한 달 분을 처방했으니 이거라도 드시고, 2주 후에 다시 내원해 달라고 하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 몇 번을 굽신거리며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한약 한 재도 지을 수 없던 시기라, 여러 방사통으로 결국 한국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온몸의 통증과 불면으로 인해서 나는 빈맥과 과호흡 증후군이 와서 팔다리가 심하게 떨리고 곧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119에 전화를 했고, 아들은 그런 엄마가 또 걱정이 되어서 친정 부모님한테 전화를 했지만, 아직 코로나가 한국에 상륙하지 않았던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온 사람을 받아들이는 부분에서의 매뉴얼도 없었고, 코로나 테스트를 요청하기 위해, 주변 동네 보건소부터 병원, 질병관리본부까지 전화를 돌렸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119에서 부서를 바꾸어가며, 계속 나는 앵무새처럼, "제가 중국에서 왔는데요."를 시작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고, 나중에는 119에 전화한 지 10분이 다 되어갈 시점에 "질병관리청"의 한 담당자에게 또 연결이 되어, 벽에 대고 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니, 남은 기력이 쇠했고, 점점 심해지는 과호흡과 산소 부족으로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서워서 어린아이 앞에서 팔다리를 떨어가며 통곡을 하고 울었다. 나중에 알게 된 부분은 코로나 테스트기의 개수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 않아서 아무나 해줄 수 없다는 입장임을 알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가족들조차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부모님도 우리가 있는 장소에 먹을 음식들을 잔뜩 박스에 준비해 두셨고, 아빠도 혹시나 집에서 심심할까 봐 리모컨에 노래 채널을 적어놓고 마음 편히 있고 스트레스받지 말라며, 마스크까지 잔뜩 준비해 놓으셨다. 나의 꼼꼼한 성격과 너무 같은 모습에 또 뭉클하고, 마치 첩보원처럼 지하 주차장에 우리가 평소에 좋아하던 떡, 빵, 간편 음식들을 한 짐 준비해 주시고 "박스 갖다 놨다. 가지고 올라가라."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한국행이었다. 학교에서도 온라인 수업 준비 안내가 메일로 왔지만, 준비되지 않은 온라인 수업은 하루 1시간 정도의 미팅에 불과했고, 아들은 그렇게 한국에서 반백수 생활을 하며 한국을 즐겼다. 물론, 우리는 웬만하면 밖에 나가지 않고 집콕 생활을 이어가며 밥만 해 먹고 하루종일 밤늦도록 TV를 보는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계속했다.


Photo by Mollie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면 쇼핑, 영화, 분식, 먹거리, 병원 등 할 일이 참 많은데 우리가 있는 사이에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도 코로나가 증가하는 바람에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2주 뒤에 외출이 가능했을 때는, 한의원과 병원만 몇 군데 가고, 미용실조차 가지 않아서 아들은 점점 장발이 되고, 우리가 베이징으로 돌아갈 때쯤에는 앞머리를 분수로 묶을 지경이 되었다. 동네 마트만 다니면서 밥만 해 먹고, 한국의 돈이 떨어질 때쯤 중국의 통장에서 생활비를 빼러 은행 한 번 방문하고, 사람들이 덜 한 저녁에 장을 보곤 했는데, 여행 캐리어를 가지고 가서 거기에 장을 본 후 아이랑 들고 오기도 했다. 회사 측에서도 한번 집에 방문을 해서 코로나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주고 가셨다.

Photo by Mollie

하지만, 이 시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금방 끝날 것 같은 코로나가 길어지고, 우리도 언제 베이징으로 돌아갈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계속 한국에 이렇게 남아있는 생활이 쉽지 않았다.


대문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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