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임 불편하지 않은데?
'모임'이라는 단어는 나와 상당히 거리가 먼 단어였다.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에서 소소한 몇몇 친구들과의 친분 모임을 제외하고는 같은 반, 같은 학교, 동네 엄마라는 이유로 살짝 가면을 쓰고 나가서 정보를 얻거나 공유하는 분위기의 소위 '엄마들 모임'은 참으로 힘들 때가 많았다. 나는 옳고 그름이 명확한 편이고, 늘 어떤 선택이든 생각이 서면 직진을 하고, 아니다 싶으면 내 기준에서 멈추는 삶을 살아왔다. 아이를 키움에 있어서도 엄마로서의 삶을 살면서 '나의 선택'을 '남의 의견'을 들어서 참고한다거나, 주변의 영향에 쉽게 흔들리기보다는 조금 더 돌아가더라도, 또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족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나의 방식'대로 단순하게 지내왔다.
한국에서도 반모임에 참여하고, 주변 엄마들과 하나 둘 친해지며 생기게 되는 엄마들 모임에서도 자신의 입장이 바뀌면 언제든지 끝이 날 수 있다는 걸 경험한 후로는 더욱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졌고, 남에게 의지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중국에 주재원 와이프로 온 시점도 그런 내 성향은 커졌음 커졌지, 내가 아는 사람이 없다거나,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나, 혹은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알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으니 이 좁은 해외 바닥에서 나는 더 '주재원 와이프'로서의 영역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한테 좀 벗어나고 싶어서 스스로 한인타운을 떠나서 외로움과 고독을 '독립'이란 이름으로 자처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혼자였을 수 있어도 나는 너무 행복했다. 누구도 나를 채우지 않는 나만 조여짐을 느끼는 보이지 않는 족쇄에서 풀려난 해방감에 젖어 2년을 넘게 내 생활에 푹 빠져서 내 모습대로 살아왔다. 다만 이사오자마자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그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과의 왕래가 많이 없기도 했고, 같은 단지에서 지내려고 했던 친한 외국인 가족은 코로나 발발 동시에 쫓겨나듯 본인 나라로 떠나가는 황당함을 겪기도 했다. 아이 학교버스에도 한국인도 아예 없었고, 중국에서는 코로나 기간 동안 이사를 하고 싶어도 집을 보러 간다는 행위 자체가 금지되었던 시기라 모든 게 내가 이사를 왔던 시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냥 그냥 그렇게 지내다가 작년에 우연히 단지 중고톡에서 거래를 하던 한인들과 한둘 알게 되고, 다 오신 지 오래된 분들이 아니라서 한국사람을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했던 게 시작이었다. 위챗에서 활동하던 이름 역시 한국 이름이 아니기에 중고 물건을 거래하며 연락을 하기 전까지는 그들은 내가 한국 사람들인지 몰랐다. 물건을 구매한다고 한 사람이 한국인인 것 같아서,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라고 인사를 했고, 그녀가 물건을 받으러 우리 집에 왔을 때도, 초면임에도 너무 반가웠고, 우연히 만난 사람치고는 원래 알던 사람처럼 편하고 밝고, 꾸밈이 없는 사람이라 한참을 밖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게 생각이 난다.
다른 분 역시 내 중고 거래의 나름 단골이셨어서 거래만 하다가, 어떻게 다들 알고 계신 사이라서 조촐한 단톡방이 생기게 되었고, 그렇게 지내는 동안 가끔 울리는 단톡방에서는 "여기 가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한 번 가보세요." "다들 잘 지내시죠, 오랜만에 밥 한 번 먹으러 가요." 등 그냥 해외살이를 함에 있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거나 한 번씩 밥을 먹으러 가서 그동안 지낸 이야기보따리들을 풀어놓으며 깔끔하게 만나고 오면 또다시 나의 일상에 푹 빠질 수 있는 부담 없는 모임이었다.
주재원 와이프 초보 시절, 한인타운에서 엄마들을 만날 때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급작스럽게 만나야 했고, 원치 않아도 알아야 했고, 스캐닝을 당하며 버스 정류장에서 관심 없는 남의 아이 비교와 남편 회사 이야기 등 무의미한 이야기도 들어야 했다. 또 가끔 무심결에 내뱉는 상처에도 며칠 가슴앓이하며 불편한 날들이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아이의 학교나 학년에 의해서 필요에 의한 만남이나 강요가 아닌,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알게 된 만남이라 그냥 내 삶의 일부분처럼 젖어들었다. 또 나와 같이 한인타운을 탈출하신 분도 계시고, 대부분 비슷한 성향이다 보니 처음 만나는 분도 편하게 느껴졌다. 딱 이 도시와 같은 분들이었다.
물론, 아이의 학교가 같거나, 학년이 같으면 그 모임 안에서도 조금 더 공감대가 생기는 사람들이 있듯이, 이곳에서 알게 된 한국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모이고 만남을 갖는 당연한 울타리 안에서 누구 하나 뒷말을 하거나 흉을 보거나, 질투를 하거나, 개인사를 캐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역시 아이가 삶의 중심인 엄마들이 아니라, 해외에서 내게 주어진 이 주재원 와이프라는 황금 같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지를 고민하고, 공부, 운동, 학교 서포트 등 자기 관리를 멋지게 해내는 엄마들이었다.
나 역시 그 안에서도 나와 나이가 같은 동갑이라 조금 더 편하고 아이의 학년까지 같아서 개인적인 만남을 갖은 엄마도 있고, 중고 거래를 통해서 나중에 또 알게 된 나를 누구보다 아껴주고 생각해 주는 한없이 마음 따뜻한 한국분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 주재원 와이프의 생활에서 한인타운에서 겪었던 만남만으로도 피로해지고 기가 빨리는 모임이 전부가 아니라, 이런 이상적인 한국 사람들과의 모임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경험하고 참으로 감사했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오지 않았다면, 주재원 와이프로 살다가 귀국하는 순간까지 '주재원 와이프'에서 겪은 온갖 스트레스로 가득 찬 미움 덩어리만 가지고 한국에 돌아갔을 것이다.
다들 기간을 가지고 이곳에 왔고, 내가 제일 먼저 귀국할 듯 보였지만, 갑자기 바뀐 순서로 인해서 하나둘씩 사람들을 떠나보내면서 사람을 얼마나 오래 알았는지에 대한 기간보다, 비록 짧은 순간이라도 서로를 향해서 바라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준다면, 훗날 그 순간을 추억할 때 좋은 기억으로만 남는 것 같다. 그 모임에서는 내가 중간으로 귀국하기도 했고, 그녀들 역시 한국이 다닌 또 다른 곳으로 떠났다. 다들 어디에선가 잘 살다가 언젠가 어디에서라도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어도 얼마 전에 만났던 사람들처럼 편할 것 같다.
문득 생각이 나면 톡으로 안부하는 사이,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전화할 수 있는 사이, 한 번 전화를 하면 주체할 수 없는 수다로 시간 갈 줄 모르는 사이, 좁은 인간관계여도 그냥 이렇게 진하게 남는 그런 사람들이 좋다. 사람들을 많이 안다 해도 다 챙기지 못하는 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집에 머무르는 것처럼 복잡하고 바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끔 찾아와 주고 반겨주는 참새, 까치와 같은 반가운 사람들이 참 좋다. 주재원 와이프 생활을 마무리하며 이런 보물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서 그래도 참 행복했다.
대문 사진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