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llie 몰리 Sep 08. 2024

나는 이 동네의 중고 여왕

외국인들과의 중고 거래 추억들

외국인 단지에서 오래 살면서 사람들이 사는 커뮤니티가 무엇인지, 진정한 '이웃'이라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한인타운을 떠나 혼자만의 생활을 자처하게 나온 내게 유일한 사람들과의 소통 창구였던 중고거래이다. 다소 시골스럽지만 전원적인 곳에 오게 되면서 코로나가 터져서 몇 년을 통제된 생활을 했지만, 그로 인해 기존에도 있었던 단지와 지역의 단톡방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코로나 장기전이 되면서 갑자기 중국을 떠나는 가족들도 많아지면서 물건을 언제까지 팔아야 한다며 정리하는 글들도 많이 올라왔고, 우리 역시 언제 어느 순간에 한국에서 회사의 부름을 다시 받아, 한창 적응 중이던 이곳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했다. 유튜브를 보며 홈베이킹을 시작하고, 원래도 집순이였던 내 모습을 간직한 채, 각종 유명한 살림 유튜브를 보며 영상에 나오는 그릇, 주방 도구 등을 한 때 사재기하듯 사던 시절이 있었다. 뭔가 영상에서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면 내가 그 영상의 주인공처럼, 우리 집도 그 집처럼 예뻐 보이는 착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타오바오에서 영상의 물건을 찾는 건 식은 죽 먹기였고, 한국에서는 어쩌다가 한 번 가는 IKEA를 이곳에서는 제 집 드나들듯 들락거리고, 소파부터 시작해서 침대, 식탁, 주방 제품 등 거의 집안은 IKEA의 쇼룸이 되어갔다. 디자인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가격도 합리적인 제품들이 많았다. 


그곳에서 마음이 뜨게 되면서, 이 모든 물건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많이 채워봤기에 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물건들을 최대한 빨리, 좋은 가격에 파는 게 돈을 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는 IKEA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IKEA였고, 그들의 집의 가구와 호환이 되었으며, 그들 역시 잠시 이곳에 머물다가 가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한 번 물건을 정리해서 올리면 불티나게 연락이 오곤 했다.


팔 물건을 찾고, 예쁘게 사진을 찍고, 가격을 정하고, 편집해서 글을 올리는 건 꽤나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었지만, 이 물건들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고, 나는 소액의 용돈을 받으니 마치 장사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물론 남편은 제값 주고 사서 저렴하게 파는 거에 늘 탐탁지 않아 했지만, 나의 소신은 이미 나의 마음에서 떠난 물건이 집에 있는 것보다 하루빨리 정리를 하는 게 마음 편한 쪽이라 귀를 막고 마음껏 중고 거래를 즐겼다.

© Mollie


단지에서 중고 거래를 하면 보통 집 앞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거나, 문 앞에 두거나, 관리실의 선반에 올려놓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근 후 픽업을 하거나, 강아지 산책을 하며 직접 얼굴을 보고 가져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하나 둘 얼굴을 아는 이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단골이 생기기도 했다.



외국인들과 중고 거래를 하면서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기기도 했다. 누군가 자기 가족의 기호에 맞지 않는 한식 물냉면을 봉지만 오픈했다고 무료 드림 해오면, 그분의 아들과 만나서 받아오기도 하고, 코로나 시절에는 매일 같이 하던 코로나 테스트를 하면서 중고 거래를 하기도 했다. 코로나 테스트 줄에 서 있으면서 서로 위챗을 통해서 인상착의를 이야기하고 물건을 건네면서 그 시절에만 겪을 수 있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물건 상태가 너무 좋다면서, 위챗 수수료를 내가 떼이는 것을 걱정해서 수수료를 포함해서 주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추억 중의 하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받은 '해바라기 꽃다발' 선물이었다. 거실에서 쓰던 러그를 파는데 상태는 깨끗했지만, 내 성격상 쓰던 러그를 그냥 주는 건 뭔가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드라이를 맡겨서 비용을 쓰고 깨끗하게 드라이 클리닝된 러그를 팔게 되었다. 한 외국 여성이 러그를 사러 차를 타고 오는데, 차에서 내리면서 갑자기 내게 활짝 핀 노란 해바라기 꽃다발을 주는 것이었다.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어리둥절하자, 만나서 반갑고, 좋은 물건을 사게 돼서 고맙다고. 내게 주는 선물이라며, 꽃을 건네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기분이 굉장히 좋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만 정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외국 사람들도 정이 있다는 걸 느꼈던 날이다.

© Mollie



처음 해보는 그라지 세일(Grage Sale)도 각 나라의 희귀템과 좋은 물건들을 값싸게 구매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꼭 물건을 구매하지 않아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역시 같다. 계절이 바뀌고, 여름 방학 전이 되면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하려는 집들과 얼른 물건들을 정리하고 자기 나라로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 한 번씩 그라지 세일을 원하는 집들을 모으는 안내가 단톡방에 올라온다. 


나는 중고로 물건을 팔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영혼 없는 상태에서 사용하지 않는 상태 좋은 물건들을 팔고, 그 물건의 대가인 돈을 받는다는 단순한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라지 세일을 경험하며 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 대한 관점과 생각이 많이 바뀌기도 했다. 


우리는 어떠한 물건을 신중히 구매하고, 그 물건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때 물건을 내놓게 된다. 하지만, 그 물건에는 내가 사용했던 나만의, 또 가족의 스토리들이 담겨있다. 그라지 세일에서 느꼈던 점은 워낙 말하기 좋아하고 스몰 토크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은, 물건을 내놓으면서 물건에 대한 히스토리를 방대하게 풀어놓는 편이고 그 물건이 굉장히 소중하고 아끼는 것이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자신의 아이가 입었던 옷을 소개할 때도 아이의 할아버지가 사준 옷인데, 체크를 좋아하는 어른의 취향과 정반대인 아들의 취향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릇 하나를 살 때도 그 그릇을 구매해서 사용할 때도 가끔 그 스토리가 기억이 날 정도이다. 


그라지 세일은 마치 물건만 주고 파는 게 아니라 그들의 추억도 함께 따라오는 느낌이라, 나도 그 물건을 저렴히 사서 좋기도 하지만 더 소중히 다루게 되는 것 같다.

© Mollie


이렇게 몇 년간 그 힘든 중국에서의 코로나 통제 속에서도, 아는 한국인들 하나 없이 용케 잘 살아남았고, 나대로의 삶을 내 방식대로 자유분방하게 누구와도 비교하거나 간섭받지 않고 살아왔던 건, 그래도 이곳 역시 인종과 출신 국가만 다를 뿐, 정 많고 따뜻한 사람 사는 곳에서의 정을 충분히 느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또, 이 중고 거래를 통해서 내게는 잊지못할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의 추억들이 참 많이 기억이 난다.


안녕하세요.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는데요. 책이 마무리될 때까지 요일을 지키기보다 남은 회차를 부지런히 올려서 완성하도록 할게요. 현재 삶의 터전이 완전히 바뀌고, 말도 안 되는 스케줄로 살다 보니 글을 쓸 여력이 없었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Mollie 드림-


대문 출처 : Unsplash

이전 24화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퇴근 후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