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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lie 몰리 Aug 02. 2024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퇴근 후 일상

저보고 축구를 같이 하자고요?

해외생활을 하며 다양한 환경의 사람을 만나고 일상을 살다 보면 한국에서 겪지 못한 에피소드들을 겪게 된다. 그 일들을 통해서 몰랐던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새로운 인생의 모습들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주재원 가족으로 한인타운을 떠나 외국인 마을에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의 문화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다. 아이 역시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접하며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체험하기도 했다.


나의 하루 일과는 늘 똑같았다. 아이가 중심이었던 똑같은 하루하루로, 아이가 집에 오는 시간이 되면 보통 4-5시 전후였고, 아이의 스케줄에 맞추어 나의 시계도 돌아갔다. 아이가 커서 특별히 챙겨주는 건 없지만, 그래도 아이가 집에 있으면 말이라도 더 걸게 되고, 과일이라도 챙겨주고, 저녁을 준비하다 보면 오후의 남은 일상은 내 것이 아닌 게 된다.


저녁 7시 반이 넘으면 남편이 오고, 또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주방 정리를 하고 나면 10시에 일찍 꿈나라에 잠드는 우리 가족들은 각자 할 일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는 산더미 같은 빨래를 개고, 또 다음 날 아침 메뉴를 고민하기도 하고, 누워서 의미 없는 유튜브를 습관적으로 보며 무료하고 별거 없는 저녁을 보내다가 잠이 들곤 했다.


평일에 축구 함께 할래요?

4월의 어느 날, 아들의 친구이자 학교 선생님인 아빠에게 위챗이 왔다. 아들들의 놀이 약속을 위한 연락을 했기에, 메시지를 보는 순간 당연히 아들한테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축구를 함께 하자는 이야기였기에 당연히.

"혼합 / 소셜 축구 경기를 할래요?"

축구 경기 시간과 필드 오픈 시간이 안내되었고, 의사를 묻는 메시지였다. 아들은 함께 축구를 하고 싶어 했으나, 학교 일정으로 불가능하다고 답변을 하는데, 그의 답변은 나를 새삼 놀라게 하게 만들었다. 이런 질문은 늘 아이를 향한 것이었고, 평생을 살며 내게 축구를 하자는 성인은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괜찮아. 나는 너보고 하자는 의미였는데."

"나? 나요? 난 운동 신경이..."

당황했다. 40분 걸어도 지치는데 축구라니, 나보고 축구를 하자고? 그것도 평일 저녁에? 어딜 봐도 축구는커녕, 운동이라고는 전혀 안 하게 생긴 조그마한 동양 아줌마다. 그런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사실도 신기했지만, 그들의 문화와 사고가 더 생소했다.

Screenshot by Mollie's phone

빙빙 돌려가며 거절을 했는데, 이미 그는 나를 그룹게 추가했다.

"그룹에 추가할게. 다른 학부모들도 환영해. 친구들 데리고 와요."

그렇게 나는 소셜 혼합 축구 그룹에 추가되었고, 멤버들을 보니 흥미로웠다. 학교의 아는 선생님들도 많이 있고, 중고 거래하며 보던 외국인들, 그리고 교장 선생님 등 직책, 나이, 성별에 상관없는 동네 축구 모임이었다. 아이가 여럿이고, 심지어 어린 엄마들도 톡에 추가되어 있었다.

Screenshot by Mollie's phone


계속 거절하기도 뭐 하고, 이 신기한 모임이 궁금하기도 했다. 당시에 나는 체력이 저하된 상태로 조금만 오래 걸어도 심장이 급발진하는 기가 다 빠진 상태였다. 정말 허걱이었다. 난생처음 겪는 일, 처음 느끼는 감정에 남편이랑 아이한테 오두방정을 떨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요새 컨디션 좀 올라오려고 하는데 도전을 해봐야 할지 흥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축구라는 스포츠에 무지했고, 몇 명이 경기를 하는지, 또 규칙 조자 '골'을 제외하고는 알지 못했다. 그룹 멤버들도 거의 외국인들이라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런 기회에 껴서 해보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내가 집순이인지, 스몰 i 성향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그가 나를 초대했기에 모른척하고 해보고 싶기도 했다. 또 보통 가족들을 위해, 특히 아이를 위해 사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주부에서 벗어나서 '나'로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귀찮아하는 아이를 불러내서 엄마가 축구를 해야 하니 용어와 포지션 좀 알려달라고 했고, 아이는 코웃음을 치며 엄마 왜 그러냐고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만류하는 아들을 꼬드겨서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By Mollie's son

아이 자신도 FIFA만 하지, 직접 뛰는 축구는 즐기지 않았을 때라, 자기처럼 디펜더 수비를 하라고 알려주고, 엄마는 어차피 벤치에 있을 수도 있다며 안심을 시켜주는 건지 무시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동네의 한국 엄마들한테도 톡을 공유하며 참가 여부를 물어보니 나의 예상대로 저녁 시간이고, 폐활량이 적고, 뛸 자신이 없고, 아이들을 챙겨야 해서 그 시간은 무리라는 답변들이 돌아왔다. 혼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중국살이 해외살이를 하는데 이런 경험이 어딨 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들의 체력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동네에서 산책이나 조깅을 하다 보면 근육질의 여성들이 많이 뛰어다녔고, 쭉쭉 뻗은 긴 다리로 나의 두 걸음을 한 번에 내딛기도 했다. 이런 체력과 근력은 기본 체력과 근력이 상당하고, 조금만 뛰어도 심박수가 올라서 멈추는 나와 달리, 같은 속도로 꽤 오랜 거리를 뛰는 사람들을 보며 남편과 늘 감탄을 했었다. 체력이 부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번 시작하면 중도 하차 없이 계속해야 팀에 민폐가 되지 않을 듯한데, 당시에 나는 두드러기가 상당히 진행되던 시기라서, 땀이 나면 빨개지고 옷과 접촉되는 부분들에 발진들이 올라오는 시기였다. 또, 그들의 문화에 온전히 끼지 못하고 말도 못 알아들을 거라는 예상에, 혼자라도 참가한다고 해놓고 뒤늦게 별걱정이 다 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게 내 몸이 아직 그걸 따라갈 몸이 아니라고, 축구가 얼마나 힘들고 부상도 많은 줄 아냐며, 계속 뛰는 게 보통이 아니라고, 괜히 다치지 말고 체력 좀 더 기르고 하는 게 낫지 않냐며 마음만 앞선 나를 걱정했다.


결과적으로 일단 미루게 되었고, 나도 귀국 준비를 하게 되며 다시 말을 꺼내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중국 뜨기 전에 그 모임에 껴서 축구라도 한 번 뛰고 가는 게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지만 결국 바람으로만 끝이 나고야 말았다. 그래도 이 일을 통해서 잠시나마 늘 똑같이 집안일만 하다가 끝이 나버리는 나의 저녁 시간에, 나를 위한 시간을 상상하고, 남녀 차별, 직업이나 직책의 구분 없이 스포츠로 하나 되어 땀 흘리고 운동하며 평일 늦은 저녁에 다 같이 모여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보며, '그래 이게 삶이고 행복이지. 나를 위해 사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라고 느끼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아이의 삶에 크게 집착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서 선택하는 삶, 그로 인한 행복감이 그대로 다시 가족에게 전달되어 긍정 에너지로 발산되는 것 같다. 내가 행복하고, 원하는 에너지를 발산하니 각자의 적당한 거리에서 간강 한 삶을 사는 듯하다. 해외살이는 이래서 재미있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대문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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