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험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아픔과 슬픔이 다가왔을 때, 아픔을 그 모양 그대로 극복하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가 결국 선택한 방법은 아픔을 잊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주재원 기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또 다른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갈 수 있는 짧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원래 처음부터 가고 싶었던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고, 한 번 인종차별로 인한 당한 아이는 예전보다 많이 단단해져 있었고, 그로 인해 더욱더 친구 관계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외동의 특성인지 아이의 성향인지, 아니면 이사를 자주 다녔던 환경 탓인지 아이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것에 그다지 예민한 편은 아니었다. 자신이 혼자 있어도 그걸 특별히 불편하게 여기 지도 않았고, 편해 보이는 친구들한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다가갔다. 다행히도 독립적이고 자기 할 일은 스스로 하고, 선생님한테도 인정받고 싶은 아이는 새로운 학교에서 좋아하는 과목은 더욱 관심을 갖고 파헤쳤고, 상담 시에 선생님께 듣는 말들은 전학한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스펀지처럼 흡수해 나가는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친구 관계에서도 엄청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은 자신이 도와주기도 하고, 나름 또 조용한 친구들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스포츠 활동 및 수업에서 마주치는 친구들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학교는 아이들의 개개인의 특성을 선생님이 굉장히 잘 파악했고, 아이처럼 내향적이지만 열심히 하고자 하는 친구들을 굉장히 잘 이끌어주셨다. 새 학교를 접하면서 '조금만 더 일찍 이곳에 왔더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이 또한 우리가 아픔을 겪고 성숙해졌기에 느낄 수 있는 귀한 선물로 느껴졌기에 더 간절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학교마다 분위기는 학교 자체가 주는 커리큘럼과 선생님들의 태도와 마인드, 교육 철학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에서 많이 보이는데, 이곳의 아이들은 아이가 느끼기에 외국 친구들도 환경에 비해 많이 순수한 친구들이 많고, 결이 맞는 한국 친구들도 꽤 있었다. 물론 이곳 역시 한국 친구들은 한국 친구들끼리 모이는 모습이 많고, 각자의 인종별로 모이긴 했지만, 아이는 주변 신경을 그다지 쓰지 않아서 두루두루 잘 지내고 인종에 상관없이 주로 수업에서 자주 만나는 친구들과 교류를 했다. 한 살 두 살 아이들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선을 넘는 아이들이나 악한 친구들이 많이 없어서 나 또한 굉장히 흡족했고, 아이는 점점 더 학교 생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아이의 숨어있는 능력을 겉으로 인정해 주는 모습이 늘어나니, 아이는 점점 자존감을 회복하고, 말 그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천천히 본격적인 자신의 인생 탐험을 시작했다.
평상시에 탐험과 모험에 대한 동경이 있던 아들은, 한국인이 한 명도 없던 보이스카우트에 들어가서 주말마다 베이징 곳곳을 누비며 캠핑을 하고, 혼자 텐트 치는 법부터 생존을 위한 여러 고비를 넘기며 독립적인 남자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보이스카우트에서는 그 누구도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으면 나서서 먼저 도와주지 않는 듯했다. 출발하기 전에도 30분 일찍 도착해서 창고의 모든 짐들을 버스에 싣는 것부터 캠핑이 시작된다.
첫 캠핑 때 2박 3일 동안 무거운 배낭을 메고 떠나는 아들이 걱정되어서 Scout master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해 먹나요? 배고플 텐데요. 텐트는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어요."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스카우트의 목적이에요. 배가 고프면 굶겠죠. 굶으면 배가 고플 테고, 그러면 요리를 하겠죠? 텐트도 마찬가지예요."
간간히 올라오는 사진을 보며 애간장이 타던 나는 점점 스카우트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몇 달 내내 아이의 1인 텐트는 저 안에서 사람이 잘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쪼그라져있었고, 그게 불편하지 않은 아이는 그냥 쭈글하고 낮은 텐트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챙겨갔던 백팩 역시 점점 불필요한 짐은 챙겨가지 않았고, 영하의 추위에서도 목과 발, 등에 핫팩을 붙여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방법도 배우고, 자신의 핫팩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너무 추운 날은 친구들이 텐트 근처의 아들 가방에서 "나 핫팩 좀 꺼내갈게."라고 얘기하며 핫팩을 가져가기도 했다. 매 끼니마다 패트롤 그룹마다 돌아가며 요리를 하며 팬케이크, 햄버거, 마카로니 등 나름의 음식을 해 먹고 단체 생활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첫 캠핑 때는 "엄마, 배고파." 이러면서 전화가 오기도 했고, 위챗 페이가 되지 않아서 배가 고픈데 간식을 사 먹지 못해도 "돈 빌려달라."는 소리를 못해서 참고 오기도 했다. 3일 만에 만난 아들은 얼굴 살이 쏙 빠져 있었지만 그런 경험도 다 삶의 밑거름이 되는 듯 보였다. 또, 아동단체를 돕기 위한 모금 마련을 위해서 물건을 파는 활동도 해보고, 본인들보다 어린 친구들인 컵스카우트 친구들을 통솔하고, 함께 트립도 가고, 정말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남자 친구들끼리 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며 담요를 나눠서 덮고 찍은 셀카는 지금 봐도 훈훈하다. 아이가 활동을 너무 재미있게 다니자, 친한 친구 한 명도 중간에 입단하여 활동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여러 훈련들을 통해서 merit badge를 받으며 목표 의식을 키우고 이제 집 나가도 며칠 동안은 스스로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는 patrol leader를 뽑는데 손을 들어서 리더 활동을 하기도 하는 등 내향적인 아이의 모습에서 전혀 볼 수 없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토록 내가 키우고 싶던 독립적인 아이의 모습을 이곳에서 배울 수 있었다.
이외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디베이트 클럽을 통해서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도 만나서 경험도 공유하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전 학교에서는 하지 않았던 새로운 활동들에 푹 빠져서 국제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공부 이외의 값진 시간들로 꽉 찬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본인이 경험한 좋아하는 활동들은 자신의 미래나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분야로 연결되기도 했고, 점점 그 분야를 파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대신 내가 너무 간섭을 안 하자, 가끔은 엄마가 자신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등의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아이는 달라졌다. 실패를 통해서 아이는 더 많은 것을 얻고 경험하고, 그 변화를 지켜보며 지지해 주기 위해 우리도 노력하며 이제는 실패는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가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오히려 우리 가족의 인생의 전환점을 준 사건이 되기도 했다. 친구를 존중하는 인성이 바르고 배려할 줄 아는 참된 친구들을 만나서 마지막 국제학교 생활을 뿌듯하게 마무리하며, 더 이상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나 활동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찾고, 탐구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싫어하는 것도 참고해야 하는 것을 느끼고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교육이 필요 없었고, 사교육을 하지 않으니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모습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나를 지키고, 남을 돕고, 생존하고,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길러준 나까지 추억돋는 아들의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