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도, 중국어도 능통한 조선족
중국에 처음 발을 내디딘 날,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후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조선족이었다. 회사를 통해서 연결된 부동산 직원이자, 우리를 공항으로 픽업 나왔고, 그렇게 처음 조선족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특정 지역에 모여 살고 있는 조선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들은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접할 기회는 없어서 상상 속의 외국인이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한국말을 누구보다 잘 구사하지만, 조선족 특유의 억양이 있다. 이는 TV에서 보던 북한말과는 또 다른 한국어의 억양이었다. 개그 프로에서 연변 지역의 말투를 흉내 내던, 바로 그 말투다. 그들은 또 중국어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 왜냐하면 현재 조선족은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거쳐 한국인의 문화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중국인이 되었지만, 현재 그들은 중국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한족을 비롯한 55개의 소수민족 중의 한 민족인 조선족, 朝鲜族 [Cháoxiānzú] (차오신주)이 되었다.
베이징의 China Ethic Museum(소수민족 문화원)에 방문했을 때 봤던 '조선족' 전시관의 문화는 마치 벼농사를 짓고, 송편을 먹는 등 한국 문화와도 흡사한 음식, 주거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신기하기도 하다. 한국인이지만 중국어를 전혀 못해서 실제 중국 생활에서 애환이 많은 우리와, 반면 한국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구사하기에 우리 같은 한국인들을 도울 수 있는 사업 쪽으로 많이 발달되어 있는 조선족들의 비니지스를 볼 수도 있다. 현지에서 한인마트, 반찬 가게, 식당, 특히 부동산 업계에서 처음 중국을 방문하는 주재원들의 대부분은 1차적으로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큰 부동산에서 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언어의 불편함과 문화의 차이로 집을 구하는 어려움을 도와주는 이점도 있고, 생활하면서 불편한 모든 문제점들은 부동산을 통해서 해결하는 주변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집을 계약한 이후 생길 수 있는 하자 보수, 불편함, 전기 및 가스 충전과 같은 AS를 서비스를 해주기도 하지만, 공짜는 없듯이 그 비용은 집가격에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 이 또한 사업이고, 서로 윈윈 하는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한다.
중국어 수업을 들었을 때도 한족 선생님은 소수 민족에 대한 수업을 할 때, 조선족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느낌은 워낙 한족에 대한 파워가 막강해서인지 너무 많은 소수민족의 일부분이라 잘 모르는 듯했고, 실제로 여러 한국 주재원 회사에도 한국말이 가능한 한족들도 많지만, 한국과 중국을 이어주는 매개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조선족 직원들도 정말 많다.
앞서 말한, 부동산 업계에서 서비스 비용이라며 마치 무료로 모든 필요한 서비스를 진행해 주는 듯보이지만, 실제로는 집가격에 그 비용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중국 현지 부동산과 계약을 하면서 알게 된 적이 있다. 한인타운을 떠나고자, 중국 현지인과 집을 구한다고 했을 때, 본인도 내가 가고 싶은 지역의 집을 보여준다면서 계속 금액 가지고 딜을 할 때 나는 좀 불편했다. 딜을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냥 순수한 집렌트 가격으로만 계약을 하고 싶었다. 중국 현지 부동산에서는 AS는 집주인이 해줘야 할 부분과 관리소에서 해야 할 부분으로 나누기에 부동산에서는 위챗을 통한 언어적 소통만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중국 현지 부동산과 한 집을 보고 있던 중, 조선족 부동산 담당자가 전화가 왔고, 집을 찾았다며 자신이 집주인에게 엄청 딜을 잘해놔서 가격을 내렸다며 그 집을 볼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집호수를 보니, 이미 나는 그 집에 있었고, 같은 집이었다. 집의 가격을 묻자, 내가 현재 알고 있는 집가격보다 한 달 월세가 2,000 rmb(약 38만 원)이 더 높았다. 그때 알게 되었다. '아, 내가 받던 서비스 비용은 무료가 아니라 집가격에 포함되어 있었구나.'
물론, 초기 정착 시절에 큰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크고 작게 이런 일을 겪다 보면 괜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점점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장점이 관계의 역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한국인이 해외에서도 가장 피해야 할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 잘 알기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렌터카를 빌릴 때도 조선족의 업체를 이용해 봤는데, 베이징의 시내를 지나갈 때마다 이 건물은 어떻고, 언제 지어졌고, 중국인들이 어떻고 이야기를 하는데, 중국인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모습을 보며, 한국말을 하는 중국인의 모습이 신기하고 낯설기도 했다. 또, 중국살이가 아니었으면 겪지 않았을 생소한 경험이기도 했다.
조선족이어서가 아니라, 이 또한 사람의 성향 따라서 천차만별인 것 같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도 분명 존재하지만, 내가 코로나로 단지가 통제되어 한국 마트에서 배송이 막힐 것을 예상한 조선족 마트 사장님은 밤늦은 시간까지 옆 가게에서 내가 필요했던 미역과 당면을 직접 사서 자신의 물건에 껴서 보내주시기도 하고, 늘 친절과 믿음직스러운 분이셨다.
남편 역시 회사에서 알게 된 친한 조선족 직원은 늘 싹싹하고, 밝고, 머리고 계산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서 인간관계를 하는 고마운 조선족들도 있다. 이들 역시 가족들은 한국에 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또, 기본적으로 중국인의 습성이 개인적인 경우가 많아서, 내 할 일이 아니면 크게 관심이 없지만, 한국인의 '정'이 조금 녹아있는 이런 사람들은 일반 중국인들과는 또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중국을 떠나니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지만, 중국에서 한국인이 생존하기에 쉬운 가장 첫 관문인 것 같기도 하다. 중국에서 한국말을 하고, 한국의 문화를 가진,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도 초기 생존에서는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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