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마지막 겨울, 눈에 가득 담은 날

계절과 음식이 주는 추억

by Mollie 몰리

겨울 하면 나는 '코코아'가 떠오른다. 코코아의 향을 맡으면, 내가 어릴 적에, 엄마가 미키 마우스 가방 안의 작은 보온병에 코코아를 타서 담아주었던,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 계절, 그 음식이 주는 추억은 기억 속 어딘가에 있다가 다시 그 순간을 마주했을 때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 예전의 추억을 고스란히 꺼내주곤 한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겨울, 아이와의 소소한 하루를 보냈다.


폭설 경보였지만, 눈이 내려서 마지막 겨울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아이도 마침 온라인 수업이라, 수업 마치고 단지를 한 바퀴 돌러 나갔다. 정말 그냥 산책하러 나갔다.


밖에 나간 아들은 서둘러 들어오더니, 눈사람을 만들어야겠다고 야무진 포부를 밝히며 장갑을 들고 다시 나갔다. 설마 눈사람을 만들겠어? 역시나 성격 급한 아들은 눈이 안 뭉쳐진다고 투덜거리더니, 눈을 밟는 느낌이 너무 좋다며, 눈 속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Photo by Mollie

그에 반해, 만사 귀찮은 40대 엄마는 그냥 앉아서 따뜻한 커피나 코코아에 내리는 눈발이나 보고 싶다. 엄마는 옆에서 아이가 놀자고 눈을 흩뿌리는데 귀찮다고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 엄마는 재미없어! 지금 춥고 싫어도 추억이야!

아차,,, 잊고 있었다, 아들과의 마지막 중국 겨울이라는 걸. 또, 아들이 그나마 아직까지는 내 옆에서 눈을 흩뿌려주며 해맑은 미소를 날리고 있다는 걸.


엄마가 반응이 없자, 그냥 혼자 열심히 눈에 파묻히고, 운동화는 이미 거의 젖은 상태고, 큰 눈덩이를 나무에 던지고, 미끄럼틀 위에도 올라가고, 순간 아이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10여 년 전, 나는 지금 아이와 똑같은 이런 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 그 아이는 나보다 키가 훌쩍 더 커버렸지만, 아직 아이는 마음만은 그때 그 어린 아이랑 비슷했다.


하얗고 이 맑은 눈은, 마치 사람의 마음까지 정화시켜 주나 보다. 아들의 마음이 갑자기 유년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이 눈이 아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었나 보다.



아들과 산책을 하다가 중국 아이들 혹은 외국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보던, 동그란 눈사람들과는 다른 귀여운 눈사람들이다. 눈사람이 동물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정말 코에 당근을 꽂고 있다. 각자의 캐릭터의 모습이 멋있어서, 사진을 더 찍어서 간직하고 싶었는데, 너무 추운 날씨에 핸드폰의 배터리가 20프로 남았다가 갑자기 방전돼서 꺼지고, 켜면 또 9%로 줄어들어있고, 다 찍지 못하고 들어왔다. 마치 동네 눈사람 콘테스트라도 열리는 분위기다.

Photo by Mollie



오늘이 가기 전에, 나도 다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서, 아이의 훗날 추억을 위해서 컵에 따뜻한 코코아를 타고 한 잔씩 마시면서 우아하게 저녁 가로등 아래 눈을 밟으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중학생 아들은, 틈만 나면 엄마를 어떻게든 괴롭히고 싶다. 눈에 젖어 소리 지르며 도망 다니는 그 모습이 보고 싶나 보다.

Photo by Mollie

마지막 중국 생활, 마지막 겨울, 다시는 보지 못할 이곳, 돌아오지 않을 오늘 이 순간, 이 겨울을 소중하게 잘 마무리하고, 눈에 많이 담고, 기억하고, 추억해야겠다. 있을 때는 행복한 줄 몰랐던 순간도 많았지만, 지나고 나면 그리울 곳. 그래서 그래도 좋았었다.

Photo by Mollie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VPN 없으면 내 핸드폰은 깡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