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김장 독학하다
해외살이 우리 집 식탁에는 반찬으로 김치가 없다. 김치는 금치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내가 얼마나 편안한 주부였는지가 해외살이 하면서 느껴질 때가 많다.
여기는 중국, 아시아권이기 때문에 그래도 한인마트도 잘 되어있고, 마트 한 구석에 종갓집, 풀무원, 부자아빠 김치 등 브랜드별, 중량에 따라 살 수 있는 선택폭이 많은 편이다. 샘스클럽(Sam's Club)에서도 풀무원 김치 1.2kg을 26.4 rmb(약 5,000원)에 온라인 배송으로 편하게 구매할 수 있다. 또, 여러 한인 반찬가게에서 갓김치, 파김치, 열무김치, 보쌈무 김치 등 편하게 배달해 먹을 수도 있다.
한국인에게 소울푸드인 김치는 1.2kg 한통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재료만 바꾼 참치 김찌찌개, 돼지고기 김치찌개, 김치찜, 김치 볶음, 김치볶음밥 등 이 작은 김치 한 통은 요리 1-2번이면 바닥이 난다. 갑자기 바닥을 보이는 김치가 부족할 때 한인마트를 갈 수도 없고, 때로는 샘스클럽에 재고가 없어서 몇 주간 김치를 구할 수 없기도 했다.
또 가장 중요한 건, 냉장고! 우리 집 냉장고는 사이즈가 턱없이 작아서, 김치를 보관할 수가 없다. 양문형 부분이 냉장, 아래 서랍칸 2개 냉동이 냉장고의 전부이다. 한국에서 들고 왔던 김치 냉장고가 여기서 사용하다가 고장 나 버리는 바람에 폐기 처분했는데,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김치를 주로 사 먹지만, 때로는 너무 같은 맛에 물리기도 하고, 반찬가게의 진한 양념이 입맛에 안 맞아서 버릴 때도 있다. 가끔 시킨 반찬이나 김치에서 이상한 물질이 발견되기도 한다. 나 편하자고 시켜 먹은 거니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난생처음 김장에 도전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해외살이에는 자급자족과 도전정신은 필수이다. 한국에서 엄마가 김장할 때 도와주지도 않고, 관심도 안 줬던 과거를 반성하며 김장을 위한 책을 주문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레시피 말고, 여러가지 김치를 만들 수 있는 초보용 종이책을 Yes24 해외배송으로 주문했다. 책값보다 더 비싼 배송비였지만, 책을 보며 직접 김장을 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간편 레시피 책에 들어간 재료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북어채와 양파, 대파, 국물용 멸치, 다시마 등을 넣은 육수로 김치 양념을 만들었다. 냉장고의 사이즈를 고려했고, 김장이 처음이라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레시피도 배추 1포기용이었다.
난생처음 내 인생 40년 만에, 배추를 씻고, 쪼개는데, 이렇게 쪼개는 게 맞는 건지, 괜히 한다고 나서서 배추나 버리지 않을지 걱정이었다. 젖은 손으로 책을 하도 넘기고 봐서 책은 이미 물에 젖어서 쪼그라든 상태였고, 결국 소금물을 만들어서, 배추에 절임물을 넣고 하룻밤 절여주었다. 좁은 주방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며 고작 배추 1 포기와 씨름을 했다. 책 레시피의 순서 1개를 보는데 같은 부분을 열 번 넘게 보고,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다.
졸졸졸 흐르는 정수기 물을 받아가며, 그 물로 배추를 2-3회 헹구는데, "그냥 사 먹을걸, 괜히 김장한다고 이게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도 들고, 직접 김장을 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무채도 썰고, 쪽파도 썰고 숙성시킨 양념을 섞어서 김칫소를 드디어 완성하고, 배추에 버무리는데, 뭔가 모를 희열감이 느껴졌다.
김장 통에 쌓인 조촐한 배추 1 포기 분량, 3kg 즉 샘스클럽 15,000원어치의 김장을 낑낑거리며 결국 해냈다. 40년 만에 김장이라고 한 아내의 첫 김치 맛에 맛있다고 해준 남편과 아들 덕에 이제 제법 주부티를 낼 수 있었던 날이다.
그러다가 자신감이 생겨서 레시피의 양을 늘려서 배추 3 포기 분량의 김장도 해보고, 내친김에, 깍두기, 오이김치, 동치미까지 해외살이에서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의 한식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한국이었다면 할 생각도 안 했을 텐데, 해외살이에서는 아쉬우니 아쉬운 대로 살기도 하고, 없으면 내가 나서서 해야 한다.
김치는 금치이다. 그래서 중국에 온 이후로 어느 날부터 우리 집 식탁에서 김치 반찬은 사라졌다. 그래도 해외살이 덕에 혼자 책으로 배운 김장도 해보고, 해외살이는 힘들 때도 많지만, 나 자신을 성장하게 해주는 것 같다.
엄마의 손맛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도 해봤다 김장!! 배추김치 100 포기, 500 포기 등 엄청난 양의 김장을 담근 엄마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