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겨울 장기 출장
올해도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새해가 밝음과 동시에, 오늘 남편은 또 기나긴 머나먼 출장길에 올랐다. 1년 중 나와 아들이 가장 기다리지 않는 시간이자 힘들어하는 시간이 또 찾아왔다. 늘 이맘때가 되면, 이번이 마지막 장기 출장이었으면 하고 바라보지만, 직종을 변경하지 않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이 다시금 와버렸다.
15년 동안 한 회사를 다니면서, 매년 겨울이면 늘 2개월씩 집을 비우고, 한국에 있을 때는 여름에도 1달씩 집을 비우면서, 나는 졸지에 친정과 친구들 사이에서 '팔자 좋은 여자'로 불리었다. 남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실수 중의 하나는, 자신의 생각대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어느 틀에 가두는 것이다. '팔자 좋은 여자'는 듣기 좋다. 재벌집이나 혹은 돈 많은 집에 시집가서 떵떵거리고 산다는 의미의 팔자 좋은 여자가 아니라, 챙겨야 할 남편이 집에 없고, 하루종일 밥밥밥 거리며 쫓아다니는 남편의 부재로 인해서, 밥을 챙기지 않아서 좋다는 이야기이다. 1주일 정도의 단기 출장도 아닌, 1년에 최소 3개월이라는 시간을, 매년 15년째 집을 비우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팔자 좋은 여자가 아니다. 서로 함께 부대끼며 3끼를 할지언정, 서로 울고 웃으며, 또는 화를 표출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삶이 더 고프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이 스케줄로 인해서 , 우리는 남편과 아빠와 늘 겨울이면 헤어짐을 맞아야 했고, 겨울을 제대로 즐긴 적이 없다. 아이가 어렸을 때 새벽에 갑작스러운 아이의 아픈 증상에 혼자 응급실을 전전했고, 독박육아는 나의 당연한 일상이었다. 아빠의 빈자리를 아이한테 채워주기 위해서 나는 몇 배의 에너지를 더 내야 했고, 집에 일이 생기면 거의 다 내 손을 거쳐서 해결을 해야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래도 마음을 나눌 가족과 친구들과 내가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었지만, 중국에 온 이후로는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중국에 산지, 1년 반 되던 시점에 터진 코로나로,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친 일들을 겪고, 마음도 많이 피폐해지고, 지쳐가기 시작했다. 상황으로 생간 불안이, 내 내면의 불안과 합쳐져서 남편이 없는 이 기간에 아들을 데리고 말도 안 통하는 중국 응급상황실에 전화를 해서 응급실에 달려갔던 일, 응급실 가는 택시에서 말도 안 통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또, 작년에는 중국의 코로나 통제로 인해서 베이징으로 돌아오지 못한 남편은 결국 사상 최대 기록인 1년 중 6개월의 시간을 집을 비우기도 했다. 남편으로 인해 온 중국에서 남편이 없었던 시절의 기억은 늘 나에게 그리 좋지 못했다.
결혼 20년 차가 다 되어가는 우리에게, 이제는 너무나도 편한 친구가 되어버림과 동시에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가 되어 버렸고, 진한 사랑 표현 대신에, 오히려 20대의 풋풋한 사랑 표현이 일상 속에 녹아 있었다. 아침마다 주방에서 아침을 차리고 간식 가방을 챙기는 내게, 남편은 늘 우렁찬 기합 소리로 인사를 하며, 자기가 나왔음을 알리고, 남편은 늘 나에 대한 관심을 장난으로 표현을 하면 나는 질색을 하고 입을 막는 둥,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믿음과 서로 늙어가는 처지에서의 애잔함의 감정이 있다.
어제 오후에 점심을 먹고, 가족끼리 마지막 산책을 했다. 늘 가던 길의 반대쪽으로 좀 더 색다른 길을 찾아서 걷는데, 또 코끝이 찡하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나와 아들만이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또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천진난만한 남편은 물가 근처의 땅에서 쉬고 있는 청둥오리 가족들을 향해 "저기 오리 알이 있을 것 같아!"라며 뛰어가고, 아들도 얼른 그 뒤를 따라간다. 나도 뒤따라 가다가 늪지대 같은 곳에 발이 빠지기도 하고, 물에 젖고 더러워진 운동화를 보며, 그래도 이 평화로운 하루를 같이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들과 남편은 부러진 나무 막대기를 찾아 얼음을 깨기도 하고, 더러워진 운동화를 눈길에 닦기도 하며, 코 끝에 콧물이 흐르는 줄도 모르는 추위에서 소소하지만 소중한 하루를 함께 했다.
짐 싸기 베테랑 남편은 이미 혼자서 짐을 싼 지가 오래되었다. 센스 없는 내가 챙긴 짐을 슬쩍 빼는 걸 보고, 본인 짐은 본인이 싸게 되었고, 어제 하루 만에 2달치의 짐을 쌌다. 최근에 감기에 호되게 걸렸던 지라, 마지막 하나 남은 한국 처방약, 비타민, 내 마사지공까지 알뜰살뜰하게 챙겨갔다. 이번에는 팀원들과 마지막 출장이라고 영상을 남긴다고 촬영을 할 카메라도 가지고 가고, 무뚝뚝함 속에 녹아있는 따뜻함으로, 내가 남편한테 자주 하는 말은 "참 좋은 사람 같지는 않은데 좋은 사람이다."이다.
코로나가 풀린 이후에는 다행히 춘절에 일주일 정도 돌아왔다가 다시 가는 일정이라, 우리는 벌써부터 춘절만은 목 빠지게 기다릴 듯하다. 가는 동안 당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최애 간식 중의 하나인 하리보 젤리를 주머니에 넣은 채 떠났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장기 출장 기간 동안 그도 우리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동안에 아프지 않도록 기본 생활 루틴에 운동도 열심히 해서 건강한 삶을 잘 살아가고 있어야지. 춘절 때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