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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인정 욕구

퇴장하는 세대의 조용한 갈망

by 장기혁


50대 중년 남성에게 있어 인정욕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다. 이들은 청년 시절부터 ‘일’로 존재감을 증명해온 세대다. 직장에서의 성과, 직급, 책임감은 곧 사회적 가치였다. 그러나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그 기반은 흔들린다. 더 이상 회의에서 중심이 아니고, 후배들이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시점에서 많은 중년 남성은 묻는다. "나는 여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가?"


실제로 한 대기업 임원 출신 50대 남성은 명예퇴직 후, 자신을 소개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는 말을 남겼다. "회사 없이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더라"는 고백은 인정욕구가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사회 속 존재의 기반이었음을 보여준다. 명함은 단지 직함이 아니라, 그가 세상과 맺고 있던 유일한 접점이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은퇴 이후의 남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생산성을 잃은 남성은 무대 밖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미덕인 양 여겨진다. 한때 회사에서 인정받던 이들은 가정에서는 ‘가부장’이라는 이름으로 거리감을 갖고, 사회에서는 더 이상 젊은 세대가 참고할 ‘롤모델’이 되지 못한다. 그 결과, 이들은 말하지 못하는 공허 속에 머무른다. 자식에게도, 아내에게도, 후배에게도 더 이상 필요한 존재가 아닌 것 같다는 감정은 견디기 어렵다.


이 시기의 인정욕구는 과거보다 더 절실하지만, 발현할 공간은 없다. SNS에서 자식 자랑이나 여행 사진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나는 아직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보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표현조차 ‘꼰대 같다’는 시선에 부딪히기 쉽다. 결국 많은 중년 남성은 침묵하거나, 자기만의 세계로 숨어든다.


이 문제는 단지 개인의 노화나 심리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한 세대의 인정욕구를 구조적으로 무시해온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일 중심의 남성 정체성을 장려했던 사회가, 은퇴 이후엔 그 정체성을 한순간에 폐기한다. ‘남자의 일생은 전쟁’이라 말하며 치열함을 강요하던 사회가, 전쟁이 끝난 병사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지 않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은퇴한 남성은 어디에 기여하고, 어디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이들이 겪는 상실은 인정욕구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두려움이다. 우리는 이들의 경험을 낡은 세대의 푸념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외로움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세대가 같은 고통을 반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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