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눈물이 나고 창피했다
제7 화
직장을 다닌 지 얼마 안 되었는데,
희경아버지는 그 일을 그만두었다.
일이 성에 안 차기도 하였고,
거기서 배운 실력으로 손수 사업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영업도 손수 해야 했다.
특별히 아는 인맥도 없는 데다 경험도 없어서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다.
사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결단을 내린 것이 자꾸 꼬여만 갔다.
세상은 생각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초조하고 불안했다.
녹록지 않은 생활 형편이 더욱 가슴을 옥죄어왔다.
일정한 수입이 없다 보니 가정 형편이 좋을 리 만무였다.
수입이라 해봐야 희숙이 타오는 월급이 다였다.
그 월급도 적어서 가족들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희경어머니는 근심이 가득하였다.
이마에 주름살이 펴질 날이 없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희경의 육성회비가 세 달이나 밀렸다.
담임선생님이 희경을 부르더니 교실 뒤에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으라 하였다.
벌을 세운 것이다.
희경은 손들고 있는 내내 팔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다리도 아프고 저려왔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더니 급기야 교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희경은 "언제까지 낼 거냐?" 묻는 말에도 언제까지 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어 대답을 못하였다.
대답 대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수업이 거의 다 끝날 무렵에야 벌을 면할 수 있었다.
희경은 풀이 죽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말을 걸어오는 아이도 없었다.
아이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하였다.
희경은 살면서 한 번도 가난을 부끄럽고 창피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희경은 마음이 아팠다.
서러웠다.
학교에 있는 내내 말없이 조용히 기죽어 앉아있었다.
아이들이 힐끔거렸다.
희경은 집에 가서 벌을 섰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육성회비를 언제 줄 건지 묻지도 않았다.
그냥 말없이 생각만 골똘히 하였다.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고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며칠이 지나고,
언니희숙이 월급을 타왔다.
희경아버지는 제일 먼저 희경의 육성회비를 챙겨주었다.
잃어버리지 않게 책가방에 잘 넣어가라는 말과 함께.
희경은 순간 울컥하였다.
가까스로 눈물을 삼켰다.
육성회비를 내자 스탬프 도장을 찍어주었다.
희경은 몇 번씩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다.
육성회비 봉투를 책가방에 잘 넣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움츠렸던 어깨도 펼 수 있게 되었다.
희경은 거의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그렇지만 부끄럽거나 창피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벌을 섰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왜 벌을 서야 했는지 납득이 안되었다.
어린 마음이라 그랬을까?
가난이 자랑도 아니지만 죄도 아닌데,
꼭 그렇게 벌을 세워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또 한편으론,
'육성회비를 못 냈으니 죄가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 가지 생각이 뇌리에서 계속 오락가락 떠날 줄을 몰랐다.
희경은 태어날 때 빼고는 울어본 적이 없었다.
특히 남들 앞에서 더더욱 울지 않았다.
처음으로 가난 때문에 슬픈 생각이 들었다.
난생처음 부자와 가난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무능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인 줄만 알았다.
무지였을까?
아니면 바보였을까?
희경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기준이 되는 그 잣대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전혀 몰랐다.
그냥 사는 게 사는 거였다.
집안 살림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쌀을 한 됫박씩 사다 먹을 정도로 근근이 생활하였다.
희경아버지의 근심도 늘어만 갔다.
사업을 너무 쉽게 생각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시름에 잠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졸라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한숨소리에 땅이 꺼질 것만 같았다.
사는 게 지옥 같았다.
어머니는 밀이 담겨있던 빈병을 손에 들고 한참 넋이 나간 채로 바라보았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자식들을 굶겨야 하는 상황에 가슴이 미어졌다.
반사적으로 동네 쌀집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눈에 불이 켜졌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단 생각에 용기를 냈다.
자식들을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아쉬운 소릴 하고 외상으로 쌀과 보리쌀을 사 오셨다.
아버지는 가시방석 같았다.
자신의 섣부른 속단으로 인해 가족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있자니 몹시 괴로웠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한다.
*다음 화에 게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