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는데
제10 화
희경은 학교에서 돌아와 집안일을 했다.
어머니가 장사하러 간 사이에 해 놓으려는 것이다.
오늘 처음 장사를 나가신 아버지를 위해서,
밥이 모자라 도시락을 못 싸간 오빠를 위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물조물 반찬을 만들고 밥을 했다.
이젠 제법 맛을 낸다.
희경은 아버지가 생선을 잘 팔고 오시길 간절히 바랐다.
그래야 내일 오빠 도시락을 싸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가는데 아버지는 아직 안 오신다.
'생선을 다 팔았을까?'
'아직 다 못 팔았나?'
희경의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늦은 오후가 되었다.
희경아버지는 아직도 생선을 하나도 못 팔았다.
하루종일 자전거만 끌고 다녔다.
아침 일찍 나왔지만 생선 사라고 한 마디도 외치질 못하였다.
말이 목에 걸려 좀처럼 소리칠 수가 없었다.
계속 침만 삼키었다.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들어 자꾸 움츠러들었다.
해는 점점 넘어가고 있는데 생선은 그대로였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점점 옥죄어왔다.
'소리쳐야 하는데'
'소리쳐야 하는데'
속으로 생각만 하였다.
해가 기울어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가는데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주춤주춤 거리다 간신히 용기를 냈다.
개미만 한 목소리로
"생선 사세요."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는지 생선 사러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다시 용기를 냈다.
간절한 마음으로 있는 힘껏 소리쳤다.
"생선 사세요."
"맛있는 생선 사세요."
그렇게 소리치고 나니 속이 뻥 뚫린 듯 후련했다.
막혔던 체증이 내려간 것 같았다.
조금 자신이 생겼다.
계속해서 몇 번이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궤짝 가득했던 생선이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거짓말처럼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의아하고,
당황스럽고,
너무 기쁜 순간이었다.
희경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까지 있는 힘껏 소리쳤다.
해는 벌써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맥이 탁 풀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마음이 울컥했다.
하루종일 밥도 굶고 전전긍긍 거리를 헤매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좀 더 일찍 용기를 낼 걸 후회스러움이 밀려왔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 결국 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주저함은 있었지만 처음 하는 장사 치고는 성공적이었다.
순간
가족들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기운이 쭉 빠졌다.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희경어머니와 희경이는 문밖을 서성거렸다.
올 시간이 지났는데 오지 않는 남편이 걱정되었다.
목을 길게 빼고 자꾸 바라보았다.
희끄무레 저 멀리 누군가 오고 있었다.
힘없이 자전거를 끌고 오는 모습이 희경아버지가 맞았다.
희경의 가족에겐 여느 때 보다도 오늘이 길고 긴 하루였다.
어머니와 희경이는 서둘러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배가 고팠을 아버지와 오빠영호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아버지도 오빠영호도 쫄쫄 굶은 상태다.
밥상을 마주하고,
모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숟가락 드는 것도 잊은 채 정적이 흘렀다.
너무 배가 고파 지쳐서일까?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지 다들 힘겹게 먹고 있다.
생선은 다 팔았지만 남는 것은 별로 없었다.
다행히 내일 먹을 쌀은 살 수가 있었다.
희경아버지는 몹시 힘이 들었는지 밤새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자전거를 탈 줄 몰라 하루종일 끌고 다녀서였다.
영호와 희경은 그런 아버지 모습이 신경 쓰였다.
남매는 늦게까지 숙제를 하였다.
새벽이 되었다.
동이 트려면 아직 먼 시각이다.
동네가 조용했다.
영호는 졸린 눈을 비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을 깨려고 세수를 하였다.
그리고 곧장 어두운 새벽길을 걸어서 신문사로 갔다.
신문사엔 벌써 다른 사람들이 배달할 신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영호는 배달할 신문을 받자마자 옆구리에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신문 배달을 하려는 것이다.
집들이 즐비한 골목 사이사이 다니면서 배달을 하였다.
계속 달리다 보니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신문을 다 돌리고 나니 서서히 동이 트고 날이 밝았다.
영호의 얼굴과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젖어 있었다.
그래도 뭔가 해냈다는 마음에 기분은 좋았다.
씨~~ 익 웃음이 나왔다.
영호가 집에 왔을 땐,
부모님이 장사할 물건을 떼러 가시고 안 계셨다.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시원하게 물도 마셨다.
희숙은 일하러 가려고 준비가 한창이다.
밥을 대충 먹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집을 나선다.
희경은 잊지 않고 오빠 도시락을 먼저 싸 놓았다.
남매는 아침을 먹었다.
한창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오셨다.
처음보다 물건을 많이 사 오셨다.
어머니도 행상을 나가신다고 한다.
새벽이슬 맞으며 시장을 다녀왔다.
배가 몹시 고팠다.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데 반찬은 별로 없었다.
부모님은 식구들이 먹을 생선 몇 마리를 따로 빼서 손질을 해 놓으셨다.
희경아버지는 사는 동네로,
어머니는 옆동네로 생선 다라를 머리에 이고 장사를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팔기 전에 먼저 가서 팔아야 한다며 일찍부터 서둘러 나갔다.
어머니는 집들이 빼곡한 골목골목을 누비며 계속 소리쳤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고기 사세요."
"고기 사세요."
연거푸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생선을 보더니
"어머! 고기가 아니네?!" 하며 돌아서려고 하였다.
희경어머니는 순간 당황스럽고 속이 탔다.
얼른 말을 꺼냈다.
아침 일찍 떼온 거라 싱싱해서 맛있을 거라고 믿고 사보라고 하였다.
열심히 설득을 하였다.
첫 마수걸이니 한번 믿고 팔아달라 애원하였다.
서울로 이사는 왔지만 아직까지 서울살이에 익숙하지 않아서 생선을 고기라고 하였다.
아주머니는 한참을 망설였다.
희경어머니는 초조하였다.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갔다.
오늘 처음 장사를 나왔다며 믿고 사서 먹어 보라고 재차 설득을 했다.
이윽고 주저주저 망설이던 아주머니가 생선을 팔아주었다.
그것도 식구가 많다며 많이 사 주었다.
그리고 잠시 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고는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아주머니가 봉지 하나를 들고 나왔다.
오징어를 넣고 담근 김장김치인데 맛있을 거라며 가져가 먹어 보라고 하였다.
희경어머니는 꾸벅꾸벅 몇 번씩 인사를 하였다.
"고맙소"
"고맙소. 잘 묵겠오~ 잉"
형색이 초라하고,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사투리를 써서 안 됐던 모양이었다.
희경어머니는 기분이 좋았다.
김치를 가져가 식구들 먹일 생각에 하루의 고단함도 잊었다.
적극적으로 장사를 해서 인지 생각보다 빨리 팔았다.
동네에 시장이 없어서 그런지 더 빨리 팔렸다.
희경은 부모님이 장사를 나가신 동안 바구니 하나 들고 들로 나갔다.
논두렁 밭두렁에 나 있는 냉이며, 돌미나리를 캐러 간 것이다.
학교에서 오는 길에 봐 두었다.
저녁 반찬으로 해 놓으려는 것이다.
냉이와 미나리가 지천에 깔려있었다.
신이 났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금세 바구니 가득 나물로 채워졌다.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식구들이 오기 전에 얼른 가서 맛있게 해 놓으려고 한걸음에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