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 속으로
제2 화
덜컹 거리며 달리는 기차,
바다를 지나고, 산과 들을 지나서 도심 속으로 들어왔다.
희경의 가족들은 놀란 표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별천지라 해도 믿을 만큼 너무도 다른 세상이 점점 더 가까이 눈앞에 다가왔다.
치익~~~ 푹~~~
기차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영등포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삿짐도 없고,
특별한 짐도, 가진 것도 없이 옷 보따리만 갖고 올라왔다.
역 앞에 있는 작은 음식점에 들어갔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함이었다.
메뉴를 애써 고를 필요도 없이 양 많고, 제일 싼 걸로 두 개 주문해서 나눠먹었다.
고픈 배는 채웠는데 갈 곳이 없었다.
딱히 갈 곳을 정하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잠시 망막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가던 길을 멈춰 섰다.
그리고 역 앞 가까이 있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희경의 가족은 새로운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섬에서는 볼 수 없었던 크고 작은 건물들.
낯선 거리의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희경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여관에 남겨둔 채 살 집을 구하러 나가셨다.
희숙과 희경은 왠지 모를 설렘이 가슴 가득 밀려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집을 구하셨다고 하였다.
희경은 싱글벙글 신이 났다.
우리 집이 생겼단다.
어린아이임에도 우리 집이라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새로운 동네는 가운데 길이 길게 나있고, 길 양쪽으로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런 동네였다.
목동.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단칸방이었다.
시골과 달리 집도 많고, 사람들도 많았다.
거리가 북적였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 좋았다.
정감이 느껴지는 그런 동네였다.
아버지로부터 작은아버지가 이 동네에서 이발소를 하신다고 들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기댈 생각은 없으셨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리고 신기했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왔다.
그런데 한 가지 희경에게 무서운 것이 있었다.
화장실이었다.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화장실은 발을 올려놓기도 무서웠다.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사용해야 함은 물론이고 밑이 훤히 보였다.
차곡차곡 탑을 쌓아올 리 듯...... 고드름처럼 그렇게 되었다.
때마침 겨울이라 나무판자 틈새로 바람이 숭숭 들어와 엉덩이가 시렸다.
희경어머니는 모처럼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가족들을 위해 밥을 지으셨다.
고소한 밥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뱃속이 꼬르륵거렸다.
침을 꼴깍 삼켰다.
희경의 나이 여섯 살.
집 뒤에 있는 들판으로 나갔다.
마구마구 달려 다녔다.
신이 났다.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조그마한 개울도 있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들렸다.
희경의 아버지는 일자리를 구하러 나가셨다.
어머니는 행상이라도 해야겠다며 시장에 가셨다.
희숙도 돈을 벌어야겠다며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혼자 남겨진 아이.
그렇지만 슬프거나,
외롭거나,
무섭지 않았다.
집 앞에 나가서 사람들 다니는 모습만 봐도 즐거웠다.
아버지는 자그마한 공장에 취직을 하셨다.
기술을 배울 수도 있다고 하셨다.
언니는 봉제 공장 시다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머리에 일 수 있는 다라를 사 오셨다.
희경어머니는 집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를 갔다.
주인아저씨께 집안 사정을 얘기하였다.
가족들이 일자리를 구했으나 월급을 받아올 때까지 생활을 해야 하기에 한 달에 한 번 갚기로 하고
외상을 허락받았다.
어머니는 평소에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위기를 잘 넘기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인하셨다.
그러나 천생 여자로 곱상하게 생기셨다.
웬만한 사람이면 불평불만할 상황인데도 크게 노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묵묵히 주어진 삶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숙명이었나 보다.
설 명절이 다가왔다.
어머니는 커다란 양은솥에 엿기름 물을 붓고 쌀가루를 넣고 조청을 고았다.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희경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아왔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참기름을 바르셨다.
말랑말랑한 가래떡을 뚝뚝 자르더니 조청과 함께 내놓으셨다.
가족들 얼굴에서 함박꽃이 활짝 피었다.
그렇게 설 명절을 보냈다.
그 순간만큼은 특별한 음식이 없는데도 모두가 즐겁고 행복했다.
얼굴에서 밝은 빛이 환하게 빛났다.
그렇게 조금씩 새로운 세상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