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서 머나먼 이국땅으로
신록의 푸르름으로 가득한 산과 들,
풀벌레 소리가 여름이 왔음을 알렸다.
찌는 듯한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녹음이 우거졌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나무 그늘 평상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감자, 고구마, 옥수수 찐 것을
나눠 먹고 있다.
그 앞을 지나는 희경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들어갔다.
방학이라 특별히 바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집안일을 돕는 시간을 제외하면 자신을 위한, 자신만의 시간을 오롯이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거나 클래식을 자주 들었다.
학교에서 클래식을 듣고 청음 시험도 봐 왔기 때문에 그 영향이 컸다.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맨 처음 들은 곡은 '베토벤 교향곡 No. 5 운명'이었다.
빠바바밤~~~
빠바바밤~~~
도입부의 웅장함부터 희경의 심장을 긴장시켰다.
그 곡을 다 들을 때까지 꼼짝 않고 심취해 있었다.
희경은 가요, 팝송, 민요, 판소리, 찬송가를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하며 즐겨 들었다.
팝송은'ABBA의 댄싱퀸'을 즐겨 들었다.
찬송가 중에는'내게 강 같은 평화'를 좋아하고 자주 불렀다.
가곡 중에는'보리밭'을 자주 불렀다.
물론 그 밖에도 많은 곡을 좋아하고 따라 불렀다.
특별히 장르를 가려듣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덕에 음악은 폭넓게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노래를 듣고 있는 그 순간엔 즐거움과 행복, 기쁨이 충만했다.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났다.
그 순간엔 모든 걱정과 근심이 모두 사라졌다.
희경이 부모님도 가요, 민요, 판소리를 자주 듣고 불렀다.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찡하고 가슴에 전율이 전해왔다.
자식들도 하나 같이 노래를 다 좋아했다.
특히 희숙과 영호의 노래 실력은 놀랄 만큼 좋았다.
목소리도 탁 트여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푹 빠지게 하였다.
간드러지게 잘도 꺾어 불렀다.
희경은 그런 언니와 오빠가 늘 부러웠다.
희경의 목소리는 허스키하여서 묵소리가 맑은 언니, 오빠가 언제나 부러웠다.
형제들 중에 유일하게 희경만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졌다.
그래서 목소리가 맑고 청아한 사람들을 보면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하였다.
옆집에서 부침개를 부치는지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거렸다.
지나가는 트럭에서 소리쳤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가 왔어요.
맛도 좋고 값도 싼 야채가 왔어요.
빨리빨리 나오세요."
그 소리를 들은 희경어머니가 앉아 있다 일어나서 후다닥 트럭 쪽으로 달려갔다.
이것저것을 살피고는 감자 4Kg 한 관을 샀다.
감자를 껍질째 물로 북북 씻어서 찜기에 쪘다.
다 익은 감자는 어찌나 파슬거리는 지 껍질이 쩍쩍 갈라져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집안 가득 진동을 하였다.
모두들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희경어머니는 서둘러 쪄낸 감자를 바구니에 담았다.
감자는 바구니에 한가득이었다.
소금과 설탕을 감자와 같이 내놓았다.
감자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감자를 에워싸고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았다.
너무 뜨거운지 감자를 이쪽저쪽 손을 옮겨가며 껍질을 까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젓가락을
푹 꽂아서 까기 시작했다.
호호 불며 한 입 한 입 베어 물었다.
파슬파슬한 감자는 몇 번 안 씹고도 목구멍으로 스르륵 넘어갔다.
감자는 순식간에 동이 나고 바구니 밑바닥을 드러냈다.
감자를 먹는 내내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다.
희경어머니는 잘 먹는 식구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담장 밖으로 울려 퍼졌다.
비는 더 세게 내려 창문을 두드리며 흘러내렸다.
희숙남편 남규는 어디서 들었는지 해외로 일하러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희숙에게 말을 꺼냈다.
"나도 가면 안 될까?"
희숙은 화들짝 놀랐다.
"뭐라고?"
"거기 가면 돈도 많이 벌고 목돈도 만들 수 있어.
몇 년만 고생하면 우리 형편이 빨리 좋아질 거야."
"아니 군대 제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떨어져 있어야 해?
나랑 민혁이랑 단 둘이 지내야 한다고.
난, 자신 없어."
"잘 생각해 봐. 이번이 우리에겐 기회라고.
힘들다는 건 나도 알아. 나도 힘들 거고.
그렇지만 지금은 형편이 너무 어렵잖아.
빨리 일어서려면 지금이 기회야. 삼 년만 다녀올게 보내줘 부탁해.
나도 편하게 살고 싶고 당신하고 민혁이 하고 떨어지기 싫어.
그렇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잠깐 고생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
잘 생각해 봐 뭐가 좋은지."
"어느 나라로 가는 건데?"
"더운 나라야. 사우디아라비아"
희숙은 탐탁지 않았지만 남규의 말에 조금씩 설득되어 갔다.
희숙은 짧은 순간에도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했다.
어쩌면 남규의 말대로 이번이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너무 늦게 결정을 내리면 기회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갈등하고 고민한 끝에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좋아 갔다 와. 대신에 자주 편지해 줘. 걱정되니까
그런데 혼자만 가는 거야?"
"아니, 꽤 많이 가. 그러니까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희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
잠시 적막이 흘렀다.
희숙은 남규가 3년 동안 군대에 있을 때 많이 외롭고 쓸쓸 하였다.
혼자 불러오는 배를 하고 밤마다 창문에 드리워진 달빛을 바라보고 외로움을 달래며 남규를
그리워했었다.
또 남편도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르며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왔었다.
이제 겨우 행복에 잠겼나 싶었는데 또다시 생이별을 해야 한다니 가슴에 먹먹함이 드리워졌다.
또 3년이라는 세월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막막해졌다.
친정 식구들과 함께 살 때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남편의 자리, 아빠의 자리가 주는 무게감이 가족들과 지내는 것과는 또 다르기 때문에
고심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힘들 과정을 또다시 몇 년 동안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였다.
'내 팔자는 왜 이런 거야?'
혼자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번엔 그야말로 아이와 함께 단 둘이 있어야 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그러나 몇 년만 고생하면 목돈이 생기고 형편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얼마간의 침묵 끝에 남규가 먼저 말을 이어갔다.
"민혁이 하고 잘 지내고 있어.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올게. 편지 자주 할게."
희숙도 남규의 말에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알았어. 그 나라 위험하지는 않아? 많이 더운 나라면 힘들 텐데 괜찮겠어?"
"걱정 마 괜찮아."
남규도 내심 걱정이 되면서도 희숙 앞에서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같이 가는 일행이 있어서 안도감은 들었다.
희숙도 일행이 있다는 말에 다소 걱정거리가 줄어들었다.
생판 모르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되는 것은 남규도, 희숙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남규는 남규대로.
희숙은 희숙대로.
서로 어깨를 다독이며 잘 극복해 보자고 하였다.
둘은 밤마다 잠을 설치며 겨우겨우 잠이 들곤 하였다.
드디어 남규가 출국하는 날이 되었다.
희숙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남규에게 따듯한 밥을 먹게 해 주고 싶었다.
남규는 남규대로 희숙과 민혁이를 눈에 더 담아가고 싶었다.
희숙은 공항에 갈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의 작별은 더 힘들 것만 같았다.
남규를 보내고 혼자 발길을 돌릴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였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배웅하기로 마음먹었다.
남규도 희숙과 아들민혁을 공항에 남긴 채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집에서 작별하자 마음먹었다.
가야 할 시간은 째깍째깍 다가왔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남규도, 희숙도 눈물이 났다.
집 앞에 택시가 와서 섰다.
남규는 택시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그리고 희숙과 민혁을 와락 껴안았다.
"잘 다녀올게. 잘 지내고 있어."
"몸 건강하게 잘 다녀와요. 잘 지내고 있을게요."
남규는 서둘러 택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창문을 내렸다.
희숙과 민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희숙도 손을 흔들었다.
아들민혁도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부웅~~~ 소리와 함께 택시가 출발을 하였다.
멀어져 가는 택시를 바라보며 희숙은 훌쩍거렸다.
민혁은 엄마의 흐르는 눈물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닦아주었다.
희숙은 애써 눈물을 참았다.
민혁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엄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한참을 길에서 사라져 가는 택시를 바라보며 그렇게 서 있었다.
희경어머니는 뒤늦게 사위가 출국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혀를 끌끌 찼다.
희숙을 애잔하게 바라보았다.
돈을 벌기 위해 머나먼 나라로 떠난 사위도 안타까웠다.
배웅도 못해준 것이 아쉽고 미안했다.
남규는 시골 섬지방에서 혼자 서울로 상경해 처갓집 식구들과 지내다가 군대를 갔었고
이젠 또 머나먼 이국땅에 홀로 떠났다.
희경어머니는 무슨 그런 팔자가 다 있나 싶었다.
딸도, 사위도 안쓰럽고 짠했다.
어느새 눈가는 눈물로 촉촉해졌다.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희경은 교내 기념관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연극을 관람했다.
유명 배우들이 하는 공연이었다.
학년 전체가 관람하는 것이었다.
희경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연극 공연이라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 하였다.
연극에 대해서 그다지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었고 솔직히 잘 몰랐다.
그렇지만 보는 내내 푹 빠져서 보았다.
평소 좋아했던 남자 배우가 주연으로 나와서 호기심이 더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에서 편하게 볼 수 있어서 더 기뻤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더 커졌다.
시골 촌뜨기였던 희경의 삶이 이렇게 달라질 줄은 꿈에도 물랐다.
희경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커튼콜을 마지막으로 무대 막이 내려졌다.
희경은 한동안 여운이 남아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음에도 또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진 채로 설렘 가득했던 연극 공연을 마치고 햇살 가득한
교정을 거닐었다.
푸르름이 가득한 향기로운 꽃길과 푸른 나무 숲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