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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작가 선영 Mar 15. 2020

1-1 매일 적고 매일 낙서하세요

드로잉으로 매일 그리기를 지속하세요



1-1 매일 적고 매일 낙서하세요          


10세 미만의 아이를 둔 주부들은 자신만의 시간이 매우 부족합니다. 아이와 한 시도 떨어질 수 없고, 한 끼의 식사조차도 편히 먹을 수 없습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틈을 이용해서 집안일을 해야 합니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도 없고 티도 안 나지요. 잘한다고 보상도 없고 승진도 보수도 없기 때문에 더없이 힘듭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림 역시 집안 일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많은 시간 그린다고 해서 많이 그려지는 것도 아니고 그렸다고 해서 누군가에게서 보상이 있거나 노동 대비 시간 보수가 있지도 않습니다. 특별히 눈에 보이듯 달라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그림에 흠뻑 취해서 그릴 수 있는 상황이 여의치 못했습니다. 결국 전시가 없을 때는 물감이 말라가고 붓털이 삭아 부서집니다. 저는 붓이 삭을 도록 그림을 지속해서 그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림에 깊이와 감정을 담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매일 새로운 세계를 펼치기 위해 그림을 기리기 위한 시간만큼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를 하다가 지치곤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 사이에서 저의 존재가 사라져 간다는 것을 하루하루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림을 포기하면 10년 후 20... 30년 후에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같이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저만의 그림 세상을 펼칠 수 있을까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제 모습을 철저하게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니 제 마음이 모습이 엄마가 되고 나서 참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로서 두 아이를 저버리고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들고 나를 지키겠다고 버티고 있는 것은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 끝에 매우 큰 에스키스 북과 중간, 작은 것까지 여러 개를 준비했습니다. 매우 마음에 드는 종이를 선택했고 연필의 종류 또한 0.3mm의 샤프펜설부터 2.0 스케치 샤프, 붓 펜, 로트링 펜까지 필요한 것은 뭐든지 구매했습니다. 캔버스와 붓을 사는 것보다 오히려 가격은 저렴한 편이었으니 저는 마음껏 종이와 연필, 펜들에 사치를 부렸습니다. 어디서든 그려야 했고, 아이가 옆에서 놀이를 하고 있으면 쫓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처음에는 연필로 하는 낙서 같은 에스키스가 참 히마리 없이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나고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그렸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지우개로 지우면 되니 전혀 부담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옆에 와서 함께 낙서를 해도 불편할 일들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무엇이든 그릴 수 있으니 아이 때문에 드로잉을 못한다는 핑계는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드로잉은 더 없는 행운이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달리는 차 안에서도 커피숍에 가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언제고 그리던 기억들이 에스 케스 북에 잔재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기억들을 떠올리지 않아도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오늘 내가 그리는 것은 그림을 지속하기 위한 실천이지 당장 내가 특별한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주위에 있는 제 눈과 마음에 닿는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챙이 넓은 모자를 그렸고 자연스레 모자 위에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렇게 모자를 언덕으로 삼아 모자 언덕을 그렸습니다. 모자 언덕 위에 오르는 갈대숲이 보였고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나무는 꽃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인 자목련이었습니다. 꽃을 피우고 싶은 제 간절함이 목련 꽃을 보면서 애환으로 그려졌습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이를 내내 기다리면서 학교에 교정에 목련 나무를 섬세하게 그려 놓았던 것을 보고 모자 위에 그렸습니다. 그렇게 제 드로잉 북은 힘을 발휘하게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100일이 지나고 200일이 지나 지금은 어느덧 에스키스 북에 10권이 다 되어 갑니다. 에스키스 북은 제 역사가 되었고 저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매일 조금씩 그리면 매일 조금씩 변하기 마련입니다. 0.3mm의 샤프에서 2.0 스케치 샤프로 재료가 변했고 재료가 변함에 따라 작품의 스타일도 변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캔버스와 물감 작업을 통해서만 작업이 변하고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면 하루 동안 그리기를 포기합니다. 바쁜 날엔 그리 수없을 수도 있지라고 여기고 지나가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엄마 작가는 시간이 되는 날에만 그림을 그리면 1년에 한 작품도 힘들게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는 습관이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릴 수 있는 날에도 없는 날에도 매일 에스키스 북을 펼치고 밑그림처럼 드로잉을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드로잉을 하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는 자연스레 에스키스 북을 펼치고 연필그림을 그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한 에너지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에너지가 생길수록 드로잉 북이 특별해지기 시작했고 생각을 기록하는 날들이 늘어났습니다. 일기장 같은 작가 노트가 되어 잔잔한 생각들을 모여들었습니다. 생각을 적고 그리는 드로잉북에 애착을 느끼고 이제는 외출할 때 가장 먼저 드로잉 북을 챙깁니다. 저의 든든한 친구 같고 마음을 위로해 주는 드로잉북이 이제는 제 그림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참 좋은 세상이라 디지털로 매일 그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권 한 권 쌓여가는 드로잉북은 어디서부터 시작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흔들리는 제 마음을 지켜주고 지표가 되어줍니다. 이제는 드로잉북이 없으면 캔버스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는 드로잉북을 아낍니다. 드로잉북의 숨은 매력을 여러분들께서 느껴 보시길 권합니다.      

매일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매일 함께 할 수 있는 드로잉 북을 준비해 보세요. 마음대로 펼칠 수 있고 하루에도 10장 20장 부담 없이 그리고 지울 수 있습니다. 그림으로 채우기 어려운 것을 연필로 원하는 것을 메모합니다. 드로잉을 매일 하니 작가 노트를 쓸 수 있는 기회도 매일 주어졌습니다. 두 배 세배 생각을 단단히 저장해 두고 언제든 펼쳐 보고 생각의 고리를 연결하여 그릴 수 있었습니다.

드로잉 북이 없었다면 오늘 이만큼의 작품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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