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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작가 선영 Mar 15. 2020

1-2 드로잉이 작품세계를 만든다

 드로잉의 힘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을까요?     


:드로잉은 작품을 구상화하는 아이디어나 감각을 유지하고 무엇보다 손을 푸는 일이다.

화가의 손 (드로잉) 이강일 연구실 벽면에 죽 늘어선 작은 드로잉은 정직하고 견고하다. 손끝의 재주로 넘실대지 않고 익숙한 관성에 입각해 마구 풀려나오는 것도 아니다. 매 순간 유연하게 풀어 둔 손에 의해서 나온 그림이다. 오랜 드로잉 훈련은 자가의 몸을 다른 몸으로 만든다. 그러니까 드로잉 한다는 것은 대상과 세계를 파악하고 이를 조형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고도의 몸을 만드는 일이다. 이 몸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림이 가능하다.

박영택 작가는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드로잉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간단한 에스키스만도 시간적인 여유가 없던 저는 캔버스 앞에 서있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늘 그림을 그리곤 네가 옳다. 내가 옳다. 를 반복하며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이 멀쩡하게 그리던 그림을 덮어 버리는 날들도 여러 날이었습니다. 마음이 조급하니 오히려 시간만 지체하는 일들이 빗어집니다. 박영택 작가의 말처럼 그리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드로잉은 틈틈이 마시는 물과 같습니다. 수시로 마시는 물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매일 반복해서 그리는 드로잉은 감각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비결이 됩니다. 감각을 불러주고 전체적인 기운을 순환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뇌와 손이 협응을 도와주고 직관적 감각이 길러지다 보니 그림을 더 자유롭게 그리게 됩니다. 씨실과 날실을 교차하듯이 드로잉으로 그림에 숨이 끊기지 않게 도와줍니다.     


 

저는 면을 매우듯 선을 긋습니다. 면을 채우는 선 긋기입니다. 매우 천천히 선을 쫓아가는 면입니다. 면이 많아질수록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마음을 놓고 면을 칠하는 것과 뇌와 감각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긋는 활동은 다릅니다. 선은 감각을 활발하게 하여 새로운 것을 펼치게 돕습니다. 마음을 드려다 보기 위해 점점 드로잉 선이 두꺼워진 이유입니다. 인체의 선들을 두껍게 채워가면서 선이 아닌 면을 칠하고 있었습니다. 연필로 선을 채우기엔 사고는 있지만 긴장과 우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편안한 이유입니다. 연필의 서걱거림은 나를 무의식의 세계로 초대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생각들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감각을 찾고 마음을 찾는 드로잉 기법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루가 이틀 같은 집안일을 하고 긴장된 감각으로 선을 표현하기에는 제 마음이 조금은 무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림 앞에서 마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분주해진다면 제 마음이 견뎌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연필로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자 하니 자연스레 마음에 고요함을 얻습니다. 시간의 누적은 그림에 작은 여유를 주었고 그림도 마음과 같이 편안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림은 그리는 이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내가 바라보고 겪는 것을 그립니다. 오늘 나의 감정대로 표현합니다.

삶에서 만들어준 나의 기질과 환경의 변화가 사람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삶을 살아내는 색깔이 그림의 색깔을 결정짓습니다.

내 마음이 차갑고 외로우면 그림도 외로워질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따뜻하고 포근해지면 그림도 따뜻해집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것을 원한다면 따뜻한 것을 보고 따뜻해지기를 시도해 보세요. 여러분 안에 행복을 찾아 행복을 바라봐 주고 만져 주세요. 걱정이 해결돼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지면 걱정이 해결됨을 느껴보세요. 누구나 행복해질 이유가 있듯 누구나 행복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노라면 제 마음속 깊이 어루만지며 생채기 난 부위를 마주하게 됩니다. 때론 잘 못 꿰어져 있는 생각의 퍼즐들도 만나게 되지요. '와! 너 그곳에 있었구나. 잠시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 미안,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실수도 있었어. 다음에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이해하고 기다리면 되다는 것을 이제 실천할 수 있을 거야.' 하며 생각들을 정돈할 수 있게 됩니다.

제 마음을 그렇게 매일 감상해 주고 기뻐하고 감동해 주니 자연스레 제 삶이 든든해지고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마음을 감상하고 그린다는 것은 저에게는 평화가 되었습니다. 연필 하나의 드로잉으로 찾아지는 평화입니다. 연필을 잡고 면을 매우 듯 선을 배웁니다. 면을 칠하는 과정은 제게는 만다라를 칠하는 안식의 시간이었나 봅니다. 드로잉이 이제 저에게 생각을 모으고 힘을 길러줍니다.      

작가들은 드로잉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매일 그리는 드로잉은 시간이 흐르면 무서운 힘을 발휘합니다.

생각의 틈을 촘촘히 연결해 주는 기록은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마음을 담기 때문입니다. 순간순간 짧은 생각들이 모여져 작가의 우주를 담아냅니다. 드로잉에는 표현하지 못할 것들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드로잉은 천천히 저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고도의 몸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드로잉은 가볍게 스케치하듯이 시작해서 부담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유로운 상상들이 담아지고 완전하진 않지만 순간순간 아이디어들이 모여져 캔버스 작업에 (안내자)가 되어 줍니다. 오늘 나의 일상이 담기고 일상이 스토리가 됩니다. 드로잉은 저에게 작은 세계를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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