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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07. 2023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일


내 아이가 매 순간 자라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가끔 ‘이렇게나 빨리?’하고 놀라게 되는 때가 있다.  거침없는 손길로 볼을 긁어대는 아이의 손톱을 보자마자 뜨악 놀라고 말았다. 체감상 바로 어제 잘랐던 것 같은데 아이의 손톱은 어느새 길게 자라 있었다.


아이를 뒤에서 감싸 안은 채 손톱과 발톱을 깎았다. 손톱 자르는 일은 힘들지 않지만 귀찮은 일이라 최대한 바짝 깎아 냈다. 따박따박 잘려나가는 손톱을 보니 속이 시원하다. 몇 살쯤이면 손톱을 혼자 깎을 수 있지? 깔끔하게 정리된 아이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스스로 손톱을 정리하게 된 나이를 떠올려 보았다. 어느 순간 혼자 하게 되었을 뿐, 기억을 더듬어 봐도 정확한 나이는 생각나지 않았다. 혼자 손발톱을 자르지 못하던 어린 시절, 손톱깎이를 든 할머니와 실랑이하던 기억만 남아있다.     


유독 눈이 침침한 할머니에게 완두 콩만 한 내 손톱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돋보기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글씨를 모르는 할머니에게 돋보기는 집에 둘 만큼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내 손톱을 자를 때마다 손을 눈에서 멀찌감치 두고 눈을 희미하게 떴다. 손톱깎이를 천천히 가져다 대는 할머니의 조심스러운 몸짓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휴. 뭔 놈의 손톱이.. 가만있어 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악!!’ 내지르는 내 비명도 함께 들렸다. 손톱깎이 날에 손톱과 살점이 날아간 나는 앓는 소리를 해가며 뒤로 발라당 누웠다. 손을 쥐고 발을 동동거리며 죽는 시늉을 하는 바람에 채 다섯 손톱도 자르지도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나는 손톱깎이를 할머니가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두거나, 할머니 입에서 ‘쓰메끼리’라는 단어가 나오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손톱 대신 머리카락이나 빨리빨리 자라면 좋으련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손톱은 야속하게도 계속 자랐다.     


나이 육십이 훌쩍 넘어 여섯 살의 어린 손녀를 맡아 키우게 된 할머니는 나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며 늦은 육아를 다시 시작했다. 할머니는 내게 밥을 해주고 시장에서 내 또래 여자 아이들은 절대 입지 않을 법한 옷을 사 와 입혔다. 가사를 모르는 옛 자장가를 불러주고 엄마를 찾으며 우는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나 역시 할머니의 귀에 귀고리를 걸고, 할머니가 건넨 바늘에 실을 꿰었다. 밀가루 봉지에 적힌 유통기한을 읽고 시간에 맞춰 드셔야 할 약을 챙겨 드렸다. 할머니와 나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보살폈지만, 우리들의 돌봄은 꼼꼼하지도 완벽하지도 못했다. 긴 손톱이나 뒤꿈치가 해진 양말, 때가 다 빠지지 않는 옷소매 같은 사소한 것들에서 엄마의 부재는 쉽게 티가 났다.     


내 손톱이 반듯하게 잘려나간 건 유치원 선생님의 손에서였다. 선생님은 당시 미스코리아들이 하는 사자 머리 같은 풍성한 웨이브에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마른 얼굴에 턱이 유난히 뾰족해서 날카로운 인상을 주었다. 목엔 알이 굵은 진주 목걸이를 하고 다녔는데 항상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어서 그랬는지 유독 희고 반짝여 보였다. 선생님이 앞에서 무슨 설명을 할 때면 나는 멍하니 선생님 목에 걸린 진주 개수를 세곤 했다. 


우리 반 선생님은 다른 반 선생님들처럼 아이들에게 살갑거나 상냥하지 않았다.  유치원은 피아노 학원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우리 반과 피아노 지도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피아노를 배우는 몇몇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섭다며 배우기 싫다고 소곤거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건반을 잘못 누르면 자로 손가락을 탁 때리며 “미!”“파!”하고 째려보는 선생님을 흉내 내면, 괜히 내 어깨까지 움츠러들었다. 선생님은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애들에게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율동 시간에 아이들이 신나서 팔다리를 움직일 때도 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거나, 어디선가 싸움이 나서 한쪽이 질질 울고 있을 때도 말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을 쳐다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의 침묵에 주변 아이들은 우는 아이 얼굴과 굳은 선생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치를 봤다. 아이의 눈물이 차츰 가라앉으면 선생님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다 울었어? 가서 얼굴 닦고 와.”     

선생님 말에 아이는 한결 차분한 얼굴을 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왜 울었니. 왜 싸웠니. 왜 그랬니. 친하게 지내야지. 같은 말은 없었다. 실컷 울고 난 뒤에 꼭 눈물을 닦아라, 하는 식이었다.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에게도 틀리지 마. 제대로 쳐. 악보를 봐. 같은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선생님의 냉담한 태도에 아이들은 골이 나서 다른 반 담임 선생님이 우리반 선생님이었으면 좋겠다고 작게 투덜거렸다. 아이들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원 시간을 앞두고 아이들이 하나, 둘 집으로 갔다. 나도 할머니를 기다리며 친구와 교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대뜸 나를 불렀다.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 싶어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5세반으로 들어갔다. 쭈뼛거리며 교실로 들어가자 선생님은 아이들이 앉는 의자에 앉았다.     


“이리로 와. 앉아.”

사자 앞에 한 마리 토끼처럼 조심스럽게 선생님 옆자리에 가 앉았다. 선생님은 가타부타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영문도 모른 채 손이 끌러 가던 나는 그제야 선생님 손에 들린 손톱깎이가 보였다.     


딸깍-     

놀라 손을 빼기도 전에 순식간에 손톱이 잘려나갔다. 오로지 손톱만 초승달 모양으로 잘렸다. 왜 아프지 않을까. 그게 궁금해 선생님이 쥐고 있는 내 손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얼굴 치워. 손톱 튀어.”

나는 얼른 얼굴을 내뺐다. 선생님 손에 붙들린 내 손을 바라보다가 흘낏 손에 온 신경을 쓰고 있는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혀있었다. 괜스레 긴장이 되어 침을 꼴깍 삼켰다.     


“손에 힘 좀 빼.”

선생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손은 힘이 들어간 채 부채꼴 모양으로 활짝 벌려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에서 힘을 뺐다.     


딸깍. 딸깍.     

방금까지 소란스러웠던 교실엔 오직 선생님의 숨소리와 손톱이 잘려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정적이 어색해 다리를 폈다 오므리며 일부러 소리를 내었다.  웅크린 선생님의 머리 위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길게 비추었다.  작은 먼지들이 조용히 부유하고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가 햇살을 튕겨내며 빛났다.     


“후-”

손가락 위로 선생님의 입바람이 불었다. 나는 손가락을 활짝 펴 정돈된 손톱을 바라보았다. 아프지도, 피가 나지 않은 단정한 손톱이 어색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이제 가.”

나는 작게 ‘네-’하고 대답한 뒤 교실을 나왔다. 문을 닫고 까치발을 들어 창문으로 교실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휴지통으로 다가갔다. 거기까지만 보고 나는 가방을 챙겨 유치원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며 중간에 두어 번 멈춰 손가락을 쫙 펴보았다. 내 몸의 일부가 잘려나가고 바람에 날려갔지만 안엔 무언가로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내 손끝에 집요하게 따라붙던 시선들이 싹둑 잘려나간 것 같았다.     


왜 손톱을 자르지 않니. 깔끔하게 하고 다녀야지. 손톱 좀 자르고 와. 같은 말을 하는 대신 선생님은 내 손톱이 긴 이유를 다 아는 사람처럼 그저 말없이 내 손톱을 잘라주었다. 따로 말이 없었던 냉담하지만 다정했던 무관심이 손끝을 시작으로 따뜻하게 마음을 물들이는 것 같았다. 이후 내가 자라면서 스스로와 다른 이를 할퀴거나 상처 주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 단정한 손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손톱을 잘라주기 위해 나의 손을 잡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는 하루였다. 


움켜쥐었던 주먹이 활짝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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