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행은 충분히 의미가 있고, 힘들어도 인생의 보석을 발견한 여행 또한 의미가 있다. 누군가는 여행을 통해서 인생의 친구, 연인, 반려자를 만나기도 한다. 토론토를 가슴으로 안는 올여름의 여정은, 내 젊은 시절에 깊이 남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아쉽게도 반려자를 한국에 두고 무려 지구 반 바퀴를 떠나왔지만, 이곳에서 사랑하는 또 다른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음은 반년을 넘게 기다린 보상이다. 벅찬 감동이 에워쌓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차마 현실 세계에서 가져온 짐보따리를 풀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풀지 않기로 했고,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그 짐은 고스란히 다시 싸서 한국으로 가져가게 됐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그 짐을 다시 펼쳐 볼 일 따위는 없을 것이란 짐작이다. 이국적인 광경과 다른 시간이 흐르는 세상에 온 듯함, 새로운 땅에서의 사람들과 자연은 나에게 '현재성'이라는 것에 직면하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잘해오고 애써온 나에게 그만하면 됐어! 하고 토닥여주고 싶다.
그리고 나의 짐으로 인한 오해로 불필요한 상처나 불편함을 받은 사람에게도 그 안개 같은 것들에 매여있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경쟁과 생존 속에서 위태로운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또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결국 나는 그들로 섞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피한 것은 아니다. 숱한 의미 있는 시도와 인내를 해왔다. 나는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군복무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군대에 가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나는 이제 충분히 내가 신으로부터 받은 복무를 한 게 아닐까 한다.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좋은 선생은, 학생들에게 양질의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것 이외에도 그들이 인생에 대해서 용기를 갖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있기도 하다. 나는 좋은 선생이 될 수 있을까?
20년 만에 찾은 캐나다의 땅은, 내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그렇게 느낀 까닭은 단순히 이전과 다른 도시를 방문한 것에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소중한 가족들의 행복한 일상을 매일 기도하며, 정성껏 차려준 음식을 먹고 간절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좀 더 나이 먹은 나는 완성된 인격은 아니지만, 나름의 어른의 모습이었고 이룬 것이 더 많은 만큼 책임질 것들도 허리에 달고 있다. 어쩌면 일종의 모래주머니 같은 것이다. 아마 당신의 허리에도 이런 모래주머니가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산에 오르면 이런저런 생각이 정리되고 흠뻑 땀을 흘리면서 묘한 쾌감이 든다고 한다. 아직 백팩 여행을 해보지 않아서 산에서 그 정도의 개운한 느낌을 얻지는 못했지만, 나 역시 그런 기분이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해서 이 땅을 찾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토론토 대학에 방문했다. 그곳의 연구실은 어떨지, 학생들은 또 어떨지 궁금해졌다. 학교는 경쾌하고 푸르렀다. 캐나다의 대학교라면 유럽풍의 건물에 높은 천장, 견고한 큰 문(주택의 현관도 이러면 좀 안심이 되련만!)
이 떠올려지지만, 이곳은 보다 아늑하고, 특히 교수 연구실은 좁다란 복도가 많았다. 아직은 어린 조카가 대학에 갈 때즈음 나도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사로잡혀 있을까? 나는 확신하지 않는다. 사람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존재도 능력도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니까.
@토론토 대학에서의 여름날
잊을 뻔했다. 블루마운틴 빌리지!
호주가 아닌 캐나다에도 블루마운틴 빌리지가 있다. 한국과 가장 비슷한 곳, 세계인의 숙소는 아마도 호텔이겠지? 솔직히 말하면 이곳에 오고 나서 "내 집에 있는 평온함"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숙소가 주는 익숙함이자, 문명의 이기였다. 한국에도 좋은 호텔과 고급 리조트가 많지만, 블루마운틴 빌리지에는 스키를 타러 오기 좋은 곳이기도 하고 유럽풍의 상점들, 다이닝이 근사한 레스토랑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호수에도 뜬 달
저녁의 풍경이 훨씬 아늑하고 서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낮에는 아이를 돌보는 부모와 젊고 늙은 여인들의 행복한 일상이 담긴 곳이었다. 우리나라의 리조트에 비해 액티비티가 많았다. 이번에 캐나다에서는 웬일인지 열 지어 늘어진 '알록달록'한 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 색색의 의자들이 옹기종기~
토론토 시내에 고흐 그림이 붙은 미술관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역시 사진으로 봐야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문득 같은 시간 파리에 가 있는 분이 생각이 난다. 그는 지베르니 고흐의 마을을 방문했으려나? 이번 여행을 끝으로 여름의 무더위가 물러갈 때 즈음, 한국에서 속 깊은 친구들과 각자의 여행지를 그리워하면서 잔을 기울이게 될 것 같다.